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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의 초록 리본 ㅣ 사계절 아동문고 97
박상기 지음, 구자선 그림 / 사계절 / 2020년 6월
평점 :
<바꿔!>를 쓰신 박상기 선생님의 작품이라 기대돼서 신청했다. 전작과는 소재가 완전 다른 분야였다. 일단 동물들이 주인공이라는 것부터.
도야는 늙은 멧돼지다. 도입부터 나오는 주인공 역할의 솔랑은 고라니고, 그와 친구가 되는 청설모 청서, 까마귀 깍 등이 나온다. 대립으로 긴장감을 주는 역할은 개들이 맡았다. 버려진 투견 대발이 이끄는 들개 무리들.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적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의 진정한 적은 바로......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면 될 동물들이 인간들에 의해서 얼마나 그들의 터전과 생존을 위협받는지 잘 보여준다.
고라니 솔랑이 동생과 함께 그가 살던 잣나무숲을 떠나 건너편 산으로 가고 싶어하는 데서부터 문제는 예견된다. '둥근발 괴물'은 여지없이 덮쳐왔고 결국 책의 초반부터 독자는 로드킬의 현장을 보게 된다. 솔랑은 동생을 잃고 혼자서 미지의 산에 발을 들인다. 이제부터 하루하루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험난한 현장이 펼쳐진다.
늙은 애꾸눈 멧돼지 도야와의 만남은 그 험난함을 더해주는 사건인 줄 알았는데, 솔랑에게는 구원이었다. 퉁명스러운 배려로 시작한 애정은 보호를 넘어 결국 솔랑을 지켜주는 희생으로 이어진다. 육식을 하는 멧돼지가 고라니에게 베푸는 이 사랑은 무엇인가? 도야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인간을 무조건 파괴자로만 그리진 않는다. 도야도 그 점을 인정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날 해치려던 것도, 구해 주려던 것도 인간이었으니까." (111쪽)
그래서 도야는 인간의 물건을 모으는 괴상한 습성을 갖게 됐다. 인간의 언어와 방식을 아는 까마귀 깍을 만나 도야는 소망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좋은 뜻을 가진 인간과 마음이 통해 보는 것이 내 소원이 됐어."(111쪽)
그 소통의 매개 중 가장 중요한 것, 이 책의 제목인 '초록 리본'.
인간처럼 다양하고 개체간 특성차가 심한 생물이 또 있을까? 눈앞의 제 한몸 이익에만 눈이 멀어 생명을, 더 나아가서는 생태계를 절단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인간,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 들여 나를 알지도 못하는 생명들을 살리려 하는 인간.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점들이 있다. 나의 위치는 과연 어디쯤일까?
도야는 각오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인간이 보낸 초록 리본의 답신에 웃음을 띠었을까? 도야가 살려준 생명 솔랑, 그가 다시 돌아간 터전에서 행복을 느끼며 도야를 추억할 수 있길. 초록 리본의 소통이 지구를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 수 있길. 부디 너무 늦은 것은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