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펫을 부는 백조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프레드 마르셀리노 그림, 김태훈 옮김 / 산수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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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고학년 권장도서 중에서 오랜기간 빠지지 않고 있는 책을 고르라면 <샬롯의 거미줄>을 꼽겠다. 작가의 다른 작품은 <스튜어트 리틀> 밖에 몰랐는데, 이 책이 나왔길래 작가를 믿고 읽어봤다. 샬롯의 거미줄보다 나중에 쓰여진 책이지만 그래도 몇십년 된 작품이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와, 이 책도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재밌었을텐데. 샬롯의 거미줄이랑 스튜어트 리틀처럼.' 소개글을 읽어보니 세 편 다 영화 제작이 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두 편은 영화로 봤는데 이 작품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주 궁금하다.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특히 트럼펫 연주 장면. 잘하면 음악영화가 되었을 것도 같은데.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지만, 이책은 진입벽이 살짝 있다. 바로 빠져드는 책이 아니라서 독서 의욕이 부족한 아이들은 완독을 할 수 있을지 보장하기 어려워 보인다. 부모가 이야기 나누며 도입을 함께 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초등 고학년까지 그걸 해주는 부모는 드물겠지만....) 초반부를 넘어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그때부터는 읽기에 속도가 붙는다.

읽으면서 감탄한 것은 작가가 아주 많은 이야기를 이 안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이렇게 저렇게 짜맞추고 설계한 느낌이 아니라 백조 루이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나오게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자신의 종(트럼펫 백조) 특유의 소리를 낼 수 없게 태어난 루이. 그가 좌절하지 않고 살아내는 과정 속에 장애, 우정, 가족애, 책임, 동물권 등등의 주제가 다 들어있고 철새의 생태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들어가 있어서 더욱 좋다. (악보도 가끔 나온다.^^)

백조가 어떻게 트럼펫을 부냐, 백조가 글을 배운다니 말이 되냐 이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 하는 아이가 꼭 있음ㅋ) 그런걸 따지는 건 문학을 부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좀 길지만 작가의 말을 옮겨보겠다.
"내가 쓴 이야기들이 진짜냐고요? 아니에요. 다 환상적인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담은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는 쥐처럼 생긴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요. 현실에서는 거미가 거미줄로 글을 쓰지 않아요. 현실에서는 백조가 트럼펫을 불지 않아요. 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저 하나의 삶일 뿐입니다. 상상의 삶도 있어요. 나의 이야기들은 지어낸 것이지만 거기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동물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진실 말이죠."

"상상의 삶도 있어요." 라는 말에서 왠지모를 안도감 같은 걸 느꼈다. 내가 작가도 아닌데 왜 그럴까? 현실이 아닌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히고 감상을 끌어내려 하는 것이 과연 의미있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아닐까. 그래. 작가의 말에 힘입어 상상의 삶 속에 따지지 말고 빠져보자.^^

이 책의 배경은 북아메리카다. 계절에 따라 캐나다와 미국의 호수를 오가는 백조들의 생태가 담겨있다. 트럼펫 백조 부부에게 태어난 5남매 중 루이는 아무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야기에서 '언어장애'라는 표현이 사용됨) 이들에게 소리란 매우 중요한 것이고 루이처럼 수컷인 경우 짝짓기할 때 필수인데 안타깝게도 루이는 아무리 애써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 과정을 캠프장에 온 소년 샘이 지켜보았고, 동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샘은 루이와 친구가 된다. 여름이 끝나고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이동 후 루이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첫 도전을 하게 된다. 말을 못하니 글을 배워야겠다는 도전이었다. 루이는 샘을 찾아 먼 길을 혼자 떠난다. 다행히도 샘을 만난 루이는, 샘이 다니는 학교 1학년 선생님께 글을 배우고 작은 칠판을 목에 걸고 다니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과의 인연은 여기까진가 했는데, 루이는 가족을 다시 만난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세레나도 만나지만, 소리를 못내는 그는 구애를 할 수가 없다. 글자를 배운 것도 백조 무리에선 아무 소용없었다. 시름에 잠긴 아들을 보고 아빠백조는 결단했다. 도시에 나가 악기매장의 쇼윈도를 뚫고 들어가 트럼펫을 구해 온 것이다. 백조가 트럼펫을? 하지만 루이는 글을 배웠던 것처럼 트럼펫도 마침내 배워냈다.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찜찜한 것이 남는다. 그 악기는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니잖아? 민폐를 끼쳐서 잘되는게 진짜 잘되는거야? 하지만 루이는 이것까지 생각하는 백조였다. 그는 돈을 벌어 빚을 갚기로 한다. 여기서부터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할 것 같다. 트럼펫 부는 백조 루이의 취업 과정.ㅎㅎ (영화에서도 이 부분이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꼭 한번 보고 싶다.^^) 캠핑장 나팔수, 백조보트장, 동물원과 나이트클럽 등. 루이는 점점 몸값이 올라가며 넉넉한 돈을 벌게 된다.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고 눈뜨고 코 베이는게 세상이라 사실 아슬아슬했다. 루이가 그 돈을 지켜낼 수 있을지. 하지만 비정한 세상을 여기서 반영해버리면 책 읽을 맛이 나겠어? 결국 루이는 소중히 지켜낸 월급과 칠판에 쓴 편지를 아빠 목에 걸어드리고, 아빠는 본인이 난장판 만든 악기점을 향해 날아간다....

동물원에서 일하던 때에 '날개 끝 자르기' 내용이 나온 것과 결말 부분에 '오듀본 협회'라는 자연 보전 단체가 나온 것을 보면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만난지 오래된 샘이 바람결에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를 듣고 루이가 왔구나 생각하는 대목이 정겹고 인상적이다.

북미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 트럼펫의 힘차고 멋진 소리를 책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책, 역경과 장애를 뚫고 사랑까지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여러 건강한 가치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아주 두껍진 않으니(280쪽) 아이들의 완독을 격려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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