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집>



방학을 마무리하며 독서모임은 영화관람과 함께 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4학년 국어교과서에 들어왔으니 이번 교육과정동안 4학년을 거치는 아이들 중에는 안보는 아이들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문제삼고 싶지 않을만큼 괜찮은 영화긴 했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그건 내문제이고....

열화같은 성원으로 두번째 탄생한 이번 작품도 역시 화제작이 될 만하다. 잘 만든 작품이고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뛰어나다. 힘든 두 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가정의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아이들의 몸부림과 그 연대가 예쁘고도 안쓰럽다. 어른들을 향해서도 많은 말을 한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문제에 빠져 있을 때 아이들은 이런 마음이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런 행동과 이런 궁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안에도 당신들 못지 않은 우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보는 내내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내 왼쪽의 관객은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명랑한 웃음을 보내셨고, 오른쪽에 앉으신 분은 공감의 한숨과 눈물을 흘리시는데 나는 화가 났다. 화의 포인트는 하나의 표정과 태도였다. 죄지은 것도 없이 쩔쩔매고 눈치보는 모습. 맞다. 선이도 저런 표정이었지.

나의 문제다. 나는 왜 <우리들>의 선이나 <우리집>의 하나가 비슷하게 보이면서 짜증이 치솟는 것일까? 아이들의 눈치보는 태도, 뭔가 돕겠다는 넘치는 오지랖, 능력은 안되면서 자기가 해야된다는 동동거림, 이런게 지켜보기 딱했다. 나는 가족 중심의 생활을 하는 편이고 가족의 가치를 높게 두는 편인데도 '얘야 깨진 항아리는 본드로 붙여봤자 소용없단다. 너무 애쓰지 마라.' 이런 말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차라리 중학생인 하나 오빠가 부모에게 "아, 언제까지 싸울건데? 헤어지든가 빨리 결정을 하라고 쫌!" 하거나 동생한테 "지금 뭐하는거냐? 이래봤자 소용없거든? 하긴 어린 니가 뭘 알겠냐." 할 때 에구 그래, 너는 좀 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족 유미네는 좁은 셋방에 아이들만 놓아두고 부모 모두 공사일에 나가 있다. 그와중에 집주인은 또 방을 내놓고, 이사에 이골이 난 유미는 어떻게서든 막으려 하지만 쉽지 않은데... 결국 동네언니인 하나의 오지랖으로 부모님을 찾아나선 길. 그 험난한 길. 서로의 설움이 폭발해 서로 원망하고 울부짖고, 그리고 함께 잠들었다 돌아오는 길....
유미가 돌아서는 하나한테 묻는다. "언니, 우리가 이사가게 돼도, 계속 우리 언니 해줄거지?"
난 이 대사가 가장 고마웠다. 이 말도 없었다면 끝까지 화냈을 테다.ㅠ

돌아온 하나는 밥을 차린다. (하나의 밥타령과 음식만들기는 영화 전반에 계속 나온다. 같이 밥먹자... 내가 할게...) 그래, 같이 밥을 먹어서 식구라고 한다지. 경찰에 신고하고 들어온 가족들은 놀라고 어이없어하며 밥상에 앉는다. 밥 위의 계란후라이가 탐스럽다. 그리고 하나의 마지막 대사의 무게가..... 대단하다.

영화를 보고 독서모임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가족은 소중한 게 맞지만 절대 깨져서는 안되는 절대구조는 아니지 않냐? 하나 보면서 짜증났다." 했더니 "물론 그렇지만 아이한테는 그 울타리가 우주였던 거지. 아이가 눈치보고 아양떨고 왜그러겠어. 살려고 그러는거야. 지도 살려고." 그 말씀을 하시며 눈물을 살짝 비치시는데 그제서야 나도 좀 울컥했다. 그리고 내가 '오지랖'이라고 표현한 것을 다른 샘은 '연대'라고 표현하셔서 심히 반성됐다.^^;;;;;

하나네 부모님이 어찌됐을지, 유미네가 이사를 갔을지 그건 독자의 상상의 몫이다. 최악은 유미네가 멀리 이사가고 하나네 부모가 이혼하는 거 아니겠나. 내 말은, 그래도 괜찮다는 거다. 그럴수도 있는거지. 근데 아이 마음을, 표정을, 태도를 봐주라구요. 살피고 다독이고 당당하게 펴주라구요. 니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라구요. 그리고 애가 뭘 해주면 맛있게 먹어주고 엄지손가락도 좀 치켜세워주고, 아이가 진정 좋아서 하는거면 취미로 살려주고 어찌될까봐 쩔쩔매서 하는거면 다른 취미로 밝게 지내도록 도와주라구요. 그정도는 해주세요. 나머지는 애들이 알아서 잘해요. 어른들은 '연대' 못해도 애들은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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