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자존감 - 교사를 지키고, 학생을 바꾸는
서준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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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삶의 기둥 같은 것이라 느낀다.
사람은 뼛속까지 이기적인 존재라서 그럴까,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찾지 못하면 삶을 지탱하기 힘들어진다. 부모가, 자식이, 배우자가, 가까운 이들이 잘 살고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반드시 '나'의 존재가 의미있어야 한다. 어리든 젊든 늙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삶은 참 힘든거라고 느낀다. 바닷가 모래알 하나 같은 내가 대체 뭐라고, 나의 존재가 그토록 의미있어야 되냐고. 왜 그 느낌이 사라지면 삶이 무너지는 것 같냐고. 그걸 어떻게 평생 붙들 수가 있냐고.

그 답은 각자 찾아야 될 것 같다. 어쨌든 '자존감'은 내 정신적 생존의 핵심이다. 이 책은 그것을 전제로 하고, 특별히 교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 혹은 회복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저자의 고민과 경험과 배움을 나눠주는 책이다.

특별히 '교사'의 자존감을 한권의 책으로 다룬 이유를 나는 프롤로그의 '진동'이란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대치되는 말은 아니지만 '영향력'이라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영향력이 제로인 사람은 없겠지만 교사는 특히 성장기의 학생들과 질적으로 양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군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중요하다. 이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교사의 자존감을 흔드는 요인이 내적, 외적으로 많이 있다. 저자인 서준호 선생님은 그 환부를 가장 많이 접한 외과의사 같은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의 심리극 현장을 담은 3장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이 책의 특징이자 차별성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진행했던 심리극 장면을 거의 시나리오처럼 엮었다. 읽으면서 그 장면에 잠기기도 하고 당사자의 심적 고통이 연상되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심리극이란게 이런 거구나 소름이 돋기도 했다. 특히 진행자에게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어야 이런게 될까. 저자는 노력과 함께 타고난 사람이기도 한 것 같다. 나라면 박사공부를 했다 해도 절대 못할 것 같다. 나도 직면하기 어려운데 남을 직면시켜야 하고, 감정의 격동을 지켜보는 정도가 아니라 때론 유발해야 하고, 그 감정을 전환하고 정화하는 과정까지 유연하게 이끈다는 게 보통 내면의 힘이 아니고선 힘들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오그라든다.^^;;;;

심리극에 나온 교사들, 그외 많은 이들의 삶과 성장배경을 들여다 보게되면 내가 얼마나 평이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을 뿐 나는 부모님께 거의 상처받지 않고 자랐고, 학업과 취업에도 특별한 걸림돌 없이 지금까지 살았고 폭력이나 학대나 실연이나 시집살이를 당해본 경험도 없다. 이게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특별한 삶이었다는 것을 나이가 꽤 많이 들어서야 알게됐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특별히 평범하고 착한 양가 부모님께 백번 절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평탄하게 살아왔지만 나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자존감의 문제가 있다. 내가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어서 별 문제가 된 적은 없었지만 한때 나도 꽤 못나게 군 적이 있었는데 그건 모두 열등감 때문이었다. 나는 왜곡된 성적 줄세우기 입시에 덕을 본 사람이다. 전인적 능력을 평가했으면 절대 교대에 못갔을 거다.^^;;; 다행히 교대에 들어가봤더니 시골출신들이 많았고(나때는 그랬음) 그들의 형편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점이 위로가 되었을 뿐이다.ㅋㅋ 뒤늦게 피아노를 배우고 수채화를 배워도 그때뿐 절대 멋있어 보이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고, 나는 능력으로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너무나 초라함을 느꼈다. 꽤 많이 극복한 지금은 그것이 부러움으로 표출된다. 이 나이가 되어도 재능으로 멋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와 좋겠다. 부럽다. 왜 재능은 저렇게 몰빵되는거냐. 왜 저 사람만 모든 걸 가진 거냐.... 부러움이 부러움에서 그치고 내 마음에 꼬임을 가져오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조심하면서 산다. 그게 내가 자존감을 지키는 마지노선이다.

