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레인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2
은소홀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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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소재에 대하여,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쓸 수 없을 것 같은 글을 만나면 설렘이 뽀골뽀골 올라오는게 느껴진다. 이 책의 시작이 그랬다. 올라오던 그 설렘은 퍼져나가 전체를 휘감았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새로움이었다.

스포츠를 다룬 동화들은 꽤 많다. 내가 읽은 바로는 야구가 제일 많았던 것 같고, 축구도 꽤 있고, 농구나 육상 등등도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수영. 수영은 처음 본다. 수영이란 운동은 구기종목처럼 다채롭진 않잖아? 어떻게 수영으로 장편동화가 될지, 궁금했다. 아 그런데 정말 내가 본 어떤 스포츠 동화보다도 감각적이었다. 가장 안타까운건 나에게 그런 경험이 없는 것. 나는 세숫대야에 얼굴도 담그지 못한다고. 엉엉...ㅠ 이 책의 감각들을 정말 몸으로 느껴보고 싶은데 이생망이라고 하겠다.^^;;;

처음보는 작가이신데, 이분은 왕년에 수영선수였을까? 아니면 수영이 취미? 수영종목의 광팬? 아니면 자녀가 수영 유망주? 이런 상상을 해볼 정도로 이 책은 실감났다. 위의 예상이 모두 빗나갔고 '그냥 쓴 거'라면 헐~ 너무해.ㅎㅎㅎ

한강초등학교 수영부 선수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엘리트 체육과 운동부 운영에 대해서 좋은 소리를 못들어본거 같은데 이 책에 나온 모습들은 꽤 보기 좋았다. 코치님도 친절, 성실하신 좋은 분이고 아이들 간의 관계도 아주 훈훈하다. 각기 개성과 장점이 있으면서 시기하지 않고 서로의 방법대로 서로를 격려한다. 그중 대표 주인공은 수영부 에이스 강나루. 선수출신 부모님을 둔 나루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 나루가... 얼마전부터 등장한 다크호스 푸른초등학교의 김초희한테 1등을 한번 넘겨준 뒤로는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중심인 나루에게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일들. 복잡한 심경을 안고도 일단은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나루는 여전히 수영실의 자물쇠를 스스로 열고 아침운동을 계속한다.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나루가 그 또래 아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대단한 특별함을 갖춘 건 아니다. 나루도 물살을 가를 때만 빼고는 평범한 6학년 소녀일 뿐이다.

수영부 주장 지승남과는 여섯 살때부터 함께 수영을 한 사이고 이웃사촌이며 온가족이 함께 어울리는 사이다. 항간에 커플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는 이들은, 이제 친구에서 사귀는 사이로 넘어갈 것인가?

아마추어 수영대회 입상전력이 있는 태양이는 선수들의 세상을 맛보고 싶어하며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학교에 전학왔다.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수영부 입단에 성공! 태양이의 눈과 마음에 꽉 차버린 나루. 둘은 친구가 될까? 아님 다른 그 무엇이 될까?

나루의 롤모델인 언니 버들이. 수영자매였던 그녀들 중 언니가 먼저 우수한 성과를 내며 체육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잠시 부진을 겪던 언니는 바로 다이빙으로 전향해 버렸다. 대회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기도 하면서 한발짝씩 나가는 언니. 언니는 사소한 성취에도 기뻐하는데 그런 언니를 보는 나루의 마음은 복잡하다.

삽시간에 나루를 추월하고는 선두자리를 절대 내주지 않는 초희. 새로운 여왕 같은 초희는 사적인 마주침에서도 언제나 쾌활한데 나루는 저절로 조여드는 긴장감을 조절하기 힘들다. 어느날 같은 샤워실을 쓰게 된 나루는 초희의 수영복을 집어들었다가 얼떨결에 자기 가방에 넣어버리게 되고 초희쪽은 난리가 나는데, 반듯하게 살아온 나루는 이 대참사를 어떻게 처리할까? 나루는 자신 앞에 떳떳한 사람으로 다시 돌아올수 있을까?

사람들마다 자신의 길을 간다. 여러 길 중엔 남보기에 참으로 이해 안되는 길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서 고생하고 눈에 보이는 열매는 없는 길이라 하겠다. 하지만 어떤 길이든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응원받을 자격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나 남을 파괴하는 길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내심이 부족한 내게 스포츠 선수의 길은 너무 보장없고 괴롭고 확률 낮은 길로 보인다. 하지만 남의 길을 그런 잣대로 재지 말 일이다. 이제 나의 자식들보다도 어린 주인공들의 진정성을 보면서 난 그걸 느꼈다. 그들이 고된 인내의 달콤한 열매를 따먹든, 그렇지 못하든 그들이 지나갈 모든 과정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것임을. 나루도 나처럼 그것을 깨달았을까.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코로나 시대의 아이들을 본다. 어떤 선생님 표현대로 강건너에 밥상을 차리는 심정으로 수업을 만들어 올린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하는데 그 진심에 응답하는 일부의 아이들이 있다. 그들 또한 진정성을 보여준다. 일부지만, 이 동력으로 힘든 시간들이 굴러간다. 그게 없었다면 모든 것은 마른 먼지처럼 퍼석하게 흩어져버렸을 것이다. 나루와 친구들을 보며 나자빠지지 않고 버티는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다. 대충 해서 올려도 출석은 되는데 정성껏 해서 올리며 늦게 하교하는 (우리반은 학습시작과 끝시간에 단톡에 등하교 신고를 한다)아이들. 첫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한번 더 할 수 있게 시간을 더 주실 수 있냐고 문자를 보내오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한테서 나루를, 태양이를, 승남이를 본다.

이 책으로 서평이벤트를 열어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원하면 빌려주되 서평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위에 우리반 아이들을 꽤 미화했는데, 그건 극히 일부인데다 그 아이들조차 책은 썩 좋아하지 않아서 아마도 무안한 제안에 그치게 될 수도 있다.ㅎㅎ 그리고 다른 내용은 다 가라앉고 러브라인만 동동 떠올라와 보일수도...ㅋㅋ 방학전에 학년도서로 확보되어있는 진형민 작가의 <사랑이 훅!>을 배부하고 읽게 했었는데, "선생님은 왜 자꾸 이런 책을 읽으라는거지?" 할지도 모르겠다.^^;;;

표지에는 5번 레인에서 홀로 전진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았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5번 레인의 역주. 아름다운 역주를 응원한다. 아이들아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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