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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세탁소 ㅣ 독깨비 (책콩 어린이) 57
김진 지음, 이창우 그림 / 책과콩나무 / 2019년 1월
평점 :
2학년 담임이라 수준에 맞는 얇은 책을 집어들어 무심코 읽었는데 오호~ 이건 얇다뿐이지 저학년용이 아니었다. 100쪽 남짓에 여섯편이 담겼으니 각 편도 아주 짧은데, 짧으면서 심오하다 해야 하나. 물론 저학년도 재미있게 읽을수는 있겠지만 이야기를 나누려면 중학년 이상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짧은 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읽어주고 활동하기에 시간제약이 없어서 좋으니.
무엇보다도 내용이 좋다. 재미도 물론 있다. 표제작인 <그림자 세탁소>는 발상이 좋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현실인식에 같이 한숨을 쉬게 됐다. '나'의 그림자가 어느날부터 말썽이다. 제대로 붙어있지 않고 덜렁거리고, 그림자 주제에 주인을 따라 하지 않고, 심지어 달아나기까지.... 그림자 세탁소집 아들인 태성이는 이렇게 말한다. "네 그림자, 그동안 지친 거야."
'그림자'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부터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그림자를 자신의 내면,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의 소망이라 본다면, 부모의 기대에 맞추어 학원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나'의 그림자가 어느날 창가에 붙어 운동장을 바라본다든가, 침대에 뻗어버린다든가 하는 사건들이 이해가 된다. 교육=입시로 전락해버린 세상에서, 상위권대학이라는 좁은 문을 뚫는 방법이 문제풀이 밖에 없게 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학원의 수레바퀴에 밀어넣는 게 경쟁력이라고 믿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의 '그림자'는 이토록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두번째 작품 <오! 해피 봉순>에선 두 이름 한 강아지가 나온다. 오현준이가 주워서 아빠 몰래 키우던 강아지 해피를 학교에 데려왔는데, 그게 봉선혜가 잃어버린 강아지 봉순이라는 것이다. 이리저리 주인이 바뀌는 강아지보다 더 기구한 건 현준이다. 엄마가 나가버린 집에서 아빠랑 살다가 이제 엄마를 따라 이사가야 하는 현준이. 마지막으로 해피를 보러간 현준이와 배웅하는 봉선혜가 신파를 찍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쿨하게 잘 살어! 어른들은 별로 도움이 안될 때가 많어! 그래도 너무 기죽지 말고!
<초딩 결혼식>은 유머 속에 풍자가 빛난다. 이모 결혼준비를 지켜보는 유정이는 소꿉친구 은호와의 결혼을 꿈꾼다. 나는 이런 쪽으로 너무 앞서나가는 아이들이 별론데, 유정이는 귀엽고 이뻤다. 은호도 그대로만 자라면 아주 멋진 신랑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한남적인 특성을 가진 진호오빠가 있고, 아직도 구습에 젖어있는 이 사회의 결혼문화가 있다. 그 전복이 꿈꾸어지는 왠지 희망찬 이야기.^^
<슈퍼 울트라 우유맨>을 읽고 몸서리쳤다. 우유라면 나도 진절머리가 난다. "먹기 싫으면 우유 끊으면 된다. 억지로 먹으라는 게 아니다." 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끊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아이들을 어째야 하나? 우유급식 중지 청원 올라온 것 보고 서명했다. (교사가 올린 청원 아니었음) 이 책에선 뚱뚱하고 무시당하는 지웅이가 우유 싫어하는 친구 우유를 먹어준다. 물론 원해서가 아니다. 그러다 어느날 폭발한 우유. 아 몸서리쳐진다. 어쨌든 지웅이가 이제 우유를 안먹는다니 다행이다. 아, 왜 나까지 우유에 원수를 졌지.... 먹고 싶은 사람만 적당히 먹을 일이다. 그리고, 순한 사람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고맙습니다 편지>는 가장 따뜻한 이야기다. 친구를 놀리다 선생님한테 걸린 채주는 편지쓰기 숙제를 받는데....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법에 난 무릎을 쳤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해봐." 사실 몰랐던 방법은 아니고 나도 '오늘의 친구 관찰하기, 칭찬이불 덮어주기' 등 활동을 해봤지만 지속적이지 못했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뜻. 그래도 이 책의 채주는 잘 실천했고, 채주에게도 대상에게도 행복한 변화가 찾아온다. 나도 다시 해볼 때는 이 이야기를 읽어주고 해야겠다.^^
<누나 껌딱지>는 오카 슈조의 <우리 누나>가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누나는 승건이가 챙겨줘야 하는 존재다. 껌을 너무 좋아하고 아무데나 껌을 뱉어 원성을 산다. 현실의 어려움에 비해 갈등해결이 쉽고 밝다고 느껴지지만 현실이 그렇기를 빌면서.... 이것도 따뜻한 작품이었다.
작가의 첫 책이라고 하는데 각 작품마다 녹아있는 다양한 주제들에 작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이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은 충분히 이뤄질 것 같다. 기회가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다. 이야깃거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