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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방통 홈쇼핑 - 2018년 제24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ㅣ 일공일삼 79
이분희 지음, 이명애 그림 / 비룡소 / 2019년 3월
평점 :
요즘 읽은 동화들 중에서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다 갖춘 책으로 이 책을 꼽겠다. 주인공 아이는 역경에 처했고, 슬프고 괴로웠지만 그 역경에 맞설 힘을 얻었다. 주변에는 좋은 어른과 좋은 친구가 있었고, 상황은 크게 좋아지지도 않았지만 극한으로 치닫지도 않았으며, 주인공은 삐뚤어지지 않은 마음으로 이 과정 중에 훌쩍 성장했다. 착한 주인공이 복을 왕창 받는 옛이야기가 아닌 한 최상의 설정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현실이 이렇게 흘러가기는 몹시 어렵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해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음을 지키고 옳은 길로 가기 어려운 현실의 모습을 서늘하게 보여주는 작품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견한 모습을 그려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책에는 도깨비의 홈쇼핑이 나오는 바, 현대판 옛이야기와 다를 바 없으니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엄청 현실적이다.^^
'신통방통 홈쇼핑'이라는 제목이 썩 끌리지가 않았다. 판타지로 연결되는 수단일 거라는 짐작은 가는데 그게 별로 달갑지가 않아서였다. 그런데 작가의 필력은 독자를 훅 빨아들였다. 홈쇼핑에서 파는 상품들, 그 상품의 사용법과 효과들이 하나같이 기발하고 스토리와 잘 매치되었다.
아빠의 부도와 행방불명으로 찬이는 산골의 큰할아버지 댁에 보내진다. 불우한 엄마의 어린 시절에 사랑을 주셨던 할아버지는 엄마의 혈육도 아니다. (이 분의 존재 자체가 참 드물고 귀한 일)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지만 산골의 생활은 적적하기 짝이 없다. 케이블 방송도 나오지 않는 옛날 TV를 이리저리 돌리던 찬이에게 홈쇼핑 채널이 잡힌다! 바로 '신통방통 홈쇼핑'! 쇼핑 호스트들은 마치 찬이의 상황과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하고(당연할 것이다. 도깨비들의 홈쇼핑이니^^), 찬이는 홀린듯 주문전화를 누른다. 걱정할 것은 없다. 값은 천지에 널린 도토리 한 됫박이니까.
그곳에서 주문한 물건들은
☆도깨비 감투 : 전학간 학교에서 찬이를 괴롭히던 대성이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음.
☆떡갈나무잎 지갑 : 전학가서 외로운 찬이의 한결같은 친구가 돼 준 명석이. 그 할아버지 가게의 도둑을 잡게 해줌.
☆초소형 구미호 꼬리 : 변신하여 경찰서에서 아빠의 소재를 검색해보려 하였으나 실패로 끝남. 대신 친구들과 비밀을 공유.
☆여우 수염 : 턱에 붙이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가장 욕심나는 물건일 수밖에 없겠다. 찬이는 결국 이 수염을 누구 턱에 붙였을까?
☆도깨비 방망이 : 신통방통 홈쇼핑에 있어 마땅한 상품! 그것도 한 번에 세 개! 그런데 자신의 소원은 빌 수 없다. 친구들은 누구의 소원을 어떻게 빌어주었을까? 이 퍼즐을 맞추는 것도 이 책의 재미 중 하나.
이 홈쇼핑의 상품들과 함께 계절이 흘러가고, 이야기가 흘러가며, 찬이와 산골의 친구들은 성장한다. 겨울이 오고 도토리가 귀해지며 홈쇼핑 채널은 더이상 잡히지 않는다. 이야기가 끝날 때가 된 것이지.^^ 마지막으로 홈쇼핑에서 사은품으로 보낸 여의주 사탕이 도착한다. "여의주의 힘찬 기운을 듬뿍 녹여 사탕에 담았습니다. 여의주 사탕 드시고 힘찬 겨울 보내시길 바랍니다."
찬이는 엄마가 할아버지께 보낸 택배의 주소를 추적하여 서울의 낯선 동네 작은 방에서 고단한 일상을 살고 있는 엄마 아빠를 먼발치에서 보고 온다. 여의주 사탕은 곤히 잠든 아빠의 입 속에.... 상황이 썩 나아지진 않은 것을 알 수 있지만,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한 것도 알 수 있다. 산골의 겨울까지 지내고, 찬이는 기다리던 엄마 품으로 돌아간다. 그건 또 아픈 이별이기도 했다. 세상사가 그런 것이지.
이별 파티에 찬이 엄마가 잔뜩 준비해 온 도토리묵 또한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소재다. 그것은 찬이가 떠난 후 할아버지 집에서의 '뒷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참 세심하게 공을 들인 작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을 들인다고 다 매력적인 작품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한밤중 달빛 식당>에 이은 이 작가 특유의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작가가 풍길 수 있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꽤 두껍지만 4학년 이상이면 권할 만하다. 이 책이 널리 읽혀지고 아이들에게 건강한 힘과 용기를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