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 그림자 체포 작전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54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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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이어 보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따지지 않고 읽어본다. 유승희 작가님도 그런 경우라서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바로 도서관 구매 목록에 올렸다.

이 책은 다시 동물 주인공으로 돌아갔다. 유승희 님의 동화엔 동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동물 자체의 이야기라기보단 마치 우화처럼 인간세상의 모습을 동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콩팥풀 삼총사'에서는 학교폭력의 문제를, '불편한 이웃'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별이 뜨는 모꼬'에서는 개발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파악하기에는 그간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어려울 것 같다.

갈대밭이 있는 호수가 배경이다. 아마도 작가가 근처에 사시거나 자주 접하는 환경인 듯, 자연의 묘사가 세밀하고 손에 잡힐 듯하다. 주인공은 이번에도 너구리가 나왔다.(너구리를 이뻐하시나봐^^) 또다른 주인공은 물닭이다. 물닭? 잘 모르는 동물이다.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님도 처음 보고 우아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이 외 많은 물새들과 수달, 족제비 등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동물 이야기로 인간사회를 풍자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의 방식이 이번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나는 크게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첫째는, 사회가 안정되게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약속들(법이라고 하겠다)과 그것을 지키는 시민의식이다. 이렇게 무겁고 딱딱한 주제를? 하지만 워낙 능청스러운 대사와 익살맞은 상황묘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지라 무거운 느낌은 없다.

사람이 점점 큰 사회를 이루어가면서 필요에 의해 생겨난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법이라 할 것이다. 법이 없는 사회는 어떨까? 주먹이 앞서는 사회, 말하자면 약육강식의 사회일 것이다. 이 호수의 동물들은 '갈대법'을 만들어 약육강식에서 벗어난 평화로운 마을을 만들려고 애쓴다. 어떻게 보면 웃음 나오는 일이다. 동물 세계는 자연의 법이 존재한다. 인간이 끼어들지만 않으면 자연의 법칙 속에서 평화롭고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걸 못하는 존재 오직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의 동물은 단지 동물이 아님을 기억하자. 그럼 다시 법으로 돌아간다.

갈대법은 털달린 동물들끼리 잡아먹지 않기, 질서 유지를 위해 보안관, 순찰대 등을 둘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의무 분배는 필요한데 그건 순조롭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호숫가에는 위기가 닥쳤다. 법이 없는 원초의 사회(약육강식)를 갈망하는 '그림자'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제목은 <갈대밭 그림자 체포 작전>

읽다보면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도 나오고, 구성원이 의무를 회피할 때 생기는 법의 무력화 등 여러가지 짚어야 할 점도 나온다. 자연스럽게.^^

두번째는 너구리의 속죄와 헌신이다. 난 이쪽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끌렸다. 물닭이 소중히 품던 알을 한개만 남기고 다 먹어버린 너구리. 물닭에게 혼쭐이 나고 물닭이 아파하는 걸 보며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깨닫는다. '이렇게 미안할 수가......' 이후 너구리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물닭을 돕고 지킨다. 하나 남은 알에서 찌삐가 태어나자 아빠라도 된 듯 기뻐하는 너구리. 아니 실제로 그는 찌삐의 아빠나 마찬가지였다. 원수였던 너구리를 향해 차츰 마음을 열어가는 물닭과의 대화가 재미나다. 너구리와 아기 찌삐와의 대화에서 이런 말이 단순하지만 마음에 와 닿았다.

"아저씨는 가족도 아닌데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가족이 별거냐? 같이 있고 서로 좋아하면 그게 가족이지. 그렇지?"
이렇게 가족의 의미를,
"배고프지?"
"응"
"착하다."
"배고픈게 착한 거야?"
"그럼 당연하지. 아이들이 배고프고, 놀고 싶고, 자고 싶으면 그게 다 착한거야."
이렇게 착함의 새로운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어서 좋았다.

갈대밭을 덮친 검은 그림자는 아주 강력했다. 그 악역을 맡은 동물은 누구였을까? 상습적 스포일러인 나. 요걸 비밀에 부치고 스포를 면하도록 하겠다.ㅎㅎ 뒤로 갈수록 그림도 검고 무서웠다. 함께 작업하시는 윤봉선 화백의 그림체가 이제 익숙하다. 마지막 그림의 호수는 맑고 잔잔하다. 우리 사회도 이런 평안을 찾으려면 무엇을 해야되는가? 이번 작품의 주제의식을 높이 산다면 민주시민교육으로도 활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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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2020-04-09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처음에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연상되었는데 좀 더 심오한 시민 의식 문제를 다루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