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오백원! 단비어린이 문학
우성희 지음, 노은주 그림 / 단비어린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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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도 수준도 무난하고 쉬우면서도 감동은 잔잔하고 깊은 단편집을 만났다. 학급에서 읽어주거나 권해주거나 혹은 모두에게 읽게 해도 크게 무리가 없겠다. 속된 말로 안전빵이라고 할까. 그건 평범하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네 편 중 두 편이 치매에 걸리시고 떠나보내야 할 어머니를 보면서 쓴 작품이니. 그런데도 작품은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네편 중 마지막편에 치매어머니의 모습이 담겼다. [달콤감, 고약감]이라는 짧은 이야기. 감을 무척 좋아하시던 지유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지유는 사라져가는 할머니의 기억을 붙잡으려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할머니, 오감은 뭐야?"
"단감, 연시감, 홍시감, 곶감, 말랭이감."
"그럼 육감은?"
"달콤감"
여기서 달콤감은 감의 종류는 아니고 앞집 감나무의 감이다. 맛난 감을 나눠주곤 했던 예전 할머니에 비해 새로 이사온 할아버진 국물도 없다. 할머닌 그 감 이름을 '고약감'으로 바꿨고.
할머니를 위해 지유는 감나무에 올랐고, 들켜서 곡절을 겪었지만 할머니한테 감을 가져다 드릴 수 있었다. 마지막 문장. "세상에! 고약감을 다 먹어 보다니...." 이 대목에서 웃음과 함께 안도하는 독자(나).

첫번째이자 표제작인 [기다려, 오백원!]에도 할머니가 나온다. 10분에 오백원을 주고 옆집 도경이에게 알바를 시키는 할머니의 사연은 무엇일까? 그 알바는 할머니네 하얀 푸들 강아지 '백이'를 산책시켜 주는 거였다. 짝꿍 이름도 모를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한 도경이, 감정을 주기 싫어서 강아지 이름도 계약관계를 상기시키는 '오백원'으로 부르는 도경이는 알바를 계속 하면서도 그대로일까?
"우리 백이가 그새 정이 들었나 보네. 나가 인자 하늘나라로 돌아가도 걱정이 읎겄어. 도겡아, 우리 백이 잘 부탁헌다, 잉?"
얼마나 슬픈 장면인가. 하지만 마냥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는 희망의 힘이 이 책의 특징이다.

두번째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긴 다리]는 외딴집에서 할아버지랑 단둘이 살아가는 솔이 이야기다. 솔이를 맡겨놓고 엄마 아빠는 몇년째 소식도 없고 솔이는 친구도 없이 날마다 집안에서 검은 크레파스로만 그림을 그린다. 집안에만 있던 솔이를 어느날 할아버지는 일터에 데려가셨다.(할아버지는 정원사인듯) 거기서 온갖 모양으로 태어난 정원수들을 보고 할아버진 말씀하셨다. "원래 나무에 들어 있던 애들을 내가 꺼내줬단 말여."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꺼내는' 이야기였다. 안에 감추고 있는 묵은 생각과 감정들을. 그리고 가능성들을. 솔이는 이제 그럴 때가 됐다. 이제 솔이는 동전으로 검정 크레파스를 긁어내어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다른색 크레파스를 손에 잡는다. 솔이는 건강한 할아버지가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가. 건강한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날 꺼내줄 사람이 주변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심지어 타이밍도 맞아야 한다. 희망적인 이야기지만 참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세번째 이야기 [깡패 손님]의 깡패는 주인공 별이다. 아빠랑 재혼하려는 아줌마의 분식집에 가서 깡패짓을 하려고 하나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결국 별이는 아줌마의 크고 포근한 품에 안겼다. 변하는 별이의 심리가 억지스럽진 않다. 여기서도 희망을 본다. 새로운 가정이 잘 꾸려질 것 같은 희망. 내가 아줌마라면 절대.... 그런 수렁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을 거지만....;;;;; 아줌마는 내가 아니니까, 단단하면서도 포근한 사람이니까 깡패가 되고 싶었던 딸과 함께 새로운 행복을 잘 만들어갈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짧은 4편이 담겨 있다. 80쪽밖에 안되어 2학년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느낌과 생각을 나누려면 3,4학년이 적당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보니 나는 꽤 비관적이고 한계적인 사람인 것 같다. 대책없는 희망은 곤란하지만 어차피 유한한 인생에서 힘든 상황에만 집착하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는 꼭 필요한 것 같다. 때로는 이별이 찾아온다. 그게 운명이면 보낼 것은 보내고 나는 남아서 또 살아가야 하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평생 처음 맞는 혹독한 코로나의 봄. 어떤 고난이 우릴 기다릴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지금. 그래도 주변에 돋아나는 새순과 꽃들을 반갑게 눈여겨봐야겠다. 사실 인생의 하루 앞을 모르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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