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마트 구양순 여사는 오늘도 스마일 어린이 나무생각 문학숲 1
조경희 지음, 원정민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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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의 동화버전이라 할까. 둘다 배경이 마트이고 주인공들은 거기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면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약간은 결이 다르다. 이 책은 감정노동자들의 애환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잘 보여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눈물겨움이 있지만 재미와 재치도 있다.

그 사회의 천박함의 수준을 보려면 구성원들의 갑질의 수준을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주 부끄러운 수준이지...ㅠ 거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이 표어라고 생각한다. "고객은 왕이다."
왕이라는 봉건시대의 존재를 갖다붙인 것부터가 시대착오적이다. 한쪽이 왕이면 한쪽은 뭐란 말인가? 우리에겐 각자의 소임에 맞는 역할과 의무가 있을 뿐이지 인간에게 위아래는 없다. 저 표어부터 당장 폐기해야 한다.

주인공 구양순 여사는 화자인 태양이의 엄마다. 행복마트의 고참 계산원이지만 여전히 1년 단위의 비정규직이다. 행복마트의 사장님은 바로 저 표어(고객이 왕이다)를 신조로 삼고 있는 사람. 직원들에게 철저히 친절교육을 시키고 폴더인사를 시킨다. 문제는 친절 차원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블랙컨슈머의 가당찮은 갑질에도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돌리며 친절교육을 강화할 뿐이다. 이 와중에 직원들의 가슴은 썩어 문드러져 간다. 감정노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히 느낄 수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에도 이 표어가 스며들어오며 학생과 학부모를 소비자의 위치에 놓기 시작했다. 즉 학부모는 화이트컨슈머 아니면 블랙컨슈머인 셈이고, 이중 블랙컨슈머가 맘먹고 갑질을 하면 한 학급 말아먹는 건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젠 교사들도 감정노동자의 범주에 넣는다. 그러나 실제로 블랙컨슈머는 비율면에서 그리 많지는 않다고 본다. 문제는 그게 통하는 사회라는 것.

오늘 나도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사고 줄을 섰는데 앞 고객의 계산이 아무리해도 끝나질 않았다. 알고보니 계산대의 컴퓨터가 오류가 난 것이다. 죄송하다며 다른 계산대로 옮기라고 하는데, 계산대마다 줄이 길어 또 기다려야 했다. 난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물건들을 다시 담아 다른 줄에 섰다. 근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이 우왕좌왕했다. 전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듯.... 이럴때 어떤 나라 사람들은 괜찮으니 천천히 하라며 웃어준다던가.... 근데 난 못참고 한마디를 던졌다. "해결이 되나요? 안되나요? 기다려요 말아요?"
그러자 직원 한분이 마이크를 잡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사정을 했다. 나는 줄에서 빠져나와 상품들을 제자리에 다 돌려놓고 나와버렸다. 아무데나 던져놓고 나온 것도 아니니 나도 아주 나쁜 고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이 상황에 아무도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불평을 하지 않더라는 것. 내가 젤 나쁜 고객이었다. 이 책을 읽고 갔는데도 말이다.ㅎㅎ 그러니 블랙컨슈머가 많아서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의 가당치 않은 행위를 근절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마트에서 구양순 여사와 동료들의 일이 이야기의 한 줄기라면, 태양이와 모둠 친구들이 '노동'이라는 주제의 모둠과제를 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줄기다. 이 두 줄기는 합쳐지는데, 모둠 친구들이 취재차 행복마트를 방문한 것이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깨닫고 훌륭한 발표를 한다. 특히 블랙컨슈머와 삼진아웃제에 대한 역할극이 많은 호응을 받았다. 고객의 권리가 중요한만큼 직원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하며 도를 넘어선 행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막다른 곳에 이른 직원들은 "우리는 일회용 종이컵이 아닙니다." 라는 구호가 적힌 노란조끼를 입고 투쟁하며 일을 하게 되는데, 노사협상이 잘 해결되어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은 동화다운 무난한 결말이라 하겠다. 악랄하던 사장이 선선하게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고객 직업체험행사로 역지사지를 하는 부분은 현실과는 좀 멀어보였지만, 이 정도만 보여줘도 아이들에게는 많은 생각거리가 있을거라 본다.

몇년 전부터 나는 "진로교육은 곧 노동교육이 아닐까"를 생각해 왔다. 모든 아이들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바리스타나 요리사가 되진 않는다. 그리고 어떤 직업이든 기본적으로 하기 싫거나 괴로운 일도 참고 해야만 한다. 즉 남의 돈 거저 먹는 법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직업을 미리 정하라 종용할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업이 다 귀하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직업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이 매우 기쁘고 반가웠다.

[약간 옥의 티?] 동화의 시점이 좀 헷갈렸다. 분명히 태양이가 '나'로 서술하는 1인칭 시점인데 마트 장면에서는 전지적 시점이다. 태양이가 천리안을 가진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장마다 다른 시점으로 썼나? 내가 그것까지 따지면서 읽진 않았고, 하여간에 읽으면서 읭? 했다. 물론 작품 안에 여러 시점이 혼재된 작품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매끄럽지 않아서 그 점이 좀 아쉽다. 그래도 내용이나 재미 면에서 정말 맘에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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