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뜨는 모꼬 꿈꾸는 돌고래 4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웃는돌고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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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좋아하는 작가의 안 읽은 작품이 있으면 빵꾸난 기분이라 그자리를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데, 유승희 작가의 이 책을 도서실에 채워 놓고도 한참동안 잊고 있었다. 엊그제 도서실을 훑다가 눈이 번쩍 뜨여 가져왔다. 읽기 전에 검색해보니 이 작가의 책 중 가장 덜 팔린 책이다. 판매지수가 밑바닥이다. 근데 내 취향이 독특한 건지, 작가의 역량이 덜 알려진 건지는 몰라도 나는 이런 작품이 너무 재밌다. 너구리가 사람의 말을 하고 천체관측을 하고 '무한한 것들에 대하여' 생각을 하며 산다? 그러니 현실동화는 아닌데 이 너구리를 만나는 강사장은 속물적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인물이다. 둘의 만남과 대화가 정말 웃긴다.

동화책인데, 화자가 강사장이다. 너구리도 아니고 강사장 아들 민우도 아니고. 어 이거 색다른 시도인데? 은근 재밌어 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지만 그건 내가 화자와 같은 어른이어서 감정이입이 더 잘 되어 그런 것이고, 아이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동화인데 왠지 어른들이 읽어야 할 이야기 같은.... 하여간 나는 이 어수룩한 속물 남자 사람한테 꽤 공감을 하고 있었다. 너구리랑 말할 때 보니 나랑 말투까지 비슷했다.
"나는 어른이고! 아따, 그 너구리 참 말 많네."
"고만하긴, 얌체같은 놈아."
뭐 이런 말투들.ㅎㅎ

강사장은 부동산 개발업자다. 선바위골에 전원주택 단지 개발을 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장씨 할아버지네 산과 과수원을 사야 가능한데 여의치가 않자 아예 그 옆 빈집으로 이사를 왔다.(부인과 아들은 서울에 두고) 장씨 할아버지 마음을 돌리려고 일손을 돕는 등 정성을 쏟으며 밤이면 뒷산에 오르던 길에, 운명적 만남을 한다. 바로 말하는 너구리. 너구리는 특이한 말투에 강사장을 '임자' 라고 부른다. "임자, 어서 오믿."

말 뿐이랴. 너구리는 사색하며 탐구하기까지 한다. 코앞의 것에만 눈이 벌게 생각이 뭔지도 잊고 살던 강사장은 당황한다.
"인간들도 생각하며 살지 않으믿?"
"무,무슨. 당연히. 그럼. 생각하고 살지."
"무슨 생각 하시믿?"
"아, 나야 뭐. 그냥,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살지."
"여러가지란 말은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던데...."

이렇게 강사장을 부끄럽게 하던 너구리도 먹을 것 앞에서는 우리집 강아지와 똑같은 모습이 된다. 그것 때문에 더 웃겼던 것 같다. 참치 통조림을 따서 그릇에 담는 동안 침이 뚝 떨어지는 모습, 라면을 맛보고는 "나면, 나면, 전말 마짓으믿!" 하고 감탄하는 모습이. 이렇게 얻어먹은 너구리는 호칭을 임자에서 '슨상님'으로 바꿔준다. 난 임자가 좋은데...^^
어느새 너구리는 장씨 할아버지와도 친구가 되어 있었고 각각 홀로 외로웠던 셋은 꽤 즐거운 시간들을 함께 보낸다.

그런데 웃을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생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짐작한 장영감은 드디어 강사장에게 과수원을 팔았고, 기다려왔던 개발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파헤쳐가는 주변 모습에 놀란 너구리가 강사장을 찾아왔고 시원찮은 변명만을 듣고는 분노에 차서 떠나가 버린다. 이후의 일들은 우울하다. 다시 만난 너구리는 올무에 걸린 모습이었고, 애써 올무를 풀어주었지만 깊은 상처가 난 몸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현실적인 속물 캐릭터 강사장이 그 캐릭터를 끝까지 유지하려면 이 책은 해피엔딩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런데 강사장은 참 어설픈 속물이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 전후로 슬프고도 따뜻한 일들이 있었다. 완전치는 않지만 절반의 공존 가능성이 열린다.(그래, 너구리가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비현실적이다. 사람이 욕심을 포기하는 일 말이다. 비현실적이고말고.)

강사장을 중심으로 이 책은 두 줄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시골의 이야기가 절반이라면 서울에 있는 가족 이야기가 나머지 절반이다. 평범한 주부인 아내와 아들 민우는 날마다 전쟁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공부시키느라 마음이 조급한 엄마와 "한번 태어나서 가는 짧은 인생 허무하다"며 자유를 주장하는 민우는 사사건건 부딪히고, 강사장은 일하는 와중에도 이들을 중재하느라 애를 먹는다. 엄마의 욕망과 조급함은 요즘 유행하는 한 드라마의 상류계층 여자들과 수준은 다르되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기다려주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대로 미치고 엄마는 엄마대로 환장한다. 엄마를 무턱대고 욕할 수는 없다. 대체 우리는 왜이리 불안한 것일까?

너구리는 밤마다 별을 보고, 탐구하고, 기록한다. 그런데 강사장이 이야기 나누어보니 천동설로 천체를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첨단장비도 사전지식도 없는 너구리가 혼자 거기까지 알아낸 것도 대단한 일. 답답해서 펄쩍 뛰던 강사장은 어느 순간 입을 다물고 너구리를 격려한다. 이 대목을 통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남의 자식한테는 이게 되지만 자기 자식에게는 두개골을 열어서라도 넣어주고 싶은게 부모의 본능 아니겠는가. 그래서 돈만 있으면 수억을 들여서라도 입시 전문가를 옆에 붙이고,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없으면 부풀려서라도 대학을 보내고. 그 다음은....?

유승희 작가님의 동화에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이 책에는 진짜 인간과 함께. 이게 이질감 없이 실소가 나오지 않고 자연스럽기는 참 힘든데 작가의 능청스러움은 이를 다 커버한다. 이야기는 어차피 '거짓말을 얼마나 능청스럽게 하는가'에 달렸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찰진 대사로 눙치는 작가의 능청스러움을 나는 참 좋아한다. 비록 비현실적이라 하지만 따뜻한 결말도 좋다. 희망을 보여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기도 할 테니까.

(전에 한 후배가 "개발과 관련해서 아이들과 읽고 이야기 나눌 책 추천해주세요." 했을 때 비문학책을 알려 주었는데 그때 이 책을 추천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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