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의 숲 큰숲동화 14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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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나오면 꼭 챙겨보는 유승희 작가님의 책이라서 읽었는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든다. 세상에 참 안타까운 일이 많고 이 책의 세아 모녀 관계도 그러하지만 이토록 무섭고 기괴하게 그려내다니. 잘못된 부모노릇의 비극을 극대화하여 나타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모른다. 내가 모르는 곳에 이 책보다 더 큰 비극이 있는지도.ㅠ

유승희 님의 동화에선 아이가 화자나 주인공이 아닌 경우를 많이 본다. 이 책에서도 화자는 교사지망생(임용고시 준비생) 민희 씨. 초등임용생이면 후배인지라.... 동질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잇따른 임용실패로 엄마와의 관계가 껄끄러운 민희 씨는 구인광고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담양 무릉리라는 마을에서 한달 입주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수가 후하다는 단서와 함께.

홀린 듯 그곳을 찾아간 민희 씨는 심상치 않은 일들을 마주하지만 "일단 가보자" 식의 마음으로 숲 속의 저택에 도착하고, 세아 모녀를 만나고 세아 엄마와 '계약'을 한다. '세아가 검정고시에 붙을 때까지 지도해준다'는 계약. 세아는 아주 똑똑했고, 검정고시란 그닥 어려운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은 아주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이 일은 저택에 걸린 '에셔의 상대성' 그림처럼 끝도 시작도 출구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가 출신인 작가가 배경으로 넣은 이 그림은 의미심장할 것이라 짐작해본다. 우리가 많이 보던 그 계단 그림 말이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꼭대기가 아니어서 끝없이 반복되던 그 계단.....

그렇다. 민희 씨는 계약을 함과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세계'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멈춰버린 세아와 세아 엄마의 세계에. 여전히 딴 곳을 보고 딴 것을 갈망하는 그들의 세계에. 알면서도 모른척 돌아가는 그들의 세계에.

세아 엄마는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세아의 학업을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하며, 올 수 없는 세아 아빠를 위해 매일 밤 파티를 준비한다. 세아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하는 '시늉'만을 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따뜻한 엄마와 때로는 토닥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기를.... 기다린다. '그 시점'에 멈춘 이 상황에도 그들은 그러하다.

'그 시점'이란.... 차마 말하고 싶지 않다. 책 속에서도 명확히 표현해놓지는 않았다. 물론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ㅠㅠ 이 부분은 작년 화제 드라마였던 '스카이 캐슬' 보다 괴기스러웠다. 동화라는 장르로서 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민희 씨의 계약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고 에셔의 계단처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민희 씨는 몸부림친다.

이 세계의 균열은 연락 안되는 딸을 찾아 마을까지 찾아온 민희 씨 엄마로부터 시작된다. 늘 투닥거리던 모녀. 구박에 가까운 잔소리를 퍼붓던 엄마.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죽은 후, 먹고 살기도 힘들어 어린 민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맡겼던 엄마. 지금도 무뚝뚝한 엄마. 하지만 딸의 실종 앞에서 물불 안 가리는 엄마의 모습은 세아의 마음을 흔든다. 세아의 결단은 이 '세계'에 균열을 내고 마침내 세계는 무너져 덮여버린다. 그 와중에 오간 말들.
"엄마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 네가 다 자라면 엄마에게 고마워할걸.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다 자라서가 아니라 지금 행복해지고 싶다고!"
"널 위해 뭐든 다 해 줬는데....?"
"엄마는 내가 엄마를 사랑했는지도 모를 거야.... 안녕..."

'세계'를 건너와 엄마에게 달려가는 민희 씨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대비되는 세아 모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섬뜩하게 할 것이다. 극단적인 모습이긴 했지만 우리 안에 그 모습이 없다고 단언할 사람 있을까?
자식 키우는 것의 엄중함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자식을 수단으로 삼는, 심지어 학대하는 부모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까? 잘못된 부모됨의 비극은 어디까지일까?

어른이 봐야할 동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더 많이 보게 될 텐데, 아무쪼록 아이들이 민희 씨 엄마를 자신의 엄마로 느끼길, 그래서 불현듯 깨달은 듯이 엄마에게 달려가 한번 품에 안겨 보길 바란다. 자신이 세아라고 느끼는 아이가 있다면 부디 용기를 내 보기를.... 그 '세계'에 갇혀 버리기 전에. 부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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