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단비 옆 동바람 반달문고 38
이정아 지음, 김성라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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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취향에 딱 맞는 책을 만났다. 주제가 너무 강하게 드러나도 싫고, 설교해도 싫고,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어도 싫고, 너무 되바라지고 입만 살아도 싫고, 상징이 도식적이어도 싫고, 무서워도 싫고, 잔인해도 싫고 뭐 어쩌라는거지?ㅎㅎ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나는 이런 동화를 좋아하는구나.

이 작가님의 책은 한두권 읽어본거 같은데 리뷰를 안쓴거 보니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었나보다. 그럴때가 있다. 무심히 넘겼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더 좋은 책.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세 편의 단편 모음이다. 세 편 다 소재가 각기 다르다. 첫번째 이야기 <동단비 옆 동바람>은 발달장애 형이 있는 동생의 이야기다. 김혜온 작가님의 <바람을 가르다>에 들어있는 '천둥번개는 그쳐요?' 이후 이런 소재를 처음 보았다. 너무 어둡지도 않고 무턱대고 밝지도 않다. 사려깊게 함께 해주는 친구들과 어른들도 있지만 괴롭히고 서럽게 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제목은 바로 이 형제의 이름이었다. 바람이가 형, 단비가 동생이다. 유치원 때부터 단비는 형 있는 곳이면 언제나 함께 있었다. 엄마는 단비가 있어 너무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단비에겐 속상한 말이었다. 단비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형은 늘 이런저런 사고를 쳤고 단비는 해결사로 나서야 했다. 때로는 따가운 눈초리 속을 뚫고.

하지만 그리 어둡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위안을 준다. 단비가 형을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이 책의 삽화와 같이 여리게 환한 색이다. 찬란한 빛은 아니지만 위안을 주는 여린 밝음.

가끔은 형 없이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은 단비의 마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모처럼 그럴 기회가 생겼는데!! 너무 좋은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더라. 바람이를 맡길 곳이 없어지고 결국 함께 가야했던 여행길. 너무 실망한 단비 마음도 이해되고 혼자 신난 바람이도 미워할 수 없고, 특히 엄마.... 누가 이 엄마를 탓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 마음은 어느새 단비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단비야, 엄마 좀 봐줘, 응? 내가 그럴 것도 없이 단비가 나보다 나았다. 어느새 평상시 포지션으로 돌아온 단비.

여행에서 겪었던 그 위기는 발달장애 가족들에게 일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거의 30년전 첫담임때 아이가 기억났다. 그땐 학교에 도움반도 없었다. 그 아이가 자주 차도로 뛰어들어 엄마를 애먹인다고 들었었다. 작고 예쁘고 눈이 크던 그 엄마. 지금은 나보다 늙으셨을 그 엄마는 잘 계실까. 아이는 잘 컸을까. 식은땀 흘릴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일상을 버티는 엄마, 때로는 못참고 울어버리는 엄마에게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지켜주려는 착한 작은아들에게도. 차들의 행렬을 멈추었던 도로 위의 사람들에게도. 이들이 우리 주변에 늘 있기를.

두번째 작품 <너 거기 있니?>는 생태관 공사로 살던 집을 놓고 이사나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진이네는 새 집을 지어 이사했고 주호네는 공사지역에서 살짝 비껴나 그대로 남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만나는데, 문제는 할머니들이었다. 무진이 할머니와 주호 할머니는 어릴적부터 친구사이다. 친구에 이웃사촌으로 살던 이분들에게 강제 헤어짐은 너무 슬픈 것이었다. 두분은 손자들을 메신저로 편지 왕래를 하신다. 한글교실에서 배운 글자로 '보고시픈 옥화에게' '부월이 보아라' 하고 마음을 전하신다. 할머니들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가 있었던가? 마음이 찡하다. (내가 그쪽에 근접해가니 그렇겠지. 애들은 별 느낌 없겠지...)

며칠만에 주호 할머니의 답장을 받아 할머니 방에 갖다놓은 날, 무진이 할머니가 없어졌다. 온 마을 사람들과 경찰까지 와서 찾아낸 할머니는 어디에 계셨을까?
"고마리 못이랑 문수산은 다 있는디 길이 없다. 아무리 찾어봐도 길이 없어. 뺑 둘러 다 막혀 버렸어. 주호네 갈라믄 어디로 가야 헌다니?"
"내가 옥화야, 옥화야 하믄서 오도 가도 못하고 철망 앞에 서 있는디 산에서 무슨 소리가 나. 가만히 들어 보니께 울음소리여. 슬퍼서 우는 것 같기도 허고, 반가워서 우는 것 같기도 허고, 내 마음 안다고 우는 것 같기도 허고. 그려서 나도 울었당께."

개발을 다룬 동화들이 꽤 있지만 이 작품은 그중에서 결이 좀 다르다. 뭐가 잘쓴 거라고 평가할 순 없지만 섬세한 결의 이 작품이 나는 맘에 든다. 단지 개발의 선악을 다룬게 아니고 짧은 작품 안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담았다는 게 놀랍다. 인물도 상황도 대화도 모든게 자연스러우면서 마음을 울린다. 사람 사는 이야기라서.

마지막 이야기 <고양이가 다녀간 자리>도 아주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을 다룬 작품이 많고 그중에 유기동물을 입양하게 되는 이야기들은 감동이 크다. 이 작품은 그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입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ㅠ

승준이는 장터에서 할아버지가 오천원에 떨이로 주신 고양이를 데려온다.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이 경우 보통 못이기는 척 받아주는 결말이 대부분인데 승준이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내버린 것은 아니지만 입양처를 찾아주거나 장터 할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 과정이 좀 걸렸고 약한 고양이는 그 사이에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반대하던 엄마까지 함께 아파하는 결말이 슬프다. 하지만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대책없는' 사람이 아니어서. 생명을 보살필 생각을 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명심하고 시작할 것. 이것은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세 작품 다 작가의 경험 없이 머리 속에서만 나왔다기엔 믿기 어려울만큼 작위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대사를 위한 대사도 없었고 모든게 현실대화 같았다. 우연히 잡은 책이 기대보다 넘 좋았던 오늘은 대박이라 말해도 좋겠지. 이 책 나만 재밌나? 아이들과도 함께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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