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해평, 거북바위를 지켜라!
김혜온 지음, 김병하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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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축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반 남자아이들을 사로잡을 것 같았다. 차례를 칠판에 적어주었더니 아이들이 더 몸이 달았다.
1. 패스 미스
2. 메시와 호날두
3.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공
4. 옐로카드를 받다
.......
이건 그냥 축구이야기만은 아니다. 아이들의 과한 기대에 부담을 느낀 나는 칠판에 씨실과 날실 화살표를 그렸다.
"얘들아, 이 책은 이렇게 한 방향은 축구 이야기야. 그런데, 긴 이야기가 이렇게 한 방향이기만 하면 너무 단순해서 재미가 없어. 다른 이야기가 같이 짜여들어 가야되는거야. 이 방향으로는 마을의 문제 이야기가 들어가. 이 두 방향의 실이 얽히면서 멋지게 조직이 되지."
그러자 아이들은 "마을의 문제요? 어떤 문젠데요?" 하면서 더욱 관심을 보였다. 나는 읽어주기 시작했다.

전남의 바닷가 마을이다. 작가의 고향이 그러하다. 마을의 자연과 풍경을 묘사한 문장에서 느낌이 뚝뚝 묻어났다. 그리고 남도의 찐한 사투리도 작가의 고향마을 그대로다. 촌스러운 듯한 전남 사투리. 난 외가가 전남이어서 어릴적에 많이 들어 아주 친근하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문장들을 보며 시골이 고향이신 분들이 부러웠다. 이런 반짝이는 느낌들이 뇌리에 박혀 있잖아. 나는 글로밖에 못보는 이런 살아있는 느낌들이....

소제목들이 모두 축구에 관련된 말들로 되어있다. 난 작가가 언제 이렇게 축구에 조예를 갖게 되신 것인지 신기했다. 운동을 하시는 걸 못보았고 경기를 관전하는 것도 좋아하시는 것 같지 않았는데.... 그런데 연습이나 경기의 묘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렇게나 공부를 하신 것인가?^^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의 터전(경험)과 취재(노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 바닷가 마을이라는 작가의 터전에 축구에 대한 공부까지 딱 씨실날실로 맞아들어갔구나 라고 혼자 확신해버렸다.^^

축구 용어를 딴 소제목들은 마을과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 단편이 아닌 장편은 그렇게 짜맞추어가는 직조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너무 적절했고 어떤 때는 절묘했다.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다.

우리반 아이들이 궁금해하던 마을의 상황은 이런 것이었다. 마을에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어차피 농사로 먹고살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보상금을 받아 살길을 찾자고 생각하며 찬성편에 선다. 반면 이 땅에서 나고 자라고 뼈를 묻을 어른들, 이곳의 깨끗함을 지키려 하는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마을은 어느새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반목하게 되었고 어른들 싸움은 아이들 싸움으로 이어져 축구팀은 와해될 위기에 처한다.

축구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축구팀의 지리멸렬에서 위기가 극대화 되었다가 멋진 축구경기로 희망찬 결말을 맞는다. 어른들의 반목도 같은 곡선을 그리는데, 아이들 축구가 어른들 축구 되는 절정의 장면은 찐한 사투리가 난무하는 가장 웃긴 장면이면서, 이게 가능해? 고개가 한번 갸웃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물론 탐욕과 이권과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끼어든 어른들의 문제가 아이들과의 어울림 한판에 해소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동화에서는 이게 되어야 한다(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화는 르포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일이 비슷하게라도 한번쯤 일어나주면 좋겠다. '동화같은' 일.^^

소제목에 찬사를 보냈는데, 특별히 더 맘에 든 제목들을 살펴보겠다.
[7. 하프라인에서] 서울에서 아빠와 함께 귀농한 주인공 강우. 찬성파인 아빠와 반대파인 절친 민재 사이에서 참담한 심정.
[9. 페널티킥 기회] 심란한 강우는 언젠가 민재가 태워줬던 민재의 나룻배에 몰래 혼자 올라보는데..... 비바람부는 밤에 노를 놓치고 표류하는 끔찍한 두려움 중에 어둠을 뚫고 나타난 민재.
[11. 축구는 상상력] '상상력'에 주목한다. 그래 축구뿐만이 아니다. "맞아. 사람들이 상상력이 없어. 도시 사람들 삶은 시골 사람들 삶이랑 연결돼 있으니까 서로 상상력을 가지고 보살펴야 하지 않겠어?" 그렇다 이런 상상력. 역지사지 상상력.
[12. 드록바 프로젝트] 난 이게 뭔지 몰랐다. FC 바르셀로나 서포터즈 이야기도. 이 책에선 이 장이 해결의 실마리.

지방의 개발 문제를 다룬 책이 많을 것 같아도 찾아보니 찾기 힘들었다. 이 책은 그런 샘들께 도움이 될 것이다. 축구 이야기가 엮여져 있어 책을 외면하는 남학생들을 끌어들이기에도 좋다. 물론 개발과 발전 문제는 단순하지는 않다. 하지만 작가가 마음 속의 지향 없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옳지 않다. 게다가 난 작가의 지향에 공감의 박수를 보낸다. 대책없는 반대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런 지향점에서 시작하여 가능한 대안과 실천수칙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량보다 책이 더 두꺼운 느낌이고 무겁기도 해서(종이가 두꺼운 듯), 이렇게 만드신 이유가 있나 궁금했다. 그림이 꽤 많이 들어가 있었는데, 글의 느낌과 잘 맞아서 좋았다. 같은 고향(고흥) 출신의 글작가, 그림작가의 협업이라니. 그래서 특히 풍경그림이 아주 좋았다. 소제목들의 배경그림도 무척 좋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조연인 '태양아저씨'에 주목하고 싶다. 이 마을 태생이 아닌 아웃사이더 같지만 누구보다 해평을 사랑하는 아저씨. 그가 보여주는 친환경 발명품들은 장난감 수준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그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까지 표현해준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발전에 가속을 넣지 않아도, 지금 이 속도로만 가도 지구환경은 지키기 어렵게 되어 있다. 우리가 가장 마음을 쓰고 가진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태양아저씨는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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