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원작, 이희재 만화 / 양철북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녘 출판사에서 나온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초판을 읽었던 때가 고1 때였다. 무기력에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라 상태가 총체적으로 안좋았는데 그 책을 읽고 감정을 주체 못해 한동안 더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때 내가 느꼈던 게 뭐였을까 꼭 집어 알 수가 없다. 매맞는 외로운 악동 제제에 공감했던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사랑하는 뽀르뚜가라는 어른을 이해했던 것도 아닐 것이다. 삶에 찌든 나머지 자식의 아픔을 알긴 커녕 더 고통에 빠뜨리는 어른을 이해했을 리도 없다. 그냥 책 전반에 흐르는 슬픔이 나를 쥐고 흔들었을 뿐이다.
"소용없어. 내가 처음으로 만든 풍선이었어. 첫번째 풍선만이 가장 아름다워. 첫 풍선이 소용없게 되면, 더이상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아빠는 이미 없어졌어요. 제 마음 속에서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그 시절, 우리들의 그 시절엔 저는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제단 앞에 엎드린 채 환상의 세계에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이런 문장들을 곱씹으며 눈물짓는 게 다였다. 가슴은 아픈데 뭔가 잡히지는 않는...

어른이 되어(2003년쯤?) 청년사에서 이 책이 이희재 님의 만화로 나왔다. 그당시 학급문고에 사놓았다가 닳고닳아 몇 년 후 처분했던 기억이... 어른이 되어 만화로 본 라임오렌지 나무엔 첫 느낌이 거의 그대로 살아있었다. 제제를 비롯하여 캐릭터들도 어색하지 않았다. 첫 풍선을 찢긴 후 처절하게 얻어맞고 글로리아 누나와 울며 속삭이던 그 느낌도, 뽀르뚜가 아저씨와 물놀이를 하던 강가에 누워 "왜 우리 아빠한테 절 달라고 하지 않으세요?" 물을 때의 그 울컥함, 망가라치바가 앗아가버린 진정한 사랑에 삶의 끈을 놓듯이 앓아누워버린 제제의 안타까운 모습도 다 생생히 살아있었다.

10년도 넘게 흘러 양철북 출판사에서 이 만화가 다시 출간되니 반갑다. 그때 샀던 책을 갖고 있지 않아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나이를 더 먹었지. 어쩌면 제제 아빠나 뽀르뚜가 아저씨 보다도 더. 그래도 볼 때마다 가슴을 선뜻선뜻 베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다.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작은 아이 하나가 이렇게 슬프고 먹먹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 나보다 큰 감정의 경험들을 했다. 구박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가정폭력, 필요없는 아이라는 소외감,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 아저씨와의 만남, 그 귀한 존재를 금방 데려간 버린 세상....
"아기예수, 넌 나빠."
아이는 어떻게 그 아픔을 삭이며 어른이 되었을까.

어린 제제가 가정 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제대로 사랑받아보지 못했다는 걸, 고딩 때 처음 읽었을 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왜 저를 사가지 않으세요?" 라는 말이 제제가 정말 특이한 아이라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난 그때 어렸으면서도 부모를 이해하려 했던 건가.... 지금 보니 제제의 말은 너무 당연한 거다. 핏줄이란 울타리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아빠는 용서를 빌었고 제제는 용서했지만, 사랑할 순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제의 말대로 '마음 속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실제로 자주 일어난다. 어른은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처음 읽었던 그때부터 제제는, 나라는 독자에게 너무 작고 어리고 애틋하고 사랑스런 존재였지만 사사건건 사고치는 악동인 것도 사실이다. 동네 사람들을 골탕먹이고, 누나를 '갈보'라고 욕하고, 아빠 앞에서 "난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걸 요즘 버전으로 바꿔 보자.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아이의 지독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한줄기 빛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독한 아픔에서 천천히 딛고 일어나 어른이 된 제제. 마지막으로, 제목인 라임오렌지 나무(밍기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뽀르뚜가 아저씨처럼 절절히 사랑하지도 현실적인 어떤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밍기뉴는 제제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그 나무는 제제가 고른 나무였고, 제제만의 나무였고, 그를 통해 상상했고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사경을 헤매던 제제를 일으켜 세운 건 그래서 밍기뉴였다. 아이들은 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마다 자신들의 밍기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어린 제제가 아리오발도 씨를 따라다니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악보를 팔던 장면을 영화로 보고 싶다. 그 고운 목소리의 제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노래를 부를까? 아이는 금방 자란다. 하지만 어린시절은 그 안의 어떤 방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