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앵글의 심리 -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의 마음으로 읽는 학교폭력
이보경 지음 / 양철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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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빌려다놓고 한참 미루다가 이제야 손에 들었다. 아마 절박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최근 3년간 평화로운 출근을 하고 있어서, 나한테 닥친 일이 아니어서.... 하지만 당장 내년에 우리 학급에 어떤 일이 생기고 그 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 어떤 결말을 몰고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의 일이 내 일 되는 것은 한순간인데, 풀어져 있다 닥치면 대응하기 훨씬 어렵다. 이 책을 지금 읽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심리'에 주목하는 책이다. 가장 근본을 파헤치는 일이라 하겠다. 이미 일이 벌어진 후에 심리타령을 하고 있기는 어렵다. 그때는 납득할만한(그런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처리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관찰하고 지도하는 단계에서는 '심리'에 대한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 이 분야에 공부와 활동을 많이 하신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확히 짚어주는 내용,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는 내용 등 나를 일깨워주는 내용이 많았다.

'트라이앵글'이 제목에 쓰였듯이 이 책은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세 각도에서 당사자들의 심리와 그에 대한 접근방식을 다룬다. 버릴 내용이 없을만큼 밀도있고 설득력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아득해지기도 했다. 이토록 어려운 일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주어진 이 평화에 감사하며 조심조심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걸까. 어제도 오늘도 뉴스에서 성인폭력보다 더 끔찍한 청소년폭력의 사례들을 보았고, 청소년법 폐지하고 엄벌하라는 댓글들이 빗발치는 것을 보았다. 책에 언급된 사례들만 보아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고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확실히 인간이란 건, 나부터가 말이다.... 절대로 고귀하지 않다. 역겹고 냄새난다. 자연그대로 두면 아름다울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가꾸고 다듬어야 그나마 봐줄만한 정원이 되는거고, 그냥 두면 잡초 천지 발디딜 틈도 없는 살풍경이 되는 거다. 인간에게는 악의 발현을 억누르는 여러가지 동기들이 있다. 나를 비롯하여 다행히 이게 작동되는 인간들은 속으로는 남을 욕하든 뒤통수를 갈기든 어쨌거나 겉으로는 남에게 크게 나쁜짓은 안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동기 자체가 없는 인간은? 제어장치가 듣지 않는 인간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는? 그게 나의 제자라면?

트라이앵글은 책의 2부에 나오고, 1부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주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첫번째 꼭지가 <파리대왕>인 것은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나오는 '두 남자와 장인' 이야기에선 자신을 도운 사람을 오히려 견제하고 거리를 두는 인간의 심리를 볼 수 있다.(헉, 찔렸다...ㅠ) '모방의 힘'을 언급한 꼭지에선 영향력, 특히 부모의 영향력의 지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교사의 영향력도 무시 못할 수준이니 다시 한 번 내 언행을 돌아보게 된다. 그룹에서의 분리를 죽음처럼 여기는 아이들의 심리,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의식을 언급한 꼭지에서는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심리라기보다도 우리나라의 특별한 국민적 심리 아닌가 싶어 입맛이 씁쓸하기도 했다. 자존감이 부족하고 남과 비교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국민성 말이다. 독야청청이 씨가 마른...ㅠ

이어서 몇 군데 밑줄친 구절들을 적어본다.
■ 힘을 얻기 위한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어떤 힘을 얻고자 하는지는 아이들이 접한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양하다. 이것을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힘을 갖고 싶어요-64쪽)
: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부분이었다. 건전한 가치관을 가르치는 일이 교육으로 가능할까. 여기에 고개를 젓는다면 나는 당장 짐을 싸야 할 사람이다. 참으로 무겁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한걸음 나가고 싶다.

