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를 부탁해 바일라 5
한정영 지음 / 서유재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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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가서야 전모를 드러내는 책이다. 그래서 초중반에는 좀 어리둥절하거나 이게 뭐냐 하는 짜증이 살짝 날 수 있다. 나는 이미 전체 퍼즐이 뭔지 알고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부엔 읭?? 하는 부분이 있었다.

스포를 안하고 이 책의 리뷰를 쓰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나도 일부러 찾아본 것도 아닌데 알고 읽은 것처럼. 바로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세월호 가족 이야기다. 세월호라는 말은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래도 정황이 너무나 같아서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언제 쓰신 걸까 하고 서지정보를 보니 2019.4.16.
흠칫 하는 느낌이 들었다.ㅠ

그일이 있은지 5년 후에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또 2년이 흘렀다. 벌써 7년이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때 내 아들이 같은 학년이어서 더 놀라고 어쩔줄 몰라했었다. 그 아들은 졸업을 하고 군입대를 하고 제대까지 했다. 부모 마음 속의 아이들은 아직도 고딩이겠지. 그리고 아들 또래의 청년들을 보면 '우리 애도 살아있다면 저만큼...' 하는 생각에 목이 메이겠지. 7년이 지났다고 그 슬픔이 사라지진 않겠지.ㅠㅠ

왜 다 지난 일을 들추며 이런 작품을 쓰냐고 말하면 안된다. 슬픔은 아직도 생생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그 슬픔을 소멸시킬 방법이 세상에 존재하진 않지만 그래도 충분한 위로를 받을 수는 있었을텐데, 적어도 한이 맺히진 않았을텐데 모든 것이 안타깝다.

이 책은 뭔가 드러내고 주장하려 쓴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힘들었던, 아니 지금도 너무 힘든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뿐이다. 너무 아파서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기에 무의식이 손을 뻗어 그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이 있다. 그 가족의 아빠다.

자식 키우며 모진 소리 안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면. 다가올 참사를 상상도 못했기에 내뱉은 모진 말이 다가온 참사를 보고 마지막을 직감한 딸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면.
딸은 어지간히도 속썩인 아이였다. 그 아이도 아픔이 있었기에. 하지만 부모는 무슨 죄인가. 그리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을. "그러게 잘 키울수도 없는 것들이 자식은 왜 낳았어."라고 비난을 해서는 안되는거 아닌가.
아이는 그렇게 떠났고 나중에 찾은 휴대폰에 남겨진 마지막 두 문장.
"아빠 미안해."
"엘리자베스를 부탁해."
이렇게 이 책의 제목은 <엘리자베스를 부탁해>가 되었다.

화자는 그 아이의 동생 아인이다. 아인이도 언니 못지않게 속을 썩이는 중이다.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몇백만원의 합의금을 물어주게 생기자 엄마는 '탐정사무실'이란 곳에 알바를 하라고 보내버린다. (한참 뒤에 그 합의금 뒷얘기가 나오는데, 알고보니 상대는 단식투쟁 광장에서 폭식투쟁을 하며 조롱한 사람 중 한 명)

아빠에 비해 엄마는 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타로 마스터. 이 분야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어서 아주 생소했지만 작가가 많이 알아보셨구나 싶고 흥미롭기도 했다. 아인이도 매일 아침 엄마 몰래 카드 한장씩을 뽑아들고 나오는데, 카드 내용과 사건 전개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부분이 작가의 내공을 짐작케 했다. 그런가하면 탐정사무소 주민후 소장이 아인의 아저씨에서 아빠로 전환되는 부분은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인이가 주아인이란 걸 안 순간 바로 짐작되기는 했지만.

탐정사무소 주민후 소장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상한데 너무 착함) 그는 주로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을 한다고 한다. 사실 더 이상한 건 뻣뻣하게 툴툴대면서도 그 이상한 소장의 말을 들어주고 도와주는 아인이다. 왜 그런지는 금방 알게 되지만.

울컥했던 문장들.
"집에 가! 엄마아빠가 기다리시잖아. 기다리는 사람이 안오면 얼마나 슬픈데." (105쪽)
주 소장의 말이다. 가슴이 아픈 말.
제목에 울컥하기도 했다. 136쪽부터 시작되는 장은 제목이 '나의 아저씨'였다. 작가님 너무해 엉엉.ㅠㅠ
이 장에서 주 소장은 아인이를 괴롭히는 선자언니 패거리를 혼내주고 대신 머리에 벽돌을 맞는다.
웃겼던(아니 웃펐던) 장면은 주 소장이 "아빠를 찾아주겠다"며 아인이와 함께 한 하루다. 마지막 코스로 갔던 노래방에서 아인이는 이문세의 '파랑새'를 청했다. '삐릿삐릿 파랑새는 갔어도...' 그 노래는 옛날 아빠의 택배트럭에서 질리도록 들었던 아빠의 애창곡. (그런데 이문세를 보고 '원로가수'라고 하다니. 얘 아인아, 내 비록 이문세씨보다는 젊다마는 내 친구들이 오빠오빠하던 사람이 원로소릴 들으니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ㅋㅋㅋ)
주 소장은 거기서 아이돌 노래를 부르고 동작까지 철저히 따라하며, 그러면서 울었다. 그래서 결국 웃긴 장면은 되지 못했다.ㅠㅠ

이 책에서 또 슬펐던 건 어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일탈이 폭력성을 띤다는 점이었다. 아인이 언니는 폭력을 당하고 전학갔고, 간 학교에서는 폭력를 행했다. 아인이가 선자 언니 패거리들에게 당하는 폭력도 지켜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 폭력의 고리는 왜 끊어지지 않을까. 실제로 본다면 난 이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기보다 싫어하고 끔찍해 하겠지. 그런 생각이 날 더 힘들게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곰팡이처럼 번지고 있을 이 음울한 폭력.ㅠ

'엘리자베스'에 대한 이야기는 좀 남겨놓고 글을 마치고 싶다. 고양이라는 얘기는 해야겠다. 폭력을 당하고, 또 폭력을 가하던 언니가 마지막까지 부탁하고 떠난 엘리자베스. 여기저기서 상처입고 다리를 저는 것까지 언니의 분신 같던 엘리자베스. 그 엘리자베스를 찾아 헤매던 아빠. 엘리자베스는 돌아올까?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남은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떠나버린 언니도, 남아있는 아인이도 가엾다. 그래도 더 중요한 쪽을 택하라면, 남은 아인이다. 삶이 남았으니 버티고 살아야지. 엄마아빠도 힘내세요. 이제 행복한 날도 있어야 해요. 누구에게나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게 인생이지만 이렇게 가슴아픈 일은 다시는 없어야 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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