위와같이 성장배경이나 기본 역량에서 오는 자존감이 있는 한편, 직업 수행에서 오는 자존감도 있다. 직업수행도 본인의 역량과 관계가 없진 않지만, 아는사람은 아는 복불복이란 게 있다. 관리자, 부장이나 동료, 학생, 학부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직업수행에 큰 차이가 온다. (물론 견고한 사람은 이에 굴하지 않고 능력발휘를 하겠지만 보통 사람은 쉽지 않다.) 심리극에 나온 많은 교사들이 이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쓰러졌다. 이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새로 간 학교에서 아이들에 대한 정보 없이 방심했다 뒤통수 맞은 한해가 있었는데, 1년 내내 미친듯이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왜 그때 끝까지 '좋은 사람' 이미지만 지키고 누구의 마음도 다치게 않겠다며 혼자 마음고생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울화통이 터진다. 내가 만약 심리극 자리에 있었다면 그들에게 욕을 퍼부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내 부족함이려니 내가 더 잘해야 되려니 하는 생각으로 결국 무사히 한해를 마치긴 했지만 그 구성원들은 생각하기도 싫은 존재들로 남았다. 내가 그때 좀더 강하고 단단했더라면, 말하자면 자존감이 높았다면 그들을 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잘하고 있었던 때의 사람들을 찾았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내 근무지까지 찾아온 전 학교 아이들, 스승의날에 정성스런 톡을 보내준 전학교 학부모, 날 좋게만 기억해주는 전학교 동료와 대화를 이어갔던 건 이기적이게도 내 자존감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다음해 3월 내내 별보며 퇴근하면서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했던 것도 여기서 더 자존감을 놓치면 큰일나겠구나 싶은 위기의식에서였을 것이다. 이상이 가장 기억나는 나의 자존감 투쟁 스토리다. 그나마 이 끈을 놓치면 끝장이라는 자각이 있었던 건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끈까지 놓쳐버리게 되면, 그때는 도와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그리고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도와야 한다.

그 방법이 이 책에 가득 나와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심리극을 들여다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워크숍에 직접 참여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 가장 좋다. 위에 내 얘기를 좀 했지만, 일상을 이어나가면서 회복을 꾀할 정도가 된다면 다행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잠시 멈추고 회복에 전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상처가 자존감에 어떻게 상처를 내고 그것이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장기적인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참 두려운 일이다. 그저 내 자식과 학생들의 회복탄력성을 믿는 수밖에...^^;;; 하지만 여기에 기대기만 할 수는 없으니 늘 돌아봐야 하겠다. 한편으로는 부모가 자식 인생의 걸림돌이구나, 어른다운 어른이 훨씬 더 적은 사회구나 하고 느낀다. 우리 학생들이 살고 있는 가정은 과연 어떤 곳일까. 그걸 속속들이 다 알게 된다면 내 마음이 다 감당이 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이렇게 상처받은 가족이 많다는 건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뜻일까. 부모를 골라 태어날 수도 없는데 거기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학대받고 탈출구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삶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부디 모두에게 회복의 기회가 있길 빈다.

이 책은 특별히 교사 대상으로 범위를 제한했지만 자존감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마지막 4장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법]은 한발 한발 실천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겠다. 어디를 향하든 한 발을 떼어야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매일 문장 완성하고 다짐하기'는 참 마음에 든다. "내 자존감을 5% 더 회복하기 위해 오늘 당장~"
그리고 이왕이면 여럿이 함께, 기간을 정해놓고 하라는 조언도 좋다.
"내 자존감을 5% 더 회복하기 위하여 매일 땅끄부부 홈트를 30분씩 하겠습니다. 1주일간 한 후 다음 주말에는 나에게 ***치킨을 선물로 주겠습니다."
이정도면 괜찮을까?ㅎㅎㅎ

자존감은 불변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큰 문제상태는 아니라 해도 이 책으로 대비하고 있어야겠다. 생각지도 못한 상처가 훅 들어올 때,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을 겪을 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나를 포함한 많은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고 교단에 좀더 행복한 마음으로 섰으면 한다. 책임감과 내면의 자유로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으면서. 또한 교사의 자존감에 대한 통찰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자존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도록 생각의 깊이를 더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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