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선생 거선생 사계절 그림책
박정섭 지음, 이육남 그림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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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특이하고 새로운 그림책이다. 일단 토끼와 거북 그 뒷이야기라는 점....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겠지? 그 이야기의 변형은 이미 많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단연코 새롭다.^^ 그리고 채색이 전혀 없는 백묘화라는 점. 그 그림들이 곳곳에서 김홍도의 풍속화를 연상시킨다는 점 등이 특이하다.

글투도 아이들 대상이라기엔 투박하고 구성지다.
"토끼가 시건방 떨다 그만
거북이한테 진 이야기는 다들 한번쯤 들어봤지?
그 뒷이야기가 쬐끔 재미지다고 하던데
어디 들어볼 텐가?"

이런 식이다.

토선생은 피하고 싶어하는 거선생을 계속 집적거린다. 물론 재경주를 하고 싶어서지. 그렇게 집요하게 쫓아다니다 결국 거선생의 등딱지를 토선생이 짊어지고 경주가 시작된다. 토선생은 등딱지가 무거워 힘들고 거선생은 추워서 덜덜 떨며 재채기를 한다. 등딱지를 돌려달라는 거선생의 애원을 뿌리치고 달려나가던 토선생은 뜻밖의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거선생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빠져나오지만.... 이미 둘 다 혼수상태다.

판소리가 관중과 함께 만들어가는 양방향 소통의 공연이듯이, 이 책도 등장인물들이 작가와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작가 양반 독자 양반, 우리 좀 살려 주시게.
우리가 죽으면 이 이야기도 끝이란 말이오."

이어서 떨어지는 빗발과 함께 관중(아니 독자)들의 소리가 쏟아진다.
- 그러게 왜 또 경주를 하자고 했나?
- 이미 답은 토선생이 쥐고 있지 않은가?

독자들의 소리에 정신이 든 토선생은 아직 혼미한 거선생을 등껍질에 태우고(등껍질은 여기에서 참 많은 역할을 한다) 날아올랐다고 해야하나, 튀어나갔다고 해야 하나, 책의 경계까지 부수고 탈출한 그들은 어디까지 가는 걸까? 열린 결말을 넘어선 '탈출한 결말'은 독자에게 어디까지의 상상을 가능케 할까?^^

등껍질에 올라타는 모습이 내겐 봅슬레이에 올라타는 오랜 동지의 모습으로 보여서, 앞으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또다른 무수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이들은 승부를 다투는 경쟁자일 뿐이었지만, 이 책의 이야기를 겪고 나니 이제 더이상 경주는 무의미해졌다. 이 책의 뒷이야기를 또 쓴다면 더이상 경주는 안 나오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을 신청하면서 컬러링에 욕심이 났었다. 복사해서 반 아이들이 한장씩 색칠하고 묶어서 새 책을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하는. 그럭저럭 좋아하는 활동이 될 것 같긴 한데, 그보다도 튀어나간 주인공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고 이야기 나눠보는 활동들이 더 재미날 것 같다. 그리고 컬러링을 하더라도 이 책의 바탕이 된 풍속화, 산수화 등을 감상하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중학년이나 고학년 활동으로도 가능하겠다.

재미있는 생각들이 샘솟게 해주는 책은 일단 좋은 책이라고 본다. 작가의 상상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산만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상상력의 크기가 '산만'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부럽다...ㅎㅎ 작가의 상상력에 빌붙어 이 책을 아이들과 재미나게 나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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