■ 작은 행위가 큰 행위로 번져 나가는 것을 교사가 즉각 감지하거나 인지하고 막을 수 있어야 한다.(깨진 유리창의 법칙-67쪽)
: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정말로 교실에 그대로 적용된다. 유리창 하나가 깨지지 않도록 사전에 감지하고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혹시라도 깨졌다면 한 장이 두 장 되지 않도록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한다. 끔찍해서 뒤로 물러서는 순간, 그 교실은 끝장이다. 나는 학급붕괴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 아주 미세한 떨림을 감지해 본 적이 있다. 털끝만한 흔들림이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이 꼭지에 정말 공감했다.

■ 교사는 학급 내 집단 역동에 대해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동조하는 이유-84쪽)
: 위 꼭지와 일맥상통하지만 학급 내의 집단 역동에 초점이 있다. 권력 위계가 굳어지면 손쓰기 어렵다. 그 안에서 권력에 의해 부당한 억눌림을 당하는 약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당연한 것, 상식이 되어야 한다. 어떤 해에는 이게 저절로 되지만 어떤 해에는 교사가 돌파해야 한다. 눈물겹게 어려울 때도 있다.

■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 이러한 집단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며 잘못된 위계 형성을 깨부수어야 한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용기있게 따르고 상황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덕적인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 주도록 해야 한다.(90쪽)
■ 이렇게 우리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나약함이 있다. 우리는 이런 나약함에 분노와 실망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욱더 이런 나약함을 인식하고 아픔을 공감하고 자신을 바르게 세울 수 있는 정의감, 정의에 대한 당당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집단에 충성하는 아이히만 -93쪽)

: 공감과 성찰이 결핍된 채로 역할에만 몰두한 아이히만의 사례는 자주 언급된다. 아이들도 이런 경우인 경우가 많다. 딱히 모나고 드세지 않은데도 악행에 충실히 가담하는 아이들. 그 눈을 뜨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과 행동을 살펴볼 수 있는 각성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물론 무척이나 어렵지만....

2부에선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순서로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다루었다. 피해자 장에선 '호모 사케르'라는 용어가 나왔다. 한병철 님의 '피로사회'를 같이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피로사회의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탈출구로 호모 사케르를 찾고, 자신이 호모 사케르가 될까 두려운 아이들은 더 적극적인 공격자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와같이 단순하지 않으며 이것은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 단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원인이 깊으니 해결책 또한 단순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어려움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위로하고 힘을 주어야 하는 대상은 피해자다. 일에 휘말리면 마음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고 들었다. 상처만 안고 그로기 상태에서 끝난다. 학폭법에 대한 문제제기도 우리 사회가 꼭 귀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더불어 회복탄력성을 언급한 부분에 매우 공감한다.
■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덜 상처받을 수 있을까 가르쳐주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고 학교의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142쪽)
: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사실 가해 피해가 명확한 경우보다도 현장에선 그 경계가 애매한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이 회복탄력성(리질리언스)을 가지고 스스로의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고민은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가해자의 마음에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을 감싸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들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돕기 위해서 옆에 있어줄 필요가 있다. 보통 분노가 일기 마련이므로 참으로 수양이 된 인격이거나 숙련된 전문가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마지막으로 방관자 장에선 회복적 생활교육을 다루었다. 이에 대해선 따로 책 한권으로 다뤄도 부족한 분량이니 간단한 소개만 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앞에서 중재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나름의 대안으로 그래도 가장 결실을 보는 방법인 것 같아 관심이 간다.

책의 내용에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배울 점이 많았지만 마지막에 덧붙인 '나가며'라는 장은 내게는 사족처럼 느껴져서 약간 불편했다.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사실은 그 모든 감정을 알아야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일테지만, '나도 그 입장 되어 봤는데'가 반드시 객관성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내가 편집자라면 이 장은 뺐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 책에 언급된 모든 것을 알아도 극복할 수 없는 사안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할 때 하더라도 숨겨진 마음, 그 이해에 집중하려는 저자의 원칙에 나도 동의한다. 그를 위해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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