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 키큰하늘 2
이혜령 지음, 전명진 그림 / 잇츠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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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와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해 한호흡으로 끝까지 읽게 되는 고학년 동화다. 도시 아이들에게는 약간 낯설게 느껴지는 어촌이 배경이고 진한 경상도 사투리에서 타지역 독자는 더욱 이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어딜가나 인간의 갈등은 비슷한가보다. 가족 안의 문제와 어려움. 그리고 친구 사이의 갈등. 그래서 이 책은 재미를 지나 성찰로 나아가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랑 단둘이 사는 도근이는 어릴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원양어선을 타고 멀리 나간 아빠를 기다린다. 객관적으로 시기를 받을 환경은 아니건만 찬영이는 도근이를 질투하며 마음의 몸살을 앓는다. 혹등고래를 알려준 아빠를 모험가라 자랑할 때, 누구보다 잠수를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모습을 볼 때 찬영이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보기싫게 꼬여버린다.

상황적으로는 엄마 아빠가 다 있고, (특히 엄마가 의식주를 살뜰히 챙겨주고) 운동도 잘하는 찬영이가 훨씬 나아보이는데도 찬영이는 질투를 한다. 아, 그런데 이해가 된다는 사실.... 꼬임은 각자 취약한 어디에선가 비롯된다. 그것이 부적 편향을 가져오고 미움과 분노를 낳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심리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열등감과 질투, 그것에 대한 정당화와 포장. 내안에서도 평생 일어나던 작용들이다.

찬영이에게 그 꼬임은 아빠로부터 비롯되었다. 다리를 절고 좁은 구두수선부스가 세계인 아빠. 그런 아빠에 비해 비록 지금 옆에는 없지만 먼 바다를 누빈다는 도근이의 아빠는 너무나 커 보였다. 그래서 찬영이는 엄마가 전해주라는 반찬도 중간에 먹어버리고 미술시간에 물감도 빌려주지 않는 등 못난 짓을 한다. 행동으로만 보면 어찌나 찌질한지. 그러나 깊은 곳 그 꼬임을 따라가보면 마냥 혼낼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찬영이는 그 근원을 감추고(아빠가 부끄러워 그런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본인도 인정하기 싫은), 나타난 행동은 참 못났고, 그걸 보는 어른은 비난하게 되고, 아이의 행동은 더욱 못나지고 핑계는 다른 곳에서 찾고 대상에 대한 분노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이 이랬겠구나 싶다. 본인이 밝히지 않는 그 근원까지 봐준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만 우리는 비난하지 않으며 원칙을 가르치고 본인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찬영이의 마음이 누그러진 건 도근이의 불행 앞에서다.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이던 할머니의 병이 깊어지고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찬영이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돌아선다. 아 정말 인간이란 실제로 이렇다. 남의 불행 앞에서 비로소 자신이 가진 것을 깨닫는 존재.... 게다가 돌아온 도근이 아빠와 관련된 엄청난 반전.... 이때 찬영이는 온 힘을 다해 도근이를 구하고 변호한다. 이정도만 해도 기특하고 훌륭하다. 하지만 열등감을 해소한 후에야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 우리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되고 상대를 짓밟는 악질도 많으니 이정도에는 박수를 보내주자.

폭포수같은 감정의 분출을 겪었던 도근이도 아빠와의 새 삶을 잘 살아가겠다는 희망을 주며 이 책은 끝난다. 우정도 회복되는 해피엔딩. 적절하다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분위기가 된다면 '찬영이'가 되어보았던 자기고백을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접적인 것이 부담스럽다면 등장인물 되어보기나 등장인물과 대화나누기로 자신 안에 있던 부끄러움을 인식하고 좀 더 멋진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설정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문학의 가장 큰 의미는 '공감'과 '성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참 잘 쓰여진 책이다.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문학이 존재하는데 아직도 더 쓰여져야 하는가? 그렇다. 수많은 인생만큼 수많은 이야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너의 삶도 나의 삶도 모두 이야기다.

그러니까 잘 살자.(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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