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굽는 빵집 상상문고 12
김주현 지음, 모예진 그림 / 노란상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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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기시감이 느껴질 것 같은 제목이었다.
빵집, 떡집, 가게, 식당.... 이런 곳에서 판타지가 일어나는 책이 너무 많아서... 이제 내용도 머릿속에서 섞여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요즘 아주 잘나가는 책인지 알라딘 대문에 뜨기도 하고, '시간을 굽는' 이라는 제목도 관심이 가서 구입해봤다. 기시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소재의 동일성 때문에 그렇고, 작가는 또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고 느꼈다. 그건 '나만의 소중한 시간' 이라고 할까.

붙잡고 싶은 때의 기억과 느낌을 담아 빵을 굽는다면, 나는 어떤 순간을 선택할까? 그러고보니 <원더풀 라이프>라는 일본 영화가 떠오르네. 영화에선 빵이 아니고 영상이었지만. 이 책에서 "빵은 평생 한번만 구울 수 있다."고 했다면 그 영화의 느낌과 더욱 비슷했을 것 같은데, 그런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다시는 기회가 없는 한 번뿐인 상황으로 펼쳐졌다면 나는 피곤했을 것 같다.^^;;;

만길이라는 다소 옛스런 이름의 열 살 주인공 아이는 전학 온 날 지율이라는 예쁜 아이와 짝이 된 행운과 동시에 원숭이라는 녀석에게 찍히는 불운을 함께 겪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털레털레 가던 길에 무심코 끌려 다가간 작은 빵집엔 군침나오는 갖가지 빵과 향긋한 빵냄새가 한가득... (이 부분은 약간 기시감이^^) 이 빵집에선 자기가 주문한 빵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시간의 맛과 향과 촉감을 빵에 담아 반죽하면 그걸 빵집 아저씨가 구워 주시고, 그 빵을 먹은 고객은 그때의 그 기분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첫 골을 넣었을 때의 기분을 넣은 '짜릿한 첫 골 슛 도넛'을 먹고 다시 환호성을 지르며 세러머니를 했고, 다른 아이는 '개뼈다귀 카스텔라'를 먹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개의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

솔직히 내게는 전혀 매력있는 판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은 그때가 아닌데, 그 기분만 느껴서 뭐하라고? 일종의 마취와 같은 것 아닌가? 이런 빵집이 우리 옆집이라도 나는 전혀 사먹지 않을 것 같은데...ㅎㅎ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긴 하다. 너희들은 어떤 기억을 빵으로 굽고 싶니? 그러면 서로의 소중했던 순간의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는 있겠다.

추억의 빵을 굽는 것으로 이 책이 끝나진 않는다. 만길이가 아직 무슨 빵을 구울지 정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복한 기억이 아닌 분노의 순간을 빚어 곱씹는 누나의 사연을 엿보기도 하고, 만길이가 상처주었던 여자아이가 주문했던 쿠키에 담긴 기억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야기는 좀더 다각도로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만길이가 만드는 빵은 차원이 한 단계 달라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건 과거의 추억에서 미래의 희망으로 나아가는 전환이었다. 이 지점에서도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생생하겠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말한다면, 주인공이 열 살인 것보다는 한 살쯤 높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주독자를 주인공 연령으로 잡는다고 할 때, 3학년짜리의 말투는 아닌 것 같아서다. "닳아서 덜렁거리는 신발 뒤축 같은 날이다." 투의 말을 3학년 화자가 한다는게 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3학년과 4학년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그리고 아이들은 주인공 연령이 자기보다 높은 건 괜찮게 여기면서도 낮으면 '애들 책'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전자' 라는 소재였다. 주전이 아닌 후보선수의 신세를 그렇게 부르는데, 그건 이제 우리 세대의 지나간 용어가 아닐까? 요즘 애들이 주전자를 알까? 학교 교실에서도 주전자는 사라진지 오래다. 후보선수라고 주전자를 들고 따라다닐 리가 없으니 약간은 시대착오적(?)인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이런저런 사소한 걸림도 살짝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괜찮은 책일 것 같다. 중학년에게 권할 동화를 찾다가 요즘 핫한거 같아서 사서 읽었는데, 중학년 교실에서 읽고 상상과 함께 표현활동하기에 무난한 책이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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