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2021 뉴베리상 대상 수상작 ㅣ 꿈꾸는돌 28
태 켈러 지음, 강나은 옮김 / 돌베개 / 2021년 4월
평점 :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바로 구매버튼을 눌렀던 건 강한 끌림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1. 올해 뉴베리상 수상작인데 작가가 한국계이다.
2. 한국의 민담(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사실 작가가 한국계이든 누구든 그런 거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의 민담을 소재로 사용하고 그게 또 인정받아 세계적인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관심이 갔고, 내용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주 궁금했다.
사람들은 ‘전통’에 큰 의미를 두고, 또 남의 ‘전통’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 색채를 가진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근데 내가 별종인 거겠지만 나는 그런 데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작가가 그토록 가치를 두고 찾아온 것에 함께 가치를 두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책에 그렇게 몰입되지는 못했다.
책의 화자는 둘째딸 릴리다. 언니 샘이 ‘조아여’라고 표현하는. (‘조아여’는 조용한 아시아 여자아이를 줄인 말. 번역된 작품이니 원서에서는 다른 말로 표현됐겠지?) 아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가족은 엄마와 두 딸. 캘리포니아에 살던 그들은 외할머니가 계신 워싱턴주의 작은 시골 마을로 급히 이사한다. 혼자 계신 외할머니의 큰 병 때문이었다.
두 딸은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렸을 때는 함께 살았고, 캘리포니아에 살 때도 엄마가 사정이 있을 때는 할머니가 오셔서 돌봐주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반대로 할머니를 돌봐드리기 위해 모녀들이 간다. 힘든 길이다. 특히 엄마가 중간에서 정말 많이 힘들 것 같다.
특별하게 느껴진 점은, 외할머니와 손녀들의 유대가 정말 깊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으로 키워주셨어도 내리사랑이라고, 아이들은 잘 잊는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할머니의 영향을 아직도 깊이 간직하고 있다. 특히 그 ‘한국적’인 전통들. 영혼이 찾아온다고 믿고, 그들을 대접하고 (그걸 ‘고사’라고 한국어 발음으로 표기했음) 흔히 무속신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할머니-손녀 사이에서 잘 이해되고 존중된다. 이것도 전통의 하나이긴 하지만 일부이지 전체는 아닌데. 그리고 제사 문화는 이제 우리나라 여성들이 벗어나려고 하는 문화라서 그게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건 아닌데. 하지만 그 문화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밖에서 바라보는 것은 많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또한 이민자 2세(아니 3세인가..)로서 밖의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이렇게 ‘한국적’인 것을 찾아 작품에 표현하려 한 것보다도 나는 작가가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쓴 부분이 더 좋았다. 솔직히 작가만큼의 확신을 나는 가질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가치를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으로서 지지하고 싶었다. 작가가 말한 이야기는 궁극적으로는 ‘자기 서사’이다. 결국 나의, 너의, 모두의 삶인 셈이다. 우리의 삶이 이야기다. 그 서사는 너나 할 것 없이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을 써내려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아름답게 써야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힘’을 할머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손녀 릴리에게 나타난 호랑이 이야기로 흥미롭고 긴장감 있게 풀어간다. 한국 민담에 주로 나오는 호랑이를 등장시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이민자 3대의 삶과 고난, 아픔을 직접적이지 않게, 하지만 강렬하게 들려준 것 같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말이다. 이 부분을 가장 높게 평가하고 싶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고학년이라도 어려울 것 같다. 초등에 굳이 권한다면 독서능력이 좋고 서사를 아주 즐기는 고학년에게 권해주면 좋겠고 청소년 정도는 되어야 무난히 읽을 것 같다. 성인들이 공감할 부분이 더 많아 보였다. 삶을 어느 정도 살아내고, 또 마무리까지도 생각해 본 성인들. 이야기에 특별한 대상이 있겠냐마는 나는 이 책이 어린 사람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는 책이라고 느꼈다.
요즘 수상으로 인해 큰 화제가 된 영화 <미나리>도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라고 들었다. 혹시 공통되는 느낌이나 주제가 있을까? 좋은 이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이 책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그런 날이 올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