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베어 카르페디엠 7
벤 마이켈슨 지음, 정미영 옮김 / 양철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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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업무를 오래 담당하시고 학생, 학부모 상담 쪽으로도 동료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시는 선생님께서 이 책을 강추하는 글을 쓰신 걸 봤다. 내게도 필요한 내용일 것 같아 사서 읽었다. 그 선생님이 어떤 포인트에서 추천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경험이 편협한데도 그걸 가지고 아이들을 함부로 재단한 적이 많았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사실 교직경력이 30년이 다 되어가니 경험이 적다고는 볼 수 없지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진 않았다. 특히 극단에 몰린 삶을 들여다보는 경험은 거의 해보지 못했다. 극악한 인간을 경험해본 적도 거의 없다. 있다면 방송이나 건너 들은 이야기 정도.... 그런데도 사람은 긍정적인 사례보다 부정적 사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생존 본능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선지 나는 용서보다도 징벌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가 있는 것 같다. 상상 속에서만... 실제로 누구에게 징벌을 내려본 적은 없다.

 

사람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본디 악한 인간도 있다고 한다. 어떤 연쇄살인범은 쾌락으로 살인을 자행했고, 교도소에 갇혀 더 이상 살인을 할 수 없게 되자 그 금단증상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의 문제는 뇌의 문제일까? 어쨌든 대단히 드문 특수한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양심을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꽤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사회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 책이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가능성 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부드러워지는, 분노에 불타고 해소되는 원리를 잘 알려준다고도 생각한다. 그 과정에 심히 공감하기도 하고 그 변화가 좀 갑작스럽게 느껴지거나 대사가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이야기니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빠른 변화를 보일 수도 있고 결국 끝까지 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정도면 납득되는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콜 매슈스라는 청소년이 있다. 온갖 비행 끝에 동급생을 죽기 직전까지 폭행해서 법정에 섰다. 그에게 징역형 대신 회복을 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는데, ‘원형 평결 심사를 통해 1년간 무인도에서 생활하며 고난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자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를 돕는 어른들에게도 싸가지없게 구는 콜을 보면 그냥 감옥에 처넣지 뭐하러 애쓰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의 분노의 근원을 보면 슬퍼진다. 고고한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행한 폭력, 그리고 그걸 외면한 어머니. 주변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사례이기에 더욱 두려워진다. 가정폭력은 자녀의 정서를 무너뜨리고 철저히 짓밟는다. 그가 고통에 흐느끼다 눈을 들어 먹잇감을 발견한 순간, 그 대상은 이유도 알 수 없는 희생양이 되어 새로운 폭력에 짓밟힌다. 이 책의 피터처럼. 그의 부서진 몸은 완전히 회복될 수 없었고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몇차례 자살시도까지 하게 된다. 이토록 상황이 망가졌는데도 회복은 있을 수 있을까? 용서가 가능할까?

 

콜을 보니 인간은 변하긴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의 시점은 다르다. 물체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더 큰 힘이 가해져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변화도 그런 것 같다. 문제는 그 시작점까지 가는 에너지가 너무 클 경우, 대다수는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나다. 그런 힘든 사례를 겪은 적은 없지만 나의 평소 성향상 그럴 것 같다.ㅠㅠ

 

그 큰 에너지를 이 책에서는 만들어냈다. 한 청소년의 갱생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과 마음을 투자한 두 어른(에드윈과 가비)의 수고가 대표적이다. 그 뒤에 숨겨진 이들의 수고, 그리고 원형 평결 심사의 절차를 실행하는 시스템도 그 에너지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콜 본인이 죽음의 문턱까지 간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느끼는 체험을 했다는 것. 진심으로 뉘우쳤다는 것. 콜과 피터가 직면하고 마주봤다는 것. (둘이 섬에서 만남. 그걸 허락하고 피터를 데려온 부모님도 대단하다 생각했음)

 

우리 사회도 이런 걸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움직임이 시작될 때까지의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콜의 사례에서 봤듯이 한 사람의 친절 정도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에드윈과 가비, 그리고 그 배후의 여러사람들처럼 협업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에 지혜를 모으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읽으면서 몇군데 표시해놓은 문장이 있는데 그 중 한 부분만 덧붙여본다.

 

그래 뭘 배웠니?”

용서하는 거요. 화를 내는 건 누군가에게 저를 맘대로 쥐고 흔들라고 송두리째 내맡기는 거예요. 용서하는 건 제가 다시 제 감정을 추스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 “아직이요. 아직도 뭔가 부족해요. 후회나 용서로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어요. 피터를 돕는 길을 어떻게든 찾아봐야겠어요. 그걸 찾아내야만 저 자신도 완전히 치유될 수 있는 거죠. 그렇죠?”

피터의 치유를 도우려면 네 뇌리에 살점처럼 들러붙어 피를 말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단다. 그애한테 끼친 해를 보상하지 않으면 그게 네 목숨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못살게 굴 거야.”

그런데 제가 피터를 도울 수 없다면 어쩌죠?”

그렇다면 피터 대신 다른 누군가를 도와야겠지.”

 

이렇듯 인생에 공짜는 없다. 책임 안 져도 되는 인생은 없는 것이다. 관성의 법칙처럼 나다운 결론을 내리며 리뷰를 마친다. 이 책의 속편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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