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끼리 해결하면 안 될까요 내일을여는어린이 10
박신식 지음, 김진희 그림 / 내일을여는책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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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학폭위 열리는 날>이라는 동화를 읽고 그래 이제는 이런 동화가 나오는구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 나온 것도 아니고 2016년에 나온 책) 거기다 이 책까지 읽고 나니 정말 오죽했으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폭법은 정말 이대로는 안된다. 내가 아는 한 이 책이 제 2의 학폭위 동화라면 제3, 제4의 학폭위 동화도 계속 나올 것이다. 지금의 실상에서 변화가 없다면 말이다. 쓸 능력만 된다면 나도 쓰고 싶을 지경이니까. 그 정도로 현실은 답답하다.

작가의 이름을 다른 책에서도 봤는데 초등교사이신 줄은 몰랐다. 읽어보니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쓰셨는지 알겠다. 작가는 자기 반에서 학폭을 겪어보셨든가, 학폭 담당교사를 해보셨든가, 아님 적어도 가까이에서 지켜보신 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교직경력이 20년이 넘었어도 애송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운이 좋아 아직도 '임자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턱까지 가본 적은 있지만 그 전에 마무리가 되었다. 그정도의 경험도 내겐 다신 겪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정도인데,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갈수록 꼬이는 상황과 깊어가는 상처를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하는 자괴감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이 책의 내용에 학폭위가 열려 끝없는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어가는 과정이 묘사될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에서 그리는 과정은 '작은 다툼을 큰 문제로 만들지 않는 과정'이다.

4학년인 동해와 예나는 각각 학급의 남자회장과 여자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둘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알고보니 2학년 때 심각한 갈등을 겪은 사이라고 한다. 2학년 선생님은 분반시 이 아이들이 같은 반이 되지 않도록 했는데 3학년 선생님은 이 사실을 몰라 4학년 때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둘은 사사건건 트집잡고 싸우고, 어느날은 공교롭게 서로 상처까지 내게 된다. 두 아이의 엄마들은 선후와 경중을 따지며 서로가 피해자라 주장하고, 자기 자식에게는 사과하면 가해자가 되는 것이니 절대 사과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고는 학교에 찾아와 학폭위를 열어달라 요구한다.

요구하면 당연히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 학폭위다. 여기서 미적거리거나 중재를 시도했다가는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책의 담임선생님은 그래도 차분히 설득하며 살얼음판 걷기를 자청했다. 학폭위의 절차와 진행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나도 해본 적 없어 새삼 이렇게 복잡했나 깨달음) 아이들에게 해결의 기회를 줄 것을 설득했다. "..... 하지만 이런 문제는 어느 한 쪽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기에 시간을 주어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다툼을 해결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원하신다면 그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벌게 된 시간과 기회. 선생님은 아이들과 '다툼화해서'를 작성하고 미션을 주며 과정을 지켜보고 확인한다. 그에 앞서 아이들에게 하신 이 말씀이 마음에 콕 박혔다. 너무나 공감이 가서다.
"살아가는 데는 요령이 필요해. 그중 하나가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만들지 않는 요령이라고 생각해."

많은 이들이 그놈의 자존심과 복수심 때문에 일을 키우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에 올라탄다. 선생님의 저 말씀의 '요령'이라는 단어는 가벼운 말 같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상당히 중요한 삶의 태도다.

이어 나온 내용에서는 주변 친구들의 농담인듯 장난인듯 뼈있는듯 나누는 대화들 속에서 두 아이의 대립이 조금씩 해소된다. 이부분 상당히 중요하다. 말하자면 또래중재라 하겠다. 주변의 성숙한 또래의 존재는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곤 한다. 학급에 소수의 미성숙한 아이들이 있어도 다수의 성숙한 아이들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큰 문제로 번지지 않고 잘 해결되며 함께 성숙의 길로 나아간다. '긍정적 또래압력'이라 부를 수 있겠다. 단 이런 경우도 시간과 기회는 필요조건이다.

물론 절대 가볍게 보거나 한번의 사과로 퉁치거나 어설픈 화해로 덮을 수 없는 심각한 사안도 있다. 드물게는 정말 놀랄만한 악행을 저지르는 아이도 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학폭법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학폭법은 인간 사이라면 당연히 있는 갈등에 대한 자정기능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혜를 모아 이것을 바른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이 책이 그 생각과 논의에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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