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김기정 지음, 신민재 그림 / 한권의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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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을 보고 긴가민가 했다. 동화의 본질에 다가가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애쓰시는 동화작가 김기정 님의 책 맞나? 혹시 동명이인인가?

동화작가 김기정 님의 책 맞았다. 음악에 대한 책이지만 비문학이 아니었다. 김기정 님의 강점인 재미있는 스토리와 대화가 잘 살아있으면서 음악의 매력과 설렘을 잘 표현한 동화였다. 이 책을 어린시절의 내 아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이제는 다 컸지만....

애가 애를 낳아 키우며 숱한 시행착오와, 뭘 잘 몰라서 혹은 바쁘고 힘들어서 못해준 것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음악을 가르친 것 한가지가 그 많은 실수의 절반은 덮는다고 생각한다. 둘다 전공은 안했지만 딸은 교회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고 아들은 지금 군악대에서 클라리넷을 불고 있다. 교회에서 또래들이 모이면 플룻, 첼로가 더해 앙상블을 한다. 웬만한 성가곡 정도는 금방 맞춘다. 그걸 들을 때가 내 생활의 행복한 순간 중 하나다. 돈 많은 동네인가보다고? 전혀 아니다. 여긴 서울 변두리 집값 제일 싼 동네고 다들 학교 방과후나 동네 학원에서 배운 실력들이다.(아들만 개인레슨을 1년쯤 받음) 교회라는 무대가 있으니 의미를 계속 유지하며 악기를 놓지 않았을 뿐이다. 중요한 건 이제 다들 성인이 된 이 또래들이 자신의 음악적 경험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니면서도.

나도 나이 50 다되어 동네 도서관 동아리 합창단에 들어갔는데 여기 평균연령이 나보다 조금 높다. 준실버 합창단이라 할까. 솔직히 때로는 듣기 민망한 음악을 만들어낸다.ㅎㅎ 그래도 모두들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나도 여기에 오래 있고 싶다. 그러면 된거 아닐까. 이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음악은 천재들만 하는 게 아니야."
"그냥 느끼고 즐기라는 뜻이지. 그걸로도 충분!"
내 생각엔, 음악을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기는 것이긴 하지만 직접 만들어내는 음악은 그 이상의 느낌이 있다. 그러니 작은 악기 하나라도 연주 가능하도록 익혀보는 게 좋다. 그게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내 몸이라는 악기가 있지 않은가! (나처럼ㅎㅎ) 쌩목소리로 핏대를 세울지언정 음악의 한구석을 떠받치는 그 느낌은 참 좋다.

이 책은 바이올린을 겨우 소리만 내는 미솔이라는 아이가 학교 오케스트라반에 들어가 토벤 선생님을 만나고, 도전을 받으며 무대를 완성하기까지의 이야기다. 과정이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의 아들 어린시절을 모델로 한 것 같다. 열정적이면서도 뭔가 허당이며 웃기기도 한 지휘자 토벤 선생님, 토벤 선생님의 어머니로 오케스트라에 측면 지원을 하신 뽕짝 부인(알고보니 그녀는 30년 경력의 퇴임 음악교사), 실력 빵빵한 일부 선배들, 미솔이처럼 실력은 없으나 함께하는 과정에서 투지가 생긴 대부분의 단원들이 함께 만들어간 과정이었다. 어릴 때 악기라고는 리듬악기와 리코더밖에 만져보지 못했던 나는 이런 요즘의 아이들이 부럽다. 하지만 요즘이라고 이 책의 상황이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우리 학교에도 누구의 입김인지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긴 했다. 예산을 따올 수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악기와 레슨이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다. 쉽게 들어간 아이들은 쉽게 빠졌고, 적은 연습시간에 성실치 않은 단원들로 지휘자는 고충을 토로했고, 연주회에선 객원들(악기별 선생님들)이 주로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음악은 아름답고 그 매력은 빠져들수록 대단하다. 하지만 그걸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기본 진리가 여기에도 통한다. 시간투자, 꾸준한 노력, 밀도높은 집중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일반적으로 가능하진 않고 모든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악기를 다룰 수도 없다. 꼭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고. 여기서 학교 음악교육의 기능을 더 생각해보게 된다. 출발점도 재능도 모두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해야 하는 음악수업. (여기서 출발점이 다른 것을 사교육 운운하며 문제삼는 것은 생트집. 이에 대한 논의는 넘어감) 음악의 매력을 알게, 연습은 밀도 있게, 다양한 수준이 어울리게, 작은 무대에 자주 설 수 있게(교실 앞에 나오면 그게 무대다) 해주는 것 정도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것도 잘 되진 않아서 늘 반성한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이면서 끝에서 두번째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연습때 자꾸 틀리는 부진 녀석들 때문에 분위기가 날카로워진 날, 토벤 선생님이 해 준 얘기는 '크리스마스 휴전' 이야기였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전장에서 울려퍼진 캐롤 연주와 그에 화답하던 노랫소리. 그 음악은 총을 내려놓고 서로를 원수가 아닌 친구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장 <뽕짝 오케스트라>에선 긴장 속에 연주를 마친 단원들이 앵콜곡으로 "꽃 피는 동백섬에~"를 연주하며 모두 흥겹게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곡은 뽕짝 부인의 애창곡이다. 지휘자 어머니를 '뽕짝 부인'으로 설정한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음악의 장르에는 귀천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조용필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뽕짝 부인'이라고 부르길래 난 순간 "아니 조용필이 왜 뽕짝이야?" 하며 발끈했는데, 뭐 그럴 일은 아니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미워 미워 미워' 같은 그의 곡들이 뽕짝인 건 사실이니. 우리 합창단에서도 가끔 편곡된 장윤정의 뽕짝들을 부른다.^^

음악 동화이기에 음악에 치우친 이야기를 했지만 미술, 무용 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즉 음악을 '예술'로 바꾸어도 된다는 뜻이다. 왜 인간에게는 예술이 있겠는가? 그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소통하게 하며 행복과 위안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존재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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