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마래 - 제14회 마해송 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56
황지영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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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페이스북이란 걸 하는데, 이게 기록의 욕구인지는 모르겠다. 그보다는 그냥 수다떨고 맞장구치고, 남의 담벼락 보면서 내 좁은 정보의 범위를 조금이라도 넓히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나란 인간은 남기는 걸 별로 안좋아하고 추억에 애틋해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그냥 지금 편한게 장땡이라서.

그런데 기록의 욕구가 강하신 분들은 순간순간을 흘려보내기 아까워하시고 그래서 기록으로라도 그걸 붙잡아놓고 싶어하시는 것 같다. 사람들 성향은 다 다르니까.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에 한정될 때만 무조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을 끼워넣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 타인에는 자식도 포함된다. 이상한 말인가? 냉정히 따져보면 이상할 게 없다. 나 말고는 모두 타인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이 특이했다. 리얼 미래도 아니고 리얼 마래? 읽어보니 마래는 주인공 소녀 이름이었다. 리얼이 붙은 이유는 더 읽어보면 알게 된다.

마래의 부모님은 매우 훌륭한 신념을 가진 분들이다. 아이를 사교육에 밀어넣어 힘들게 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키우려고 애를 쓴다. 숲속에서도 살아 봤고, 이제 1년간의 캠핑카 여행을 계획중이다. 학교도 관두고 홈스쿨링을 하면서 말이다. 많은 아이들이 부러워하고 동경할 것 같은 생활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라면 싫다. 내가 언제 숲에서 살고 싶다고 했느냔 말이다. 길 위의 아이가 되어 캠핑카로 전국일주를 하고 싶다고 내가 그랬냐고. 이상적인게 누구에게나 좋은 건 아니다. 나라면 그냥 적당히 답답한 학교를 다니고, 피아노든 뭐든 한두개 학원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남들 사는대로 살다가 주말엔 혼자 빈둥거리기도 하고 가끔씩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시간을 낙으로 삼아... 그렇게 사는게 낫겠다. 그게 별볼일 없는 줄은 알지만 말이다.

마래 부모님의 문제는 자신들의 이상을 절대시했다는 데 있다. 당연히 좋은 건데 의견을 왜 물어봐? 이게 어떻게 안좋을 수가 있어? 우리가 옳아, 남들이 못할 뿐이지. 이런 태도....

더 큰 문제는 그걸 남들 앞에 공개했다는 점이다. 마치 상품처럼. 아빠의 블로그는 12년째 마래의 육아일기를 공개하고 있다. 엄마는 그 소재로 책을 몇권이나 내서 인기 작가가 되었고.... 캠핑카 계획도 가만보니 새 책을 쓰기 위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아무래도 같은 연령대에 공감하는 편인지 나는 동화를 읽다가 주인공 어린이보다 조연인 부모한테 공감하게 될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절대 아니었다. 마래의 입장에서 부모의 얍삽한 인식에 분노가 솟구쳤다. "소재로 쓰려고 나를 낳았나?" 라는 의문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면이 나에게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자식의 기록, 학생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100%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자식 기록은 바쁘고 힘들어서 못남겼으니 할 말이 없고, 가끔 학생들의 결과물과 수업장면을 남겨둘 때가 있는데 그건 정말 그들을 위해서가 1도 아니다. 100% 나를 위한 것이다. 나의 성취 장면을 남겨놓고 싶은 것이다. 단지 난 마래 엄마보다는 양심이 있어서 공개된 곳에 사진을 올리지 않는 정도?

다행히 '리얼 마래'를 통해 마래 부모님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 큰 씨줄에 친구 사이의 이야기를 날줄로 촘촘하게 짜 넣었다. 어린이 독자들은 그쪽에 더 집중할 듯하다. 이 작가의 <우리 집에 왜 왔니?>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친구간 이야기에서 심리묘사가 정말 탁월하다. 고학년 학생들에게 권해줄 수 있는 큰 장점이다.

작가 엄마와 사진작가 아빠,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 이걸 누린다면 참 행복할거 같아서 아쉽기도 한데, 구경거리가 된 생활, 기대된 결과를 안고 사는 삶은 결코 자유가 아니기에.... 자신에 찬 부모, 자신에 찬 교사들에게 경종을 울려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자유로움도 속박이 될 수 있는데 절대적인 것이 뭐가 있으랴. 그저 늘 돌아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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