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요정 그림책이 참 좋아 62
안녕달 지음 / 책읽는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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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의 환경은 나와 비슷하되 추구하는 건 완전 반대다. 음 그렇다. 난 치우지 못한 물건들에 파묻혀 살면서 그것들을 외면한다. 언젠간 저것들을 싸그리 갖다 버리고 콘도같은 집에서 살아보겠다고... 추억 따위 구질구질한 건 개나 주라고 말이다. 그 지향을 바꿀 생각은 없다. 언젠가 동료분이 자긴 옷 버리는 쾌감을 좋아한다며, 가끔 아~ 그거 지금 있으면 좋을텐데 아쉬울 때도 있지만 옷장이 헐렁한 그 쾌감이 훨씬 크다고 하신 말씀에 매우 공감한 후, 당장 옷장을 뒤져 한보따리 버린 적도 있다. 역시 버리는 쾌감은 좋았다. 아직 표도 나지 않지만. 난 아직 목마르다. 더 버릴거야. 집안 구석구석 박혀있는, 없어도 사는데 지장없는 온갖 것들을 버리고 말거야!

그렇게 버려진 것들이 쑤셔박힌 골목의 쓰레기통에서 요정은 짜-잔! 하고 세상 발랄한 모습으로 튀어올랐다. 엄청나게 큰 알이 박힌 장난감반지를 머리에 쓰고 외친다. "소원을 들어 드려요!"

참으로 겁도 없다. 남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자 그 누구란 말인가? 사람들은 그 희망의 메시지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꺄악 소리나 질러댄다. 한 남자는 겨우 이렇게 말했다. "하아.... 하늘에서 돈이나 떨어졌으면 좋겠다." 요정은 십원짜리들을 긁어모아 뿌려줬으나 남자에게 기쁨을 주진 못했다. 점점 풀죽어가다 마침내 훌쩍이는 요정의 표정이 애처롭다.

하지만 요정은 진짜로 어떤 이들에겐 '소원을 들어' 주었다. 아끼던 애착인형을 엄마가 버렸다며 우는 아이, "우리집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게 있을까?" 하시는 할아버지. 쓰레기통에서 사는 요정도 이들에겐 웃음과 힘이 되었다. 장난감 반지를 아낌없이 벗어준 요정. 그걸 소중히 들고 가 할머니의 손가락에 끼워준 할아버지. 그 투박하고 거친 두 노인의 손.
"결혼하는 거야?"
"그래. 결혼하는 거야."
"아.... 곱네."
할머니는 치매이신 것 같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것 같기도 하다. 냉기가 썰렁해 보이는 단칸방에 쓰레기통 요정이 보낸 따스한 빛이 감돈다.

쓰레기통 요정과 이웃들을 어느 구석엔가 품은 이 도시는 그렇게 무심히 저물고 또 밝아온다. 오늘도 요정은 새롭게 쏟아지는 버려진 것들 속에서 "소원을 들어 드려요!"를 해맑게 외치고 있다.

'소원'이란 게 참 그렇다. 그것으로 그 사람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최고 가치가 가족인지, 돈인지, 성공인지.... 독후활동을 하다 이런 내용이 나와서 보면 아이들의 답변도 가지각색이다. 물건이 간절한 아이, 자유가 간절한 아이, 관계가 간절한 아이, 그저 욕심이 많은 아이....

어른도 비슷하다. 그런데 죽음에 가까울수록, 유한성을 체감할수록 소원은 작고 소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장난감 반지처럼.... 어린아이는 이와는 다르지만 순수함에서 뭔가 통하는 게 있을 듯하다.

난 아직 죽을 때가 멀었는지 가끔 조금씩은 속이 시끄럽다. 아직도 소중한 것을 쥐지 못한 느낌이고 왜 남들만큼의 능력이 없나, 난 왜 더 가열차게 살지 못하나 자책하기도 한다. 요정이 내게 묻는다면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겠다. 더구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말이다. "다 버리고 내집에서 손님처럼 사는게 소원이야." 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 책 속엔 다양한 아이디어가 가득이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책껍데기가 반투명 트레이싱페이퍼로 되어있는데 표지엔 온갖 쓰레기들이 그려져있다. 말하자면 책 한 권이 쓰레기봉투인 셈이다. 작가는 소중한 것의 소박함을 이렇게나 극단적인 표현으로 그려냈다.ㅎㅎ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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