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는 엄마 그래 책이야 19
송언 지음, 최정인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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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송언 선생님 책의 리뷰를 쓴다. 3년 전에 우리 학교 독서축제 때 모셨을 때까지는 현직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젠 퇴직하셨다고 들었다. 현직에 계셨을 때 더 다작을 하셨던 것 같다. 털보 선생님 교실의 온갖 개성쟁이들이 주인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나같이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느낌이 비슷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이 책.... 오랜만에 나온 이 책을 읽고 나는 울컥했다. 엉뚱하고 고집센 말썽꾸러기가 교실을 휘저으며 털보선생님과 온갖 유쾌한 실랑이를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책의 아이는 지적장애가 있어 특수학급과 복지관 치료 프로그램을 다니는, 학급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가온이다. 그리고 애타는 눈길로 딸을 바라보는 엄마가 함께 나온다.

가온이는 한글을 모른다.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당연히 일기도 못 쓴다. 그런데 가온이 엄마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일기에 댓글을 달아주신다는 얘기를 친구엄마에게서 듣는다. 그날부터 엄마는 가온이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하루 일과를 대화하고, 그것을 일기로 써서 학교에 보낸다. 선생님은 거기에 댓글을 써 주신다. <일기 쓰는 엄마>라는 제목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송언 선생님 책을 정말 좋아한다. 아마 좋아하는 작가, 아이들에게 인지도 있는 작가 1순위일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재미있어서다. 송언 선생님 책에 나오는 특유의 주인공은 그와 비슷한 아이에게도, 반대의 아이에게도 위안을 주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도 재미있어 할까? 잘 모르겠다. 사려깊고 공감능력이 있는 아이들은 나와 다른 이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느끼고 이해할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유쾌함만 생각하고 이 책을 펼친 아이라면 "별로 재미없던데." 할 수도 있겠다. 경험의 폭에 따라 공감의 한계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독자가 엄마나 교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책은 일기와 일기 아닌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기는 앞에 말한 대로 가온이 엄마가 쓴 것이다. 거기에 선생님의 댓글, 엄마의 대댓글이 붙어 있다. 가장 절절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딸에 대한 애틋함, 가여움, 안타까움, 기특함, 미안함 등의 감정이다.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엄마는 인내심이 강하면서도 여리고,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때론 깊이 상처받는다. 주변을 배려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사람이다. 선생님의 댓글과 관심도 작은 일은 아니지만 거기에 대한 엄마의 감사 표현이 더 놀라웠다.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을텐데 불만이나 요구보다는 감사 표현이 앞서는 가온이 엄마를 어떤 사람들은 답답하게 볼 것도 같다. 예를 들면 가온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려 들지 않을 때, 단체 활동을 기피해서 혼자 개별활동을 할 때 "왜 우리 아이를 소외시키냐?" "아이 좀 잘 살펴라" 라며 불만과 요구를 쏟아놓으시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일기는 여름방학때 좀 쉬었다가 2학기에 다시 시작된다. 평이한 문장들 속에 매일 아침 약을 먹어야 하는 이야기(약을 먹으면 급식을 잘 못 먹고 안 먹으면 과잉행동으로 사고를 치게 되고ㅠ), 바지에 똥 싼 이야기, 교실에서 치마를 훌렁 벗어버리고 안입겠다 고집부린 이야기, 사고치고 혼나고 사라져 애먹인 이야기 등등 쉽지 않은 상황들이 들어있다. 그러다 어느날 엄마는 절필(?)을 선언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지만 누구도 힘이 돼 줄 수 없는 엄마의 외로움과 막막함이 다가와 눈물이 난다.
"내일모레면 12월이잖아요. 또 한 학년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걱정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지네요. 다가오는 1년을 또 어찌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요. 이런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요?"

이후로 선생님은 더이상 가온이(엄마)의 일기를 볼 수 없었다. 3학년에 올라간 가온이는 복도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선생님을 잊은 듯했다......
그러다 그 다음해 가을, 선생님은 두 통의 편지를 받는다. 아주 짧은 편지와 아주 긴 편지였다. 짧은 편지는 아, 삐뚤빼뚤한 가온이의 편지. 이제 첫 발을 떼는 가온이의 글씨였다. 긴 편지는 엄마의 편지. 그동안의 공백을 채우기라도 하듯 진솔한 문장으로 가득차 있었다. "....느닷없이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가온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막막함이 찾아온 것이었지요..... 그러자 언제까지 가온이의 일기를 대신 써주어야 하나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긴 편지는 "더 나은 희망의 빛을 찾아 가온이랑 꿋꿋하게 살아가겠습니다." 라는 말로 끝이 난다. 여리고도 단단한 엄마의 앞으로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좌절과 일어섬의 경험은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외로움과 막막함은 점점 덜해지길, 그런 사회이길 바란다.

재작년에 우리반에도 발달장애 학생이 있었다. 한 친구가 느닷없이 내게 와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이는 행복할까요?"
난 깜짝 놀라 황급히 대답했다.
"그럼. 니가 행복한것처럼 ♡♡이도 행복하지. 너랑 느끼고 생각하는게 똑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그래도 ♡♡이가 똑똑해졌으면 (황급히 수정) 아,아니 지금도 똑똑하지만 더 똑똑해지면 행복할 것 같아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리고 니가 ♡♡이가 혼자 있을 때 같이하자고 말해주고 도움이 필요한거 같을 때 도와준다면 더 행복하겠지."
"저는 그럴래요."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선생님이 감동받았어. 고마워."
아이는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 들어가더니 이후 ♡♡이를 챙기려 애썼다. 뭐 솔직히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들이 챙기면 뭘 얼마나 챙기겠냐마는....

미친듯한 속도로 남을 앞서려는 강박에 사로잡힌 이 사회에서 저마다의 속도는 제각기 다르며, 그 속도에 맞추어 저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어디까지 가능할지. 가온이 엄마한테 그 희망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아니에요. 때로는 내려놓고 쉬어도 돼요.

아참 잊을 뻔 했다. 털보 선생님! 퇴직하셨다고 교실 이야기가 그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다른 아이와 털보선생님의 이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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