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 사계절 아동문고 103
이진하 지음, 정진희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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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읽었던 동화들 중에서 재미로는 최고다. 고학년 분량인데 단숨에 읽게 된다. 방학숙제가 많고 그걸 개학 후에 시상한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 살짝 걸리는데, 어딘가 그런 학교도 있을 수 있으니까.... 30년 가까운 경력동안 방학과제 상 주는 학교에는 한번도 안있어봤다. 또 분량 문제도 요즘 방학과제라면 하루 30분 독서하기, 매일 꾸준히 운동하기처럼 제출물이 없는 과제들이 대부분이라 아이들의 큰 근심거리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관념 속에 '방학숙제' 하면 부담되는 것, 밀리는 것, 벼락치기로 하는 것 등으로 각인되어 있고 모든 학교의 상황이 같은 것도 아니니 꼭 지금의 전반적인 현실을 반영하란 법은 없겠지. 그리고 중요한 건 방학숙제 자체보다도 그 과정을 통한 아이들의 변화와 깨달음이기에나의 체감과 다른 상황묘사가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아주 다른 캐릭터를 가진 3명의 남자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캐릭터들만 봐도 재미난 얘기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온다. 1호와 2호는 통한다. 오준보와 방구봉.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힘든 건 최대한 미루고 놀 궁리만 하는, 어찌보면 우리 주변에 널린 남자아이들 캐릭터다. 3호는 좀 다르다. 구경수. 공부도 1등이고 어긋남 없이 규격에 맞춘 듯이 살아간다. 결정적으로 숙제를 엄청 잘해온다. 작년 방학때도 방학숙제 상을 받았었다.

 

때는 여름방학 중간, 준보는 생활계획표와 아~무 상관없는 빈둥빈둥 쿨쿨 생활 중이다. 보다못한 엄마가 채근을 하다가 입맛 당기는 미끼를 걸었다. 방학숙제 상을 받으면 준보가 꼭 갖고 싶어하던 게임기를 사준다고! 준보는 당장 이 희소식을 구봉이에게 알렸고, 둘은 숙제 작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평소에 생각지도 않던 친구, 구경수를 끌어들이게 된다. 아무래도 멘토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경수는 멘토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제 입으로 내뱉고 만다. 그 완벽한 과제물들은 다 아빠의 손을 거친 것들이었다. (보통 아빠가 그러시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아빠가 꽂히면 엄마보다 더 징하다는 것이 정설) 이러다가 경수는 코가 꿰이고 만다. ‘여름방학 숙제 조작단이 결성된 것이다.

 

수많은 선택과제들이 있고, 그중에서 3개만 고르면 된다지만, 하나하나 만만한 것이 없으니 어찌 선택과제라 하리오? 그들은 그나마 나은 동시쓰기를 선택했다. 동시 정도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 음 그건 선생의 생각이고. 셋은 준보네 집에 모여 갑론을박하며 동시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졸작들이 난무한다. (이 과정이 엄청 웃김ㅎㅎ) 그러나 그 엉망진창의 시간들 속에서 뭔가 싹이 트고 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선택과제 1은 성공!

 

두 번째는 관찰보고서 쓰기로 정했다. “남들이 다 하는 흔한 걸 고르면 안 돼.”라는 경수의 조언 때문이었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아이들은 주변을 둘러보다 길고양이, 개미, 마트에 있는 반려동물 가게 등을 살펴봤지만 고민만 늘어간다. 그러다가 준보의 결정. “나는 우리 엄마를 관찰할 거야!” 그러자 구봉이도 좋은 생각이 났다며 호들갑을 떨더니 을 관찰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시무룩해지는 경수가 의외였다. “사실은 너희들처럼 재미있는 생각이 잘 안 나.”

 

마지막 세 번째는 체험학습 보고서다. 이 과정이 가장 길고도 재미있다. 얼떨결에 PC방에 끌려가 금단의 열매를 맛본 경수의 반응도 웃기고 <우리 동네 버스 여행>으로 주제를 정한 아이들의 생각도 신선하다. 지하철역에서 열린 서예전시회, 동네 도서관, 버스 타고 동네 돌아보기 등의 과정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라면 갈등과 클라이막스가 있어야 하는 법. 체험학습을 끝낸 아이들은 서로 다투고 마음이 상한채 돌아서고.... 그런 채로 방학은 끝나고 말았다.

 

개학이 되고, 아이들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경수는 역시나 함께했던 방학숙제들을 모두 아빠한테 퇴짜맞고 으리으리한 결과물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선생님이 전시하려는 찰나, “그거 숙제 아니예요.”라고 밝히는 경수. 으리으리한 결과물을 넣어두고 꼬깃꼬깃한 결과물을 꺼내 제출하는 경수. 그건 반 아이들에게 대단히 인기 있었다. 바로 [친구 관찰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인지는 굳이 말 안해도 되겠지? 그리고 셋의 서먹함 또한 하루만에 원상태로 바로 돌아갔다.^^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열매는 얻지 못했다. 상은 셋 중 누구도 아닌 다른 아이가 받았으니. 하지만 이 책은 엄청나게 해피엔딩인 이야기였다. 이렇게 끝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방학하는 날보다도 더 방학 같은 날이었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이 변화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교사라서, 아이들을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된 직업인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극적인 변화는 좀 부담스럽고, 아닌 척 슬쩍 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이 그들의 본성까지야 어떻게 바꾸겠어. 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깨우치면서 멋있는 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트는 것, 그 멋있어짐을 바라보는 것, 그보다 더 재밌는 건 없다. 선생들은 그렇다. 직업병.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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