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신나는 책읽기 53
조지영 지음, 이희은 그림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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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입에 짝짝 붙는 찰진 동화를 만났다. 책은 어제도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데 이상하게 한동안 슬럼프처럼 스파크가 안 일어날 때가 있다. 오늘 이 책을 읽음으로 모처럼 작고 예쁜 불꽃 하나가 튀었다. 좋은 징조다.ㅎㅎ

세 편의 연작 단편이 담긴 동화집이다. 주인공들은 금빛초등학교 1학년 차돌이네반 아이들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학교에 '똥 사건'이 일어났다. 1학년 화장실 바닥에 탐스런 똥무더기. 법석 떨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아이들이 이 호재를 놓칠소냐. 소리지르고 몰려다니고 아이구 생각만 해도 골아프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점점 미궁에 빠져가는 사건 때문에 교감 선생님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데... 결국 똥무더기의 주인공은 밝혀질 것인가?
똥이야기 중에 가장 강력한 송언 선생님의 <마법사 똥맨>과 견주어도 될 만큼 강력한 똥펀치를 날린다. 예측이 어느정도 가능하긴 하지만 반전도 유쾌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선하네.ㅎㅎ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두번째 이야기는 참 잘 먹는 송이가 주인공이다. 송이네 엄마 아빠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보고 있자니 공감도 가면서 좀 찔린다.
"엄마는 많이 바라지도 않아. 우리 송이가 그냥 다른 친구들 하는 만큼만 하면 좋겠어. 너무 잘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못하지는 말고. 그래야 친구들이 싫어하지 않지."
안전빵, 무난한 인생을 추구하는 나와 '튀지 말고 중간만 가라'하는 이 부모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실 송이 정도면 무난한 건데, 유난히 좋은 식성을 걱정한 부모는 "급식은 꼭 한번만 먹어. 대신 집에 와서 간식 마음껏 먹기."라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먹은대로 되기 힘든 법. 송이는 어느새 친구들 앞에서 '잘 먹는 아이'가 되어있고 공개수업날 엄마 아빠는 신나고 행복한 송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평범하기는 커녕 튀는 딸의 모습을.
그렇다고 평범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강요된 평범, 조장된 튐이 문제인 것이지. 본인의 기질대로 행복하게 살도록 격려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산 넘고 물 건너]
보통 단편집의 제목은 단편들 중에서 대표작 하나를 골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에는 표제작이 없다. 하지만 굳이 뽑자면 이 작품이 표제작이라 할 만하다. '노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이라는 표제와 가장 연관성이 많은 작품이다. 그동안 조연으로 나오던 차돌이가 전면에 등장한다. (난 개인적으로 차돌이란 이름의 느낌이 참 좋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교사로서 뜨끔한다. 작가도 초등학교 교사시라고 한다. 같이 느끼는 미안함일 것이다. 현실적인 안전의 문제와 아이들의 욕구 사이의 괴리.

차돌이는 엄마 출근시간 때문에 일찍 등교하게 됐다. 그만큼 놀 줄 알고 신이 났는데 웬걸, '학교보안관' 아저씨에게 잡혀 도서실로 안내되었다. (모든 학교가 비슷하다. 정식 등교시간 이전에는 도서실에서 '아침돌봄'이 진행된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생겨난 것) 차돌이는 왜 학교에서 맘껏 뛰놀 수 없는지 그것이 의아하다. 쉬는 시간에 찔끔 노는 것 정도로는 절대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어느날 차돌이는 지각이 잦은 유리의 비밀을 알아냈다. 학교 옆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 것이다. 오잉,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니! 그러나 그것도 학교와 집에 알려져 좌절... 그러던 어느날 등교길에 만난 삼총사는 즉흥적으로 산을 향하고, 그 아이들을 따라간 보안관, 교감, 담임선생님은....

"금빛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이들 노는 소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용할 날이 없었대."로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동화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의 문제는 물론 여전히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시고 부모님들이 "맞아! 학교에서 아이들을 놀게 해줘야지!"라고 하시고 방과 후 시간에 학원 뺑뺑이를 돌리신다면 앞뒤가 안맞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어릴 때 어떻게 놀았는지를 기억해본다. 학교 끝나면 누구네 집에선가 모여서 숙제를 후다닥 마치고는 책가방을 팽개쳐둔 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놀았었지. 동네 뒷산으로 언니, 오빠들이 동생들 손 붙잡아 주며 함께 가서 놀다 왔었지. '놀이'의 책임은 어른들 모두가, 가장 크게는 부모가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하나씩만 줄여도 지금처럼 놀이터에 아이들 씨가 마르지는 않을 텐데.

그러나 나는 이 동화가 말해주는 아이들의 마음만은 늘 기억하려고 한다.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 놀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 학교라는 짜여진 시간, 공간, 커리큘럼 안에서도 최대한 아이들과 콧바람을 쐬고 뛰어놀기를 추구하려 한다. 운신의 폭이 좁은 나는 아마 파격적이진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더 놀려면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뭐가 그리 할게 많은지 책읽어주기가 뜸했던 요즘, 이 책으로 다시 문을 열어야겠다.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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