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모나는 아빠를 사랑해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11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트레이시 도클레이 그림, 김난령 옮김 / 열린어린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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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이 방학 중 휴관이라고 해서 급히 몇권을 빌려나온 중에 이 책이 있었다. 책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고 작가 이름만 보고 집어들었다. 비벌리 클리어리. 헨쇼 선생님께의 작가네. 게다가 뉴베리아너상 딱지까지 붙어있으니 믿고 읽으면 되겠지 생각했다.

 

수상작 치고는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무게감 있는 책에만 상을 주라는 법은 없으니. 제목에서 느낌이 오다시피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다. 나온지 10년이 넘었긴 한데, 원작은 그보다 더 전인 것 같지만..... 그래도 아득한 먼 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제 다시 돌아갈 일 없는 날..... 하긴 최근 1,2년 사이에도 세상은 너무나 달라졌으니.

 

엄마, 아빠, 언니, 동생으로 구성된 라모나네 집은 평범한 서민가정이다. 아빠는 직장에 나가고 엄마는 시간제 일을 하고 딸들은 학교에 다니고. 가끔씩 슈퍼버거에서 외식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그 평범한 행복은 아빠의 실직으로 위기에 빠졌다.

 

언니 비저스는 사춘기라 까칠하지만 밖에서는 제 할 일을 잘하는 야무진 학생이다. 반면 라모나는 엉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말괄량이 삐삐 정도로 극단의 캐릭터는 아니지만 하여간 어른들 눈에는 꽤 골칫거리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 이 가족이 아빠의 실직이라는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자신들의 욕구를 표출하고 조정해가는 과정이 평범한 듯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건 나라면 그러기 어려웠을 것 같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엄마. 아빠를 대신해 전일제 직업에 뛰어든 엄마는 늘 피곤하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들어와서 집안에 벌어져 있는 작은 사고들에 웃어주는 여유를 갖고 있다. 왜 그런 걸 요구하냐고, 엄마 개인의 삶은 어디 있냐고 항의한다면 할 말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자기 편한대로 하고 대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이 엄마는 애를 많이 썼다. 특히 라모나가 성탄절 연극에서 철없게도 의상이 필요한 양 역할을 맡아왔을 때, 엄마가 도와줄 시간이 없다는 점을 알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함께 준비해 주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엄마로서 부끄러웠다. 일만으로도 피곤한데 그까짓게 뭐라고 일거리를 더 만드냐면서 화를 낼 만도 한데.... 자식을 키우면서 어느 정도의 노고는 감수할 각오를 하는게 맞다고 본다. 내가 꼰대라서인지도 모르지만. 아니 내가 왜? 내 삶은 어디있어? 라고 화를 내는 엄마들을 보면서 조금 안타까운 적도 있었다. 당신 삶이 뭔데. 자식과 함께 하는 삶은 당신 삶이 아니야? 원래 가장 소중한 곳에 시간과 노력을 쓰는 법이잖아. 그정도 노력도 하기 싫다는 거야? 반면 너무 자식에게 매달려 모든 것을 거는 것도 건강치 못하다. 그 적정선을 찾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이미 지나온 길, 후회도 되는 그 길이지만 다시 걷는다면 라모나 엄마의 긍정적 열심을 본받고 싶다.

 

실업급여를 받고 구직을 하며 집에 있는 아빠. 부정적이 되고 폐인되기 딱 좋은 상황. 살짝살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중심을 잡으려 애쓴다. 결국은 공백을 잘 이겨내고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 시간동안 집에서 딸들과 부대끼는 모습은 재미있었다. 특히 금연을 놓고 실랑이하는 모습이. 애연가인 아빠에게 그럼 아빠는 담배 살 돈은 어디서 났대요?” 라는 언니의 말은 아주 큰 도발일 수도 있었는데. 보통은 사소한 상처가 파국까지 치닫기도 하는데 말이다. 아빠의 금연을 위한 딸들의 대작전은 귀여웠다. 이 책을 아이들과 읽을 수 있다면 흡연예방교육은 이것으로 퉁쳐도 될 것 같다.ㅎㅎ

 

그리고 주인공 라모나. 정신없는 사고뭉치. 하지만 그건 끊임없는 시도, 도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니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라모나 때문에 골치아프고 라모나 때문에 일거리가 생기고. 그렇지만 라모나 때문에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도 사실이다. 교실에도 이런 아이가 있다. 맘 속으로 저런 웬수.’ 라고 말하지만 절대 미워하지는 않는 아이.

 

이런저런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마지막에 성탄절 공연으로 끝맺는다. 엄마가 만들어준 양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라모나를 보여주며. 이 공연 장면이 내게는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 같았다. 코로나 전에도 성탄절 분위기는 점점 따스함을 잃어갔지만 코로나 이후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우리가 추억하던 일들을 우리는 다시 볼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추억으로 박제되어버린 것일까?ㅠㅠ

 

일시적이긴 하지만 궁핍에 빠졌던 한 가정이 자신과 서로의 감정을 잘 조율하며 터널을 통과하고, 그 터널시기도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 팀이 되어 역경을 헤치는 가족의 모습은 아무리 소소해도 감동이 있다. 부모님이 읽고 자녀에게 권해줄 수 있는 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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