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기 한 봉지 낮은산 너른들 8
강무지 지음, 이승민 그림 / 낮은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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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이현 작가님의 <동화 쓰는 법> 책의 뒷쪽 '추천동화 100권'에서 보고 구입했다. (잠시 그 책에 대해서 말한다면, 목록만 참고하고 반납하려다 그냥 읽어보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이렇게 느껴졌다. "그냥 하시던 일이나 하세요. 동화는 안써져요." 위기철 님의 <이야기가 노는 법>에서 느꼈던 느낌과 똑같았다. 특히 작가가 인물과 배경과 사건을 빈틈없이 설정하기 위해 실제 인물들 사이로 들어가고, 자료조사를 하고 취재를 하는 대목을 보니 절로 작가분들을 존경하게 되면서 절대 함부로 넘볼 영역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직업이자 삶이다.)

이 책도 그렇다. 작가의 삶에서 우러나온 책이다. 난 처음에 이현 작가님의 이 소개말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서울의 인구 밀집은 현실적 이유 탓이지만, 작품의 배경이 서울에 몰려 있는 것은 상상력의 빈곤일 따름. 서울 따위 훌쩍 벗어나 '양산' 이라는 지역적 특색에서 자라난 인물들, 말들, 이야기들."
다음 학기 사회 첫 단원이 '도시와 촌락의 생활모습'이어서 촌락의 모습을 거의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읽힐 작품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내용 자체는 매우 적당하나 4학년 우리 아가들 수준엔 어렵다.... "이게 뭔소리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단 말이에요?" 이런 질문을 할 녀석들의 표정이 떠오르는.... 그래서 통독을 시키긴 어렵겠다. 아쉽다. 작가님이 독자를 고학년으로 보고 쓰신 듯하니 어쩔 수 없지 뭐.... 분량도 200쪽 가까워 꽤 많다. 단편들이니 그 중 한두 편을 읽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부산이 고향인 작가는 그 옆 양산마을을 배경으로 이 작품들을 썼다. 경상도 사투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생생하다. 8편의 단편 안에 개발에 힘들어하는 시골의 모습도 담겨 있고('닭'과 '다슬기 한 봉지') 도시에서 온 손자의 큰 실수를 덮어주시는 동네 노인들의 따뜻함도 담겨있다.('소') 어른 못지 않은 고단한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도 있고('수정이')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도 있다.('도망자'와 '바쁘다 바빠, 테스 씨!')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엄마와 새아빠의 삶을 응원하는 속깊은 아이의 이야기와('콘서트')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의 형제가 겪는 좌절과 형제우애 이야기('돈 만원')도 찡하다.

작품은 작품으로 읽으면 되는데 (특히 이 책은 그러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책인데) 직업병인지라 굳이 수업주제와 줄긋기를 하자면, 촌락의 생활 단원에서는 '소'와 '다슬기 한 봉지'를, 다문화 관련해서는 '돈 만 원'과 '바쁘다 바빠, 테스 씨!'를 읽어줄 것 같다.

표제작인 '다슬기 한 봉지'가 가장 길면서 많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 같다. 8편을 대표할 만한 작품 맞다.
농사 짓고 다슬기 잡고, 부지런하게 욕심없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요즘 터널공사를 위한 다이너마이트 소리다. 그 와중에 다슬기 한 봉지가 돌고 도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드러난다. 정말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구성이다.
방앗간 할머니는 오늘 내려올 아들 가족에게 다슬기탕을 끓여주려고 아침부터 개울에서 다슬기를 한소쿠리 잡았다. 오다가 들른 친구 담뱃가게 할머니 집에서 힘든 일에 몸져 누운 친구를 보고 그만 잡은 다슬기를 봉지째 주고 온다. 그 다슬기 한 봉지는 담뱃가게에 잔심부름을 해주는 고마운 심성의 마을버스 최기사에게로 건네지고, 최기사는 그걸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생 진석이에게, 진석이는 이장님에게, 이장님은 술주정하며 억지부리는 구촌아재에게, 아재는 마침 마을에 들어오던 방앗간 할머니의 아들에게 건넨다. 결국 방앗간 할머니는 아들 가족과 다슬기를 끓여 먹었겠다. 그사이 터널 뚫는 폭발 소리는 계속되고, 그곳에서 사는 온갖 생명들의 삶도 이어진다.

아이들이 '다슬기 한 봉지'의 가치를 이해할까 모르겠다. 귀찮아서 폭탄돌리기 하는 걸로 이해하는 건 설마 아닐테지?ㅎㅎ 넉넉하지 않지만 소박한 것이라도 건네주려는 인심, 돈되는 일도 아니지만 성실히 땅을 일구는 농부들, 그곳에 밀어닥치는 개발의 바람들.... 도시 아이들은 알지 못했던 모습일거다.

책의 겉모습도 내용도 찬찬히 곱씹어야 비로소 맛을 느낄 것 같은 게, 딱 시골의 맛과 비슷한 것 같다. 추천책이 아니었으면 나도 흘려버렸을 책이다. 많이 팔린 책도 아니다. 흙 속에 묻힌 보석이랄까. 이런 책도, 이런 마을들도 그 모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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