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넘은 아이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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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 않은 역사동화다. 한글 창제 이후의 조선시대라는 것 정도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작품보다도 시대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거기에 삶이 있고 그 삶이 독자들을 애타게 하고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다소 낭만적인 느낌도 들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양반들 중에 저런 이들이 있었을까 싶은 인물들. 하지만 이야기에 인물의 맛이 빠지면 무슨 재민겨. 자투리 시간을 때우려고 무심코 잡았다가 그대로 끝까지 읽었다. 어미가 아기 젖을 먹이는 이야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어미의 심정을 알기 때문인지도. 아이들은 그 심정을 모를 터, 나처럼 감동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물난리, 가뭄난리를 연이어 겪은 백성들이 풀뿌리까지 캐어 먹던 시절이었다. 가난한 농민의 딸 푸실이가 주인공인 것도 작가의 의도일 것 같다. 평민의 가정에서도 남녀는 엄연히 달랐다. 곡식보다 풀이 더 많은 죽이라도 아버지와 남동생 몫이 먼저고 푸실이는 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지내야 했다. 가장 불쌍한 것은 그 집의 갓난아기. 태어나자마자 배고픔부터 배워야 했던 막내딸. 푸실이의 여동생.

 

하나밖에 없는 아들 귀손이가 열병을 앓자 어머니는 양반집에 유모로 가기로 하고 약값을 얻어 겨우 아들을 살린다. 갓난아기 몫의 젖마저 아들에게 먹이고 아기는 빈 젖을 빨다가 배고파 울기 일쑤다. 그보다 더 기막힌 일이 있다. 이제 유모로 들어가면 어머니는 계약한 기간 동안은 집에 올 수 없다. 아기의 목숨은 운명에 달린 것.... 아니다, 사실은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제 명이 그뿐이면 할 수 없지.”

아들의 목숨을 살리려고 딸의 목숨은 포기하는 것. 이런 참혹한 일이 예사였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지금 세상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판 참혹사들도 못지않지만 그래도 굶어죽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겪을 일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목숨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푸실이가 있었으니까. 푸실이는 여동생의 목숨을 지키려고 암죽을 끓여 먹이고 젖동냥도 다니고, 어머니가 있는 양반댁에 몰래 가서 어머니를 만나 간청하기도 한다. 형제간에도 이렇게 하는데 그 애비가 하는 꼴이라니.... 푸실이에게는 어머니한테 데려다줬다고 거짓말하고선 그냥 죽도록 시렁 위에 올려둔 애비. “계집애 목숨값이 사내애 목숨값하고 같니? 애초에 계집으로 태어난 죄지.” 자신도 계집이면서 이렇게 말하는 어미. 우리는 이런 세상을 거쳐왔던 것이다.

 

아기와 젖에 관한 이 사연과 함께 대감댁 선비, 그의 딸 효진 아가씨, 그리고 아기를 낳고 돌아가신 그댁 마님, 그리고 선비님이 상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버렸다는 마님의 책..... 그에 얽힌 사연들이 글을 배우기 시작한 푸실이와 맞닿아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된다. 돌아가신 마님, 그의 딸 효진, 신분이 낮은 푸실이, 이 세 여성이 연대하는 느낌이 이 책의 매력이자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매우 낭만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담을 넘자는 발상과 제안이 신분이 낮고 심지어 여성인 푸실이에게서 나왔다는 것, 그것이 책을 읽는 데서 출발했다는 것.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 책 제목이 무엇이었던가? 여군자전. 오우,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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