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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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을 읽으면서 직업병으로 독후활동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떨까, 이런 활동을 하면 좋겠다.... 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냥 손을 놔버렸다. 내가 뭘 할 수준이 못 되는 것 같았다. 그냥 읽으면 될 것 같다. “책을 안 잡은 아이는 있어도 잡고서 끝까지 안 읽은 아이는 없다.” 이런 말이 나올 것 같다.

작가는 게임도 좀 해보신 모양이다. (무슨 경험이든 있는 게 좋다) 나는 게임을 해보지 않은데다가 현재 게임 수준이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도 잘 모른다. 요즘 아이들이 접하는 게임들은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현실감을 제공하는지, 이 책의 배경인 가상현실게임 ‘판타지아’는 지금의 게임 수준과 어느 정도 유사한지 그런 걸 잘 몰라서 읽으면서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런 걸 몰라도 어쨌든 이야기는 무진장 흥미진진했고 아이들은 나보다 더 빠져들 것이 분명했다. 책과 담쌓은 고학년 남학생들도 충분히 유인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이 초라하고 고단한 13살 선우는 가상현실 게임 ‘판타지아’ 속에 들어가는 하루 1시간이 유일한 위안이고 기쁨이다. 그 안에서 어느날 극적으로 ‘원지’라는 여자아이를 만난 후로 선우에게 판타지아 없는 세상은 상상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원지와 함께 즐기는 가상현실 공간은 현실에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온갖 성취감들을 선우에게 선사했다. 게다가 원지를 향한 소중한 감정까지.

이런 설정들이 고학년 또래 아이들을 몰입시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갈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상현실에 빠졌던 주인공은 어찌어찌하여 현실세계에 발을 붙여야 함을 깨닫고 적당한 지점에서 돌아온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훨씬 더 충격적인 문제의식이 들어있었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다. 존재 자체가 달린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아니 존재란 무엇인가? 어디서부터 우리는 존재인가? 존재는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현실세계에서 존재의 소멸은 그것으로 끝인가?

폭풍같은 갈등과 사건을 겪은 선우는 어쨌든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그런 선우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사람, 그리고 선우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 그것이 시사해주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몇 겹인지 그 크기와 깊이가 어떠한지 우리는 다 모른다. 다만 지금 발붙인 이 세상에서 나의 역할은 나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책임이 있다.

아이들은 어디까지 생각이 미칠지 모르겠지만 각자의 깊이에 맞게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한 걸음 더 생각이 나아가고 한 번 더 성찰해보게 될 것은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라는 말을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쓸데없이 끼어들었다가 “깬다”는 느낌을 줄까봐.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궁금해. 아이들이 뭘 생각했는지 몹시 궁금해.^^;;;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 영감을 받으셨다는 작가의 작품세계가 계속 펼쳐지면 좋겠다. 궁금하다. 환상적이고도 깊이있는 세계를 작품으로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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