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선호,비선호하는 타입과 그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는 지고는 못 살아! 이런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한 승부욕을 보이는 사람은 보기만 해도 피곤하다. 학급의 아이들도 그렇다. 좀 덜 재밌더라도 승부욕이 없는 아이들이 좋다. 재미는 내게 부차적 문제고, 평화는 생존의 문제다.ㅎㅎ그래서 나랑은 보드게임이든 고스돕이든 뭘 해도 재미가 없다. 적당히 흥분해주어야 분위기가 사는데 난 지는 것도 이기는 것도 그닥 좋지 않다. 모두가 나 같다면 게임은 완전히 김샐 것이다. 그러니 지고는 못살아! 타입도 적당히 있어야겠지. 문제는 그게 너무 심하면 과정이 힘들고 뒤끝도 안좋다는 것이다. 이 책의 훈이 같은 아이. 나랑 상극인 아이다.훈이는 무슨 게임을 하든 지고는 끝낼 수 없는 아이다. 지난밤 형한테 보드게임 진게 분해서 아침 댓바람부터 형을 깨워 기어이 한 판을 더 하는 아이. 지면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분풀이를 하는 아이. 이기는 것만 중요해서 넘사벽과는 아예 붙어보지도 않는 아이. 그래서 친구들도 싫어하는 아이.훈이네 학교에 특이한 교장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취임인사로 달인 수준의 줄넘기 실력을 보여주신 교장샘은 전교생 줄넘기 대회를 개최하셨다. 줄넘기에 자신있는 훈이는 기뻐했지만 그 방식에는 불만을 제기했다. 4인1조 모둠원 모두가 한 종목씩 출전하여 총점으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대로 '짚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우섭이랑 같은 모둠이 되자 훈이는 열폭한다.'혼자 하면 1등인데' 라고 불만을 쏟아내며 혼자만 연습을 하던 훈이에게 우섭이가 주춤주춤 다가와 줄넘기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멈칫하던 훈이는 얼떨결에 이것저것 가르쳐주게 됐고 우섭이는 맹연습을 하며 조금씩 실력이 늘어간다. 대회날, 우섭이는 최고기록을 세우며 자신의 역할을 다했지만 오히려 훈이가 만점을 못받아 모둠은 2등을 하게 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과정을 즐기고 격려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해피엔딩.나처럼 경쟁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것과 처음의 훈이처럼 으르렁거리며 이기려 드는 것 모두 극단이며 바람직하지 않다. 많은 초등 교실에 '게임의 고수 6단계' 표가 붙어 있는데 1단계:무기력, 2단계:승부욕 까지는 게임의 하수에 해당된다. 규칙준수, 승패를 넘어선 즐김, 배려, 창조로 가면서 고수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인데 하수를 넘어서는 단계에서 이 책을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사실 이 책에 나온 상황은 최상의 설정이다. 현실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걸림돌들은 이런 해피엔딩을 날려버리기 일쑤다. 일단 교장선생님의 이런 게임방식은 정확히 분배된 책임량을 개인에게 할당하는 방식이어서 위험할 수 있다. 긴장해서 실패하는 사람이 책 속에선 훈이였지만 실제로 이 위험성은 우섭이 쪽이 훨씬 크다. 본성 불변의 법칙이라는 말처럼 가장 변하기 어려운 것은 인간이어서 단시간에 이런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완전히 불가능한 설정은 아니다. 실제로도 훈훈한 변화는 종종 일어나곤 한다. 그게 없다면 교실은 살 맛 안 나는 곳이겠지.^^발전의 동력이 되는 적당한 승부욕. 어디서나 그렇듯이 '적당한'보다 어려운 말은 없다. 이 안전지대 속에 있을 때 내 교사로서의 일상은 천국이었다. 그러나 천국 속에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슬픈 운명인 터, 으르렁 지옥을 화기애애 천국으로 만드는 것도 교사의 역량일테지. 아 부담스럽구나.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