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텍스트T 2
정연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막 나왔을 때부터 마음이 끌렸는데 어쩌다보니 이제야 읽게됐다. 책을 받아보니 4쇄다. 얼마전 5쇄를 찍는다고 작가님 페북에서 본 것 같다. 과연 그럴 만하다. 작품이 좋아도 판매로 연결되진 않는 책도 있던데, 이 책은 인기요소까지 많이 들어있다.

그건 드라마적인 캐릭터와 서사 때문이라 하겠다. 인물들이 다 인기배우 누구 누구가 연기하면 딱 좋겠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소심하고 말 없지만 왠지 하얗고 잘생겼을 것 같은 주인공 겸이, 비극의 주인공 같은 엄마, 나쁜 남자지만 왠지 안쓰러운 아빠, 1대 5로 악당을 제압하는 운동선수 여사친 은혜, 강하고 속깊고 따뜻한 외할머니, 모든 사연을 다 품고 계신 은혜 할머니 등.....

스토리도 그렇다. 엄마의 불치병과 죽음이라는 소재. 그런데 하필 모자의 애착은 유난히도 깊었지. 엄마를 찾을 어린애는 아니고 고1이지만 겸이가 '엄마' 하고 부를 때 내 마음이 다 아프다. 저런 아들을 놓고 가야했을 엄마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아빠도 그렇다. 겸이의 원망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동안 무심했지만 늦게라도 나타나 아들의 무시를 견디며 옆을 지키는 모습은 뭔가 사연이 있음을 짐작케한다. 그 사연을 알아야겠기에 다음주도 본방사수.... 아니아니, 책장을 넘기게 된다.
드라마적 장면의 최고조는 산속에서 조난 직전의 겸이를 은혜가 구해주고 동네 깡패들까지 발차기로 물리치는 장면이다. 이토록 멋지기는 어렵잖아...ㅎㅎ 하지만 좋았다. 재밌고 속시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드라마적 재미 요소로만 이 책이 잘 팔렸을거라 생각하면 그건 독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시'가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시고 본인 또한 시인이시기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다. 섣불리 쓸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몇번이나 감탄했다.

겸이는 정말 '어쩌다가 시에 꽂혀' 버렸다. 여유있고 평탄하게 살았다면 빠지지 않았을 그 세계에 빠졌다. 어쩌면 고통 때문에 빠졌을 그 세계에서 겸이는 위로를 얻고 지혜를 얻고 힘을 얻었다. 그리고 시는, 겸이의 눈물샘을 열어주었다. 용기있게 울 수 있는 사람으로 이끌어주었다. 눈물이 둑에 막혀 갇히게 되면 그의 슬픔과 고통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점점 커져가고 억눌려 압력이 높아진다. 길을 내주어 흘러가게 해야한다. 겸이에게 시를 쓰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시를 써본적이 없다. 아이들에게는 자주 시키는 편이지만. 글이 주는 해소의 느낌은 나도 아주 조금은 아는 것 같다. 죽을 것 같은 급체에서 손가락을 따주는 것 같은. 그런 역할을 글이 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그럴 때 쓸 수 있는 도구를 지니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란 뭘까. 어쩌다 인간에게 시가 찾아왔을까. 문득 나도 시집 한 권 뒤적이고 싶어진다. 느낄 수 있는 것을 못본척 하는 것도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