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였을 때 튼튼한 나무 24
루이즈 봉바르디에 지음, 카티 모레 그림, 이정주 옮김 / 씨드북(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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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쪽 가량의 다소 긴 그림책이다. 그러니 고학년 정도에게 적당할까? 아니 내가 볼 땐 어른이 읽기에도 쉽지 않다. 내용이 어렵거나 이해가 가지 않아서가 아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다.

25세지만 지적 능력은 5세를 넘지 못하는 앙투안이 화자로, 자신에게 닥친 일을 자신이 이해하는대로 서술하는 이야기다. 캐나다는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지 않던가? 장애인을 돌보는 일이 이렇게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겨지고 아무런 도움도 지원도 없단 말인가? 어디에나 복지의 사각지대는 있는 모양이다.

앙투안은 엄마와 세 살 아래인 동생 자크와 함께 산다. 엄마는 평생 앙투안을 돌봤고, 자크는 커가면서 형에게 화를 많이 낸다. 이 책의 엄마는 밝은 느낌이 없다. 그러더니 아예 누워서 일어나질 못한다. 앙투안은 삼촌 집에 잠시 맡겨졌다. 돌아와보니 엄마는 돌아가시고 없다. 앙투안은 그걸 '쉬러 멀리 가셨다'고 이해한다.

그때 동생 자크가 울면서 한 말이 그들의 상황을 알려준다. "이제 내가 형을 책임져야 해!"
그러나 엄마도 힘들었던 그 일을 동생이 잘할 리가 없고, 동생의 울분과 학대는 점점 심해지다 어느날 술에 취해 집을 나가버린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던 앙투안은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먹지도 씻지도 못하다가 마당의 개 델핀느에게 사료를 주게 되고 그때부터 개와 함께 먹고 자게 된다. 제목은 이 부분에서 나왔을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둘은 행복했던 것 같다.(결국 델핀느도 세상을 떠났기에...ㅠ)

개의 시신까지 더욱 엉망이 된 집을 두고 앙투안은 집을 나와 나무에 올라간다. 새랑 친구가 된다며.... 그때쯤 결국 삼촌이 다시 와서 앙투안을 거두며 이야기는 끝난다. 삼촌과 누군가와의 통화에서 동생 자크도 사고사(혹은 자살)했다는 암시까지 보이니, 내용은 더할 수없이 슬프고 참혹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런 글을 작가는 왜 썼을까? 현실 르포의 성격으로 쓴 작품일까? 혹시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장애인이 있으면 이렇게 슬프고 힘들구나 라는 생각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을 살짝 하고 있는 나. 하지만 이러한 사각지대가 현실이라면 여기에 처한 이들을 공감하고 이곳까지 관심과 도움이 닿는 사회가 되도록 깨어있으라는 메시지를 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놓고 볼 때 장애인으로, 장애인의 가족으로 사는 것이 아직은 많이 힘들고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최근의 보도를 예로 든다면 장애인 자립시설을 만드는데 주민들이 "결사 반대합니다" 라는 연판장을 내거는 일 같은 것. 생각해보니 이런 상황은 이 책만큼이나 참혹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청소년이나 조금 생각이 깊은 아이들이 읽는다면 현실을 마주하고 대안을 찾는, 생각의 확산이 가능한 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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