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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독수리 ㅣ 난 책읽기가 좋아
박주혜 지음, 유설화 그림 / 비룡소 / 2019년 11월
평점 :
초반부에는 좀 유치하게 느껴졌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대머리 독수리와 수다쟁이 앵무새의 캐릭터도 그닥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럭저럭 읽을 만한 정도여서 읽고 있었는데.... 중반부에 쏘리라이언(마음이 약해 뭐든지 미안해하는 사자)이 나온다. 삼총사가 결성되는 셈. 여기서부터 재밌어지기 시작하더니 막판엔 좀 감동이었다.
나는 힙합을 잘 모른다. 랩도 그닥 즐기진 않는다. 그러나 힙합정신(?)이란 게 있다면 그게 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게 바로 이 책의 주제라 하겠다.
첫장부터 대머리 독수리의 시련이 나온다. 초원의 미녀 공작에게 다가갔다가 보기좋게 차이는 장면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
"너는 너무 못생겼어. 게다가 그 대머리는 최악이야."
대머리 독수리는 가는 곳마다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 (심지어 선생님까지...ㅠ)
"대머리 독수리는 더 이상 이런 곳에 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힘차게 날았지. 못생겨도, 머리카락이 없어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찾아서." (12쪽)
그리고 다음 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풋, 하고 웃게 됐다.
"그런 세상은 없었어." (13쪽)
절망한 대머리 독수리는 사바나의 귀퉁이 쓰레기장에 자리잡았다. 혼자가 되니 편했다. 쓰레기장에서 이것저것을 주워 꾸미고 노래를 불렀다. 대머리 독수리의 특기는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거든.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껏 불렀는데 그곳엔 생각지도 못한 첫 관객이자 팬인 수다쟁이 짹이 있었다. 이 앵무새 또한 말이 많아 따돌림 당한 외톨이. (좀 찔린다. 나도 말많고 시끄러운 사람은 애고 어른이고 간에 싫은데...ㅠ)
이어서 둘은 세번째 주인공을 만났다. 사자 무리에서 쫓겨난 이 사자는 세상의 모든 것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흙과 나무, 벌레들에게 사과를 하는 사자. 이런 사자가 무리에서 떨궈진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랩 가사가 많이 나온다. 이런 걸 쓰는 건 작가에겐 껌인가? 그렇지는 않겠지?^^;;; 초반부엔 유치함으로 느껴지던 랩 가사가 후반부엔 재미와 흐뭇함이 되었다.
"나는 나를 위해 살아. 너는 남을 위해 살지.
나는 내가 제일 최고. 너는 남이 항상 최고.
어떻게 생겨야 잘생긴 건데? 그건 도대체 누가 정한 건데?
내가 멋지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해.
그것이 바로 내 스타일." (50쪽)
"모두 함께 소리쳐. 난 너와 달라. 넌 나와 달라.
우리는 기계에서 만들어지는 인형이 아니지.
모두 다 같은 눈, 다 같은 코, 다 같은 입
그런 건 정말 별로야. 난 너와는 다르니까." (63쪽)
결말을 말하자면 대머리 독수리(대독)의 노래는 유명해졌고 이들은 환호 속에 공연을 했다. 사바나엔 힙합대회가 열리고 이들은 초대가수가 된다. 왕따들의 도전. 인간(?)승리의 드라마다.^^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다. 분량도 80쪽 밖에 안되어 딱 저학년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학년 교실에서 읽어도 좋겠다. 정체성의 문제, 자존감의 문제는 고학년 교실에서 많이 앓고 있는 문제니까. 눈이 작아도, 다리가 짧아도, 유행하는 패딩을 유니폼처럼 입지 않아도, 쥐잡아먹은 듯 입술을 칠하지 않아도, 화장을 안한 쌩얼이어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고개 들고 당당히 자신의 앞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을 내가 읽어주지 못하겠다. 랩 가사를 읽는데 넘나 쑥스러워서....^^;;; 반에 끼가 있는 녀석이 있어서 이 부분을 넘겨줄 수 있다면 흥겨운 책읽기가 될 수 있을텐데. 조만간 그런 기회가 오길 바라며 잘 기억해두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