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방귀침을 쏴라, 흥흥! 휴먼어린이 저학년 문고 6
정연철 지음, 유설화 그림 / 휴먼어린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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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데 왜 내 속이 이렇게 시원하지? 이유가 좀 순수하지 않아 보이는데...?ㅎㅎ

복코 고주민은 그 코 때문에 같은 반 태경이에게 날마다 놀림을 받는다. 코끼리, 코뿔소 등 별명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괴롭힘에 시달린 주민이는 이런 생각까지 한다.
"착한 사람은 복 받고 나쁜 사람은 벌 받게 되어 있으면 좋겠다. 하느님은 참 답답하다. 잘난 척하고 남 괴롭히기 잘하는 태경이 같은 애들 싹싹 끌어모아서 벌을 주면 좋을 텐데. 가만히 내버려 두니까 겁도 안 내고 더 설쳐 대는 거다.
바쁘면 나한테 초능력이라도 좀 주지. 그럼 최선을 다해 나쁜 사람들 혼내 줄 자신 있는데.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아무 거나 괜찮으니까 제발 초능력 좀 달라고."

'초능력'이란 말에 난 움찔했다. 그건 속마음을 들킨 듯한 공감의 움찔이었다.ㅋ 하지만 말이 되는가? 초능력이라니.
아 그런데 말이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주민이는 벌에게 코를 쏘였다. 그러잖아도 큰 코가 더 부어올랐고 태경이의 놀림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이후 주민이에겐 없던 능력이 생겼다. 바로 책의 제목인 '콧방귀침'이었다. 콧방귀침은 꼴불견 어른 슈퍼악당과 선글짜장맨을 향해서도 날아갔고 태경이와 민재에게도 따끔하게 꽂혔다.

이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주민이는 더이상 놀림에 상처받아 씩씩대는 아이가 아니었고 여유있게 놀림에 맞서면서 오히려 녀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여유가 생기자 아량도 나오고 용서도 나온다.

주인공들의 연령(2학년)에 비해 대화 연령이 약간 높은 듯한 느낌은 있다. 내가 맡았던 2학년들은 완전 애기들이었어서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제시한 문제해결 방법은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방법이 들어갔어도 말이다. 주민이는 참고 참고 또 참은 것도 아니었고 지극한 선량함으로 상대를 감화감동시킨 것도 아니었다. 따끔한 맛을 보여주었고(요즘 애들 말로 인실을 시전?) 본인의 자존감을 회복한 후에 상대를 여유있게 대할 수 있었다. 딱히 대단한 용서를 베푼 것도 아니고 할 말은 따박따박 하면서 말이다. 그거였다. 내가 속이 시원했던 이유.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해와 용서, 그와 함께 책임과 사죄도 균형있게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그렇게 한없이 선한 존재는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을 보면 알지 않는가? 나야 뭐... 남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다마는, 양심과 선의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존재도 아니다.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는 이 경계가 명확치 않아 딱 떨어지는 상황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케이스마다 원인과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얽힌 것을 정리해 핵심을 들여다보기는 매우 어렵다. 진실은 왜곡되기 쉽고 그걸 밝혀내기는 어렵다. 그러니 공명정대한 해결이란 신의 영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가. 초능력에 내가 움찔한 이유는. 어쨌건간에 못되고 양심없는 녀석들은 간혹 모습을 드러낸다. 눈앞에서 잘못을 하고도 딱 잡아떼고 증거있냐 니가 어쩔거냐 태세로 나오는 놈의 양심에 박힌 털을 족집게로 쏙 뽑아내는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단 그 털은 엄청 뻐셔서 뽑을 때 몹시 따끔하다.) 교실에 분노조절장애와 그 자극원이 함께 있어 모두가 살얼음판을 걸을 때, 자극원의 입에서 나오는 망령된 소리에 음소거를 하고 분노조절장애의 주먹에 스폰지를 씌우면 얼마나 좋겠냐 말이다.

비결은 역시 초능력인건가.ㅎㅎ 하지만 촛점을 거기에 맞출 순 없다. 작가의 말에 보면 이 책은 '별명'에 대한 작가의 기억에서 출발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별명은 괴롭힘과 다툼의 주요 원인이다. '별명을 불러도 되는가?'는 단골 토론 주제이고 '별명을 부르지 말자'는 단골 건의사항일 정도로. 이 책을 함께 읽는 것만으로도 이 주제에 대한 깊은 공유가 이루어질 것 같다. 시작은 별명이지만 모든 유형의 괴롭힘, 그에 대한 현명한 대처 등등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이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밥이 되어 아이들의 마음 속에 가 닿기를 바랍니다." 라고 작가는 말했다. 맛, 아주 좋다.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읽다보니 인물들의 캐릭터나 대화, 일어나는 사건들이 인절미처럼 쫙쫙 감기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이 책만 해도 놀림에 상처받는 주민이, 얄밉게 괴롭히는 태경이, 당당한 전학생 수빈이, 못된 어른 몇몇과 괜찮은 어른 몇몇 등의 인물들과 그들의 대화, 일어나는 사건들이 재미있게 잘 엮어져 있다. 밥. 이정도 주제면 영양가도 높은 밥이라 하겠다. 저학년 동화로 나왔지만 유치감(?)이 없어서 중학년까지 읽어도 괜찮겠다. 우리반(4학년)에 읽어줄까 싶기도 하다. 서로 콧방귀침 쏜다고 콧물깨나 튕기는거 아닐지 모르겠다. 생각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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