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층 친구들 이야기와 놀 궁리 1
남찬숙 지음, 정지혜 그림 / 놀궁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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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찬숙 작가님의 책들은 내가 어른이 되어 다시 동화를 읽던 초기에 국내창작동화에 애정을 갖는데 큰 역할을 했다. 괴상한 녀석, 니가 어때서 그카노, 받은 편지함 등이다. 이분의 책은 은근한 재미가 있었고 읽고 나면 인간에 대한 신뢰와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당시로는 파격적인(?) 소재라고 느껴진 작품도 있었는데 미혼모의 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안녕히 계세요>라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옛날 그 책이 떠올랐다. 동화에 한정된 소재는 없구나. 이 책에는 두 할머니의 삶이 나온다. 아이들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차별과 희생을 안고 살아오신 할머니들의 삶이다. 대단한 역사적 아픔을 끌어안은 것은 아니지만 그시대가 아니라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그런 삶. 82년생 김지영보다 더 고달프고 신산한 42년생(?정확한 연도는 모름) 김혜순, 김분한 할머니의 삶.

준희네 집이 아래층 아주머니의 층간소음 등쌀에 못이겨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싸면서 방도 하나 더 많고 넓었다. 그런데 이사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양가에 우환이 터졌다. 이러저러하여 양가 할머니들이 집에 오셔서 여분의 방 하나에 함께 기거하시게 된다. 사돈간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2층 단독주택에서 1층에 있는 안방을 두분이 쓰시게 되었으므로 책의 제목은 <일 층 친구들>

상식적인 분들이라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처음에는 잘 지내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간들 있는 곳에 갈등 있는 법. 서로 다른 두 할머니는 그 차이만큼 갈등을 겪게 된다.
외할머니 : 도시 태생. 가까이 살면서 바쁜 엄마를 대신해 준희 남매를 키워줌. 곱게 화장하고 우아한 옷을 즐겨 입으며 취미로 노인회관에서 이것저것 배우며 합창단 활동도 하고 있음.
친할머니 : 시골에서 농사로 잔뼈가 굵은 할머니. 고향에선 할 일이 천지지만 도시에 오니 할 일이 없음. 딱히 취미활동도 없음. 준희네 집에 와서도 결국 마당에 농사를 지음.

이렇게 배경과 성향이 다른 두 할머니는 본의아니게 서로의 상처를 건드린다. 친할머니는 '못배우고 무식하다'는 것이고 외할머니는 '이혼했다'는 것이다. 여기 담긴 할머니들의 사연을 듣자면 진짜 '42년생 김할머니'가 나올 만하다. 여자라서 참고 살았던, 혹은 운명이려니 하고 살았던 삶에서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 친할머니는 그렇게 희생하고 살았으면서도 이혼 문제에서는 "무조건 여자가 참아야 한다, 자식 생각해서 참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여 여적여의 느낌으로 외할머니 가슴에 못을 박는다. 그러나 드라마식의 반전이 뙇!하고 나타났으니, 준희 고모(즉 친할머니의 딸)가 같은 문제를 안고 등장한 것이다.

결말까지의 과정에서 작가 특유의 따뜻한 해결을 보게 되고, 선악 구도가 없는 주인공들의 인간미에 흐뭇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새삼 깨닫게 된다. 할머니들의 삶은 아직 완전히 극복된 게 아니구나. 세상 구석구석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구나. 이런 소재들을 같은 초딩이라도 내 어린시절처럼 엄마 우산 아래 곱게 자라는 아이들은 이해 못할 것이요, 어린 나이에도 산전수전 다 겪은, 생활의 전선에 선 아이들은 이해할 것이다.

할머니들 이야기만으론 동화로서 조금 아쉽다 할 텐데, 준희와 준희 친구들의 이야기도 교차되어 들어가 있다. 할머니들의 갈등과 해결을 거울 삼아 자신들의 문제도 해결해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도 할머니들처럼 따로 또 같이 하자는 거구나?"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친한 친구 사이라고 해서 뭐든 같이 하란 법은 없다는 거야." (49쪽)


같은 맥락에서,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 주변의 삶이 다라고 생각하면 세상을 보는데 많은 오해가 생긴다. 반대로 자신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슬프고 억울하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싸울 때는 다신 안볼 것처럼 가시 돋힌 말을 주고받아도 상대방의 어려움 앞에 말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자식의 앞길을 강제했던 걸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는 할머니들의 성정은 딱 보통사람들이다. 나도 보통사람 이상으로 살 순 없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보통 이하로 전락하기 직전의 포인트들은 다 내게 배울 점들이었다. 그렇게 보통만 하며 살길 바란다. 그것도 쉬운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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