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후루룩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30
윤해연 지음, 김영미 그림 / 열린어린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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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착 감겨드는 동화책을 또 만났다. 다섯 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동화집이다. 다섯 편의 제목이 모두 의성어, 의태어로 되어 있는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이리라. 신선하고 감각적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표제작 [후루룩후루룩]은 무슨 소리일까? 아이는 매일 편의점에 간다. '꿈나눔 카드'를 들고서. 한번에 5천원까지만 쓸 수 있는 꿈나눔 카드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아이. 그동안에 받은 수모와 눈치는 아이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다른 곳도 갈 수 있건만 이 편의점을 고집하는 이유는 적당히 불친절한 '안경' 알바생 때문이다. 안경은 불쌍해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치도 주지 않는다. 가끔 원 플러스 원이라며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을 툭 하고 챙겨주긴 하지만.... 어느날 아이는 안경이 사장님과 다투는 걸 봤다. 알바비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안경은 원 플러스 원을 챙겨준다. 나오는 길에 안경은 아이를 '후루룩!'이라고 불러세우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네가 거지라서 주는 게 아니야. 가난하니까 주는 거지."
"뭐라고요?" (째려보며)
"가난은 창피한 게 아니야."
"후루룩, 우린 어차피 가난해. 네 탓이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하지만 넌 근사한 녀석이야. 네 탓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 같더라. 난 너만할 때 가난한게 내 탓 같았거든. 그래서 창피했어. 근데 이젠 알아. 창피한 게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가끔 남이 페푸는 호의를 받아도 돼. 나중에 갚으면 되니까 상관없어. 알겠냐?"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이 부러워서 침을 질질 흘렸고 지금도 남들의 집값에 턱이 떨어질듯 놀라는 나지만 끼니를 걱정하는 빈곤을 겪어본 적은 평생 없다. 생각해보니 이런 카드로 밥을 먹는 아이들이 '무려 돈까스'를 사먹는다고 화를 냈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이런 카드를 쓰는 아이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돌아보게 되네. 이런데서 이야기의 힘을 또 느껴본다.

빈곤층 아이들의 일탈이 더 심한 것은, 통계를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특별히 이들을 위해 노력해 본 적도 없는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 자존감을 세우는 데 실패한 탓도 있지 않을까. 안경 알바생이 자존감을 세우고 자기 알바비를 챙겨가며 살아가는 건강한 모습은 참 보기 좋다. 후루룩도 그럴 것 같다. 아직은 자존감보다는 자존심이 앞서고 있지만.... 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게 하려면 어른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 짧은 이야기가 큰 고민을 안긴다.

두번째 [콩닥콩닥]은 처절하다. 아이는 이걸 '가슴속 알갱이들이 뛰는 소리'라고 표현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울음소리>라는 특이한 형태의 그림책이 떠올랐다. 그 그림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정폭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우리 교실에 있었던 아이들 중에서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보내버린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나는 가늠하지도 못한다...

아이는 무슨 사연인지 엄마가 사라지고 아빠랑 둘이 산다. 아빠의 보살핌은 기대할 수 없고 알아서 먹고 치우며 학교에 다닌다. 아빠의 귀가시간은 아이가 잠자리에 든 시간이고 거실에 '사나운 발소리'가 들리면 아이의 가슴속 알갱이들은 뛰기 시작한다. 콩닥콩닥. 콩닥콩닥.

어느날 아빠는 모처럼 따뜻한 밥상을 차렸다. 그 밥상 앞에서 미친듯 뛰는 가슴 속 알갱이들을 누르고 용기를 낸 아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이후의 상황이 반전되기를 바란다.

이야기에 선생님도 나오는데, 딱히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괴롭히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하고 "얼굴이 왜 그래? 누가 너 때렸니? 하고 묻기도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선생님이 좀 더 깊고 세심하게 살펴봤더라면 도울 방법이 있었을까?.... 적어도 아이가 그렇게 힘들게 용기를 내지는 않아도 됐었겠지. 좀더 세심하게 관찰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세번째 이야기 [드르렁 드르렁] 이건 누가 봐도 바로 알 수 있듯이, 코고는 소리다. 난 이 이야기가 가장 맘에 들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학교 수업이 끝나도 줄줄이 이어지는 스케줄을 헐레벌떡 따라다니는 윤재. 그냥 그렇게 살아와서인지 문제의식도 없다. 자주 하품을 할 뿐이다. 하품을 하면서도 백점을 맞는다. 어느날 1층에 새로 생긴 미술학원 앞에 걸린 할머니 그림을 보다가 윤재는 연거푸 하품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림속 주인공은 날마다 바뀌지만 한결같이 눈을 감거나 자고 있었다. 윤재가 그림 앞에 머무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어느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림을 보던 윤재가 학원을 째고 집으로 직행한 것이다. 소파에 앉자마자 윤재는 잠이 들었고, 학원 연락을 받고 회사에서 뛰어온 엄마도, 뒤이어 들어온 아빠도....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의 거실에서 낮잠에 빠진 가족의 한 장면이 어찌나 편안한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밥보다 잠이 맛있다는 사람이라서....ㅎㅎ 그래서 이 작품에 더 꽂힌 것 같다. 하루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는 열혈인생들을 만나면 내 인생이 좀 열등해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이 편안한 장면을 포기 못하는 거 보면 어차피 성취에 목 맬 인생이 못되는 거겠지. 다른 이들도,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충분히 잘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네번째 이야기 [말랑말랑] 여기서 말랑말랑은 중의적 의미인데 그중에 하나는 할머니 젖이 말랑말랑... 아이들의 꺅~ 변태~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멀미가 나긴 하지만, 조손가정의 이야기 중 아주 특색있고 재밌는 이야기인 건 분명하다. 손주를 키우신 할머니들 중엔 내가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주변을 힘들게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 할머니도 좀 그런 과다. 에구... 그치만 소담이가 잘 크고 있으니 희망적인 이야기.

마지막 [눈물이 찔끔] 이사 전 날의 이야기다. 지훈이와 엄마는 싸놓은 이삿짐을 다시 뒤져 버릴 것들을 찾아낸다. 그중에 다시 되돌린 것. 지훈이는 받아쓰기 공책. 엄마는 작아서 입지도 못할 떡볶이 코트. 두 사람의 그 물건엔 누구와의 추억이 담긴 걸까? 이사 전날 밤, 자려고 누운 지훈이의 눈에서 눈물이 콧등을 가로질러 베개에 떨어진다. 슬프게 끝나버린 이야기.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 지훈이 엄마, 그 떡볶이 코트 버려도 돼요. 그리고 힘내요. 괜찮아요.

작가는 "아이가 슬프다는 건 아이가 있는 그 세상이 힘든 거다.... 이 글은 그런 아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응원이다." 라고 했다. 작가의 응원은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으니 힘이 있는 거겠다. 힘없는 나지만 작은 응원 하나를 보탠다. 환경이 힘든 아이들의 마음이 막다른 곳에 처박혀 핏발선 눈으로 되돌아서게 한다면 그건 그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다. 작가의 응원이 널리 퍼진 세상을 그려본다.

분량은 중학년용쯤 되고 4,5학년에 추천한다. (물론 6학년도 괜찮음) 5학년 교실에서 함께 읽기 적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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