내 기분은 여름이야 창비아동문고 320
변선아 지음, 근하 그림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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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여름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는 세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여름의 라이딩을 소재로 한 <불량한 저전거 여행>이 생각난다. 이 책도 마치 그럴 것처럼 시작된다. 슬아가 짝사랑하는 휘가 '여름방학 라이딩 모집' 공고문을 붙이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량한 자전거 여행>이 라이딩의 과정을 담았다면, 이 책은 좀 다르다. '라이딩이 언제 시작되나' 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결말이다. 물론 그게 실망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라이딩이 시작되기까지, 세 주인공 아이의 사연과 감정이 섬세한 필치로 잘 담겨있다. 슬아와 정음. 그리고 슬아가 좋아하는 휘. 이렇게 셋이 자전거를 매개로 가까워진다. 한창 사춘기의 열병을 앓을 열세 살, 6학년들이다.

슬아는 머리 색깔을 수시로 바꾸고 해골모양의 목걸이 등 파격적인 옷차림을 해서 좀 무섭다는 인상을 주지만 속은 여린 아이다. 4살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엄마 손에서만 컸다. 엄마는 분식집을 하며 슬아를 힘들게 키웠다. 그런데 얼마전, 전혀 못보고 살던 아빠한테 연락이 왔다. 아빠는 새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사진 속에서 행복해 보였다. 그럴수록 슬아는 아빠가 밉고 엄마가 안쓰럽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내리다보면 가끔 '네이트판'의 이야기가 뜨는데 제목에 낚여서 읽어본 이야기가 있다. "딸이 '나를 낳지 말지'라고 합니다"인가 그 비슷한 제목이었다. 상황이 슬아네와 같았다. 딸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를 낳지 마" 라고 했다며 걱정하는 글이었다. 거기 댓글에 사람들이 '그건 엄마에 대한 연민 때문에 하는 말'이라며 위로했다. 이 책을 읽다가 그 판의 내용이 여기 섞여들어갈 뻔 했다. 슬아가 엄마의 인생을 보는 눈도 그와 비슷해 보여서였다.

정음이 엄마도 미용실을 하며 정음이를 혼자 키운다. 근데 정음이네는 사별을 한 경우다. 아빠가 '자전거 사고'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일에 바쁘고 정음이는 엄마한테 매사 네네 하면서 '순종적 반항'을 하는 중이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미용실 오픈을 강행한 일,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점과 엄마에게 선물을 주는 아저씨를 본 일 등으로 인해 정음이는 대단한 오해의 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이 두 친구에게 휘의 라이딩 제안은 대단한 도전이 되었다. 일단 슬아는 자전거를 못탄다. 어린시절 아빠와 함께하지 못한 슬아에게 자전거 뒤를 잡아주는 아빠들의 모습은 큰 부러움이고 상처다. 정음이는 그 반대다. 자전거는 아빠와의 행복한 추억이자 끔찍한 트라우마다. 먼저 극복한 건 슬아다. 휘에게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나섰다. 짝사랑의 힘은 참 대단하다.^^

정음이의 극복 과정은 좀더 복잡했다. 슬아와는 달리 심리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결국 극복을 했지만 엄마의 벽이 남아있었고 갈등은 불꽃을 튀긴다. 고학년 동화답게 인생사의 복잡함이 꽤 깊게 들어있다. 아니 이걸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아직도 어린 건지도 모른다. 한 교실에서 집집의 사연 다 모아놓으면 드라마 몇 편 족히 될 것이다. 그냥 인생이 그런 것. 이 아이들처럼 겪고 의지하며 이겨내는 것.

모든 갈등과 극복의 터널을 지난 후 드디어 라이딩을 시작하는 순간에 이 책은 끝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음은 우리가 상상하면 된다. 마지막에 동행한 한 사람. 딱 그얘기만 참고 리뷰를 마쳐야겠다. 스포를 안했다고 우기면서.^^;;;

자전거가 이토록 매력적인 줄 이 책을 읽고 새삼 느낀다. 불행하게도 내가 자전거를 못타지 뭐야.... 방학식날 내가 아이들한테 허송세월하지 말고 뭐든 익히고 연습하는 시간으로 삼으라고 말하면서 한 얘기가 바로 이거였다. "능력을 갖출수록 인생이 재밌어요. 예를 들면 선생님은 수영을 못해요. 그러면 수영의 즐거움을 모르는 인생인거죠. 반대로 피아노 연주의 즐거움을 알아요. 그게 공짜로 됐을까요? 수많은 연습을 통해서 된거고 그게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했겠죠. 그렇게 실력을 연마해서 인생의 즐거움을 하나하나 만드세요." (피아노는 예시일 뿐 실제로 난 연주할 만큼 치지 못함ㅋ) 아, 자전거의 즐거움을 모르는 불쌍한 인생이여.... 이 책은 이런 나의 처지를 깨달을 정도로 자전거의 매력에 빠지게 해 준다.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사는 인생에 대한 위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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