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래시 그린이네 문학책장
찰리 하워드 지음, 오영은 그림, 김수진 옮김 / 그린북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플래시. 딱히 번역하지 않은 이 제목. 아직은 잔잔한 수영장의 물에 비친 한 소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려 할까? 작가의 이력이 힌트를 준다. 이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기엔 정말 잘썼다) 작가는 모델이며 ‘자기 몸 긍정주의’ 전파를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것을 전문 작가가 아니라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흥미로운 서사로 잘 표현해 냈다.

나는 호불호가 큰 사람이어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도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 구분되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캐릭터를 그렇게 만든 탓도 있을 것이다. 선역과 악역은 필요하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이렇게 싫어하면 안될텐데 라는 약간 ‘경고’의 느낌을 내 맘속에서 받으며 책을 읽어나갔다. 첫 번째는 몰리를 좌지우지하려는 친구 클로이. 두 번째는 자유분방하단 핑계로 자기가 낳은 자식은 뒷전인 엄마와 그 남자친구란 인간. 클로이는 현실에서 만날 확률이 아주 크다. 그때 난감한 점은, 내가 너무 너무 싫어하는 인간형이지만 그래도 난 그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그 행동의 원인이 되는 상처를 관찰하고, 그 부분에 약을 발라주며 이끌어주어야 한다. 단지 기질과 성향일 뿐이라면 더욱 힘들테고 오히려 내가 상처받고 끝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아야 한다. 두 번째, 몰리 엄마 같은 사람은 나랑 친해질 가능성이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겠다만.... 그래도 내 안에 이런 이들을 향한 혐오 같은 것은 그냥 두어도 되는 걸까 라는 고민이 살짝 있다.

나머지는 거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높이 사고 싶은 사람은 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렇게 책임감 있고 건실한 분들에게 어떻게 저런 딸이 태어났지? 어쨌든 다행이지 뭐야. 엄마가 버린 딸을 그래도 큰 결핍 없이 키워준 분들이 계셔서.

두 번째는 몰리의 학교 수영선생님들. 몰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격려하여 대회까지 이끌어준 분들. 나와 비교하여 가장 찔렸던 부분은 몰리가 클레이의 눈치를 보느라고 (쿨하게 한답시고) 선생님들의 지도나 제안에 예의없이 틱틱거릴 때, 몰리의 본심을 감안하여 참고 계속 격려하셨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이런 점이 없다. 싫어? 아 그래 알았어. 끝이다. 먼저 숙이고 들어오기 전에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솔직히 그래야 될 필요가 있다고 아직도 생각.....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내가 못가진 면을 가진 이분들이 존경스럽다.

세 번째는 몰리의 오래된 남사친이자 수영 동료인 에드. 친구니까 영화보러 가자고 제안했을 뿐인데 클레이의 눈치를 보는 몰리는 아주 모욕적으로 그 제안을 거절했고 에드는 큰 상처를 받았다. 나라면 거기서 끝이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을 텐데, 기회를 준 에드. 그리고 많은 조언과 도움도 함께 주었다. 수영실력이 더 뛰어난 몰리를 질투하지도 않는 진정한 친구. ‘손절’이 너무 쉬운 요즘 세상에 이런 친구는 정말 귀하지 않을까. 나도 찔린다.

네 번째는 몰리, 클레이와 같이 어울리는 같은반 친구 네다와 제스. 클레이에게 치이는 몰리에게 완충 역할을 해주는 따뜻하고 사려깊은 친구들. 이런 친구들이 있는데 몰리는 왜 클레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몰라.

한 명 더 들자면 클레이의 엄마. 마지막에 자신의 악행(?)에 대한 댓가를 한꺼번에 받고 외톨이가 되어버린 딸을 보았을 때 보통 엄마들은 어떻게 할까? 그동안의 잘못은 ‘그럴 수 있었던 것’으로 축소하고 지금의 아픔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확대하여 분노하며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아주 많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덤. 더구나 지금 클레이 엄마의 개인 상황도 상처가 가득하기에. 하지만 클레이 엄마는 반대로 행동했다. 비록 지금까지는 클레이를 응석받이로 키웠지만 이 중요한 상황에서 클레이를 객관적으로 보았고, 설득해서 친구들 앞에 사과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마지막 해피엔딩의 주역은 클레이 엄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비현실적일 정도로 몰리 옆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네. 최소한의 악역만 빼고 말이다. 비록 가장 중요한 엄마가 자기밖에 모르는 날라리고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몰리는 보여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들이 상처받았을 때 무릎을 세울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살면서 한번이라도 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인물 소개를 하다보니 줄거리가 거의 나와버린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만 빼고. 이 작가의 모토인 ‘자기 몸 증정주의!’ 몸은 상품이 아닌데, 비현실적인 몸매를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치고 모두다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시도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책에서는 클레이가 주도적으로 그런 언행을 하여 몰리를 기죽인다. 넓은 어깨, 튼튼한 다리. 이것은 수영선수로서 최적의 조건일 뿐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 학생들이 흔히 그러듯이 몰리는 영향력있는 친구의 정신적 지배에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참을 방황했다. 몇몇 생각없는 녀석들이 붙인 ‘덩치’라는 별명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이제 몰리는 당당하다. 남의 눈에 맞추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꼭 필요한 아이들이 떠오른다. 모든 교실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클레이와 몰리들이 존재한다. 톰 무리들처럼 놀림으로 문제를 키우는 녀석들은 거의 기본값처럼 존재한다. 몰리가 자신에게 긍정하게 된 과정이 아이들에게 설득력있게, 그리고 재미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자신을 긍정하기. 나와 다른 남을 존중하기. 이것이 된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문제가 아름답게 풀릴 것이다. 평생의 숙제이긴 하나 아이들이 일단 첫발을 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