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수
이현 지음, 김소희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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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작가님의 신작이라니 어찌 기대하지 않을까! 꽤 두툼해서 한나절 푹 빠져 읽을 수 있겠다. 게다가 '전설의 고수'라니 뭔가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연년생 남매가 주인공이다. 정확히 말하면 동갑이다. 누나는 1월생, 동생은 12월생. 이렇게 태어날 수도 있구나.^^ 같은 학년에 다니니 거의 쌍둥이 남매 느낌이겠다. 평범한 이 남매에겐 드러낼 수 없는 비범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수차례의 전생을 통해 이어져 온.

이런 이야기를 어설프게 썼다간 비웃거나 읽다 내던지기 십상일텐데 남매의 능력과 발현,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궁금해서 책장이 쉴새없이 넘어가는걸 보면 대단한 내공이 틀림없다. 현실의(이번 생의) 남매는 티격태격하는 그야말로 현실남매지만, 수많은 전생에서 아픈 운명을 함께 겪어 온 사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전혀 납득되지 않지만 소설적 재미가 커서 그냥 감안하며 읽게 된다.

읽어나가며 놀란 것은 제목에도 '전설'이 들어가듯이 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왔거나 일부를 차용했나?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옛이야기에 관심이 있긴 한데 광범위하게 알진 못한다. 그래서 이 초능력 오누이와 오누이탑 이야기가 기존 설화에 나오는 내용인지 궁금했다. 할 수 없이 '오누이 탑'으로 검색을.... 내가 찾아본 내용 중에선 이 책에 나온 수몰된 오누이탑은 없던데, 그냥 내가 못찾은 것일수도.... 어쨌든 '오누이탑'은 곳곳에 있고 다양한 설화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설화에서 '오누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높으며 그중에는 이렇게 괴력을 가진 오누이 이야기도 있다.

괴력 오누이라는 모티프, 전생이라는 설정 등을 통해 현대 동화이면서도 설화의 느낌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초능력이 먼저 발현되는 사람은 누나인 형은이다. 동생 형수가 양아치 녀석들한테 약점을 잡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영웅처럼 나타나 그들을 물리쳐 준다. 이후로 형수에게 나타날 초능력을 독자나 형수 모두 기대하게 되지만, 전생의 기억은 조금씩 재생되는 반면 초능력의 발현은 좀처럼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동네에는 굵직한 형사 사건이 두 가지나 터졌고, 남매+친구 충호 트리오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스토리의 중심이고 가장 가슴졸이며 읽게되는 부분이다.

형수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 초능력을 가진 누나에게 자존심이 상하고 비교의식을 느끼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다. 평소에 틱틱거리는 남매지만 위기 때에는 전생의 그 애틋한 남매애가 나타난다. (나타났다간 언제 그랬냐는 듯 쑥 들어가 버리는 것이 특징ㅎ)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서야 형수에게 주어진 초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능력은 과연 지금에 와서 발현된 것인가?^^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도 옛이야기를 언급해 놓았다. "옛이야기 속 오누이는 대개 슬프게 끝납니다. 이들은 엄청난 초능력을 가졌지만 악당을 물리치지도, 영웅이 되지도 못합니다. 어른들로 인해 오누이는 무리한 내기를 하던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이번 생의 경우는 어떨까요? 지금의 오누이는, 형은이와 형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292쪽)
이 책의 결말은 더없이 바람직하고 흐뭇하다. 근데 앞날은? 그 생각까지 하면 복잡해진다. 여기까지가 딱 좋은 이야기.^^

좋은 책이라고 학교도서실에 사두어도 한참이 지나도록 책장이 넘겨진 흔적도 없는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벌써 여러 명의 손을 거친 듯 헌 책이 되어가고 있었다. 읽다가 책장 사이에서 다량의 머리카락 발견... 으윽 대체 어떤 놈이냐...ㅠ 어쨌든 확실한 건, 재미있는 책은 알아서들 찾아 읽는구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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