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씨름 - 제7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53
이인호 지음, 이명애 그림 / 샘터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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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듯한, 슬프고 막막하고 고단한 인생들의 작은 불빛 같은 이야기. 참혹하고 서늘하지 않아서 고마운 이야기.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듯한 이야기. 그래서 참 좋았다. (그러나 현실은 죽으라는 법이 지배한다던가? 아닐거야, 이런 따뜻한 불빛도 있긴 할거야 라고 나는 우겨본다.)

세 편의 제목을 보고 나는 두번째 작품을 먼저 읽었다. [눈물 줄줄 떡볶이] 먹는 이야기여선가? 나도 마침 매콤한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였던가? 하여간 제목이 가장 땡기는 것부터 먼저 읽었다. 엄마 아빠를 졸지에 교통사고로 잃은 소연이의 이야기였다. 어린이 화자 중 이보다 더 비극적인 아이가 있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할머니가 소연이를 맡으러 집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빠의 친엄마가 아니다. 그러니 사실 소연이랑은 혈연관계도 아닌 것. 소연이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지 않고 두 사람의 관계는 쉽지 않다. 마침내 소연이는 자신을 맡아준 할머니의 의도까지 의심해 비수같은 말들까지 뱉어내고..... 그런 손녀와 할머니의 이해와 화해 이야기. 매개체는 공포떡볶이.

어른이 어른다우면 문제는 거의 풀리는 것 같다. 끝내 안되는 일도 있긴 하지만. 난 가끔 어른답지 못하다. 그런 내가 가끔 걱정이고. 근데 할머니는 참.... 얼마나 오랜 세월 참아오셨을까. 하지만 할머니도 성격은 있는 사람이고 저자세 스타일은 아니셨다. 그리고 소연이가 그렇게 막나가는 타입은 아니었고, 떡볶이 화해에 응하는 걸 보면 뒤틀린 아이는 아니다. 앞으로 두 사람은 가끔 삐꺽거려도 신뢰는 기본으로 깔고 갈 것 같다. 소연이가 어른이 되면 할머니는 또 할머니의 방식으로 남은 삶을 사시겠지......

첫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팔씨름]은 주인공의 형편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근데 그건 생활환경의 문제고, 사실 또래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처지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사마귀처럼 막강한 녀석의 표적이 되어 날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인 정담이는 허구헌날 사고치는 쌍둥이 동생들이랑 산다. 어느 일요일 부모님의 부재로 동생들을 맡게 된 날 벌어진 일들. 웬수인 줄 알았던 동생들이 실은 가장 강력한 아군이었다는 걸 알게 된 날.

그날 정담이는 문제의 영식이를 집에 데려오게 되었고 동생들의 성화에 팔씨름 대결을 하게 되는데.... 의외로 정담이는 강했고 영식이는 약했다. 예상된 승부가 뒤집어졌지만 이긴 자도 진 자도 별 말 없이 한 냄비의 라면을 가운데 놓고 젓가락을 든다. 쌍둥이들도 같이....

나도 이런 실속없는(?) 사마귀들을 많이 보았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은 성깔이 있고 말이 쎄다는 것. 진정한 강자는 발톱을 감추는 법인데 이들은 생기다 만 발톱으로 포악을 떤다. 이럴 때 진정한 강자가 지그시 눌러주고 '그만'이라는 눈빛을 보내주면 바로 깨갱인데.ㅎㅎ 그리고도 그걸 떠벌리지 않고 마치 잊은듯 무심하게 같이 어울린다면 당신은 진정한 멋쟁이. 정담이는 피해자에서 멋쟁이로 거듭나는가? 대책없는 쌍둥이 동생들에 의해서?^^

마지막 작품 [성배를 찾습니다] 이 작품이 내게는 화룡점정이었다고 할까? 이 책이 정채봉문학상 수상작인데 과연 그러할만하다는 결론을 내준 작품이다. 독자마다 선호는 다를 것이지만 내게는. 아마도 개가 나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성배가 바로 개 이름이다. 철거촌에 마지막까지 살고 있는 성민이는 엄마가 24시 감자탕집에 밤일을 다녀서 집이 말이 아니다. 사람들이 떠나간 동네엔 남겨진 개들이 떠돈다. 그중에 며칠째 울면서 '성배'를 찾아다니는 준호를 어쩌다 달래주게 됐다. 준호네 집 꼴도 심란하긴 똑같다. 그러다 며칠후 성민이가 달래주며 그냥 해본 말처럼 '성배'를 찾았다. 준호가 묘사하던 엄청 귀여......운 개와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둘은 성배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한다. 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별의 시간도 찾아오지.

이렇게 쓰고 보니 별 이야기도 아닌데 왜 내겐 가장 다가왔을까? 정말이지 개란 무엇인가? 철거촌에서 마지막으로 나와 남의집에 의지하게 되어도 놓을 수 없는 그 정의 끈은. 물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개와 안아보고 그 숨결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그건 가능하지가 않다. 그 느낌과 다행감을 잘 살린 작품. 요즘 사회시간에 여러 가족의 형태와 모습을 공부하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반려동물도 가족일까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새로 개정된 교과서라서 이런 내용까지 들어간 것 같다) 반려동물 관련 그림책은 많아서 그걸 읽어줄까 했는데 이 작품을 읽어주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작가분이 그린 대로 세상에 작은 불빛들과 숨쉴 구멍들과 눈물 다음의 후련함과 풀꽃 같은 건강한 생명력이 있다면 좋겠다. 작품이 그런 세상을 조금이라도 가깝게 한다면 나는 물개박수로 작가분들을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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