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할머니 집 - 제10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 웅진책마을 90
강경숙 지음, 이나래 그림 / 웅진주니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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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구나.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입은 웃는데 눈물이 고인다. 아무 상관도 없는 타인을 웃고 울릴 수 있는 작가. 작가님들을 존경합니다.ㅠㅠ

웅진주니어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많이 뜨길래 학교도서실에 수서를 하고 책이 들어오자마자 손에 잡았다. 수상작이라 해도 맘에 들어오지 않는 작품이 어쩌다 있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작품을 보는 눈은 다들 비슷한 것 같다.

일단 읽는 맛이 좋다. 주인공 자매가 불타오르는 한여름 거리를 걸을 때 내 미간이 찌푸려지고, 그러다 들이키는 찬물 한 모금에 내 속도 시원하다. 지치도록 걷다 찾아들어간 식당에서 먹는 음식맛의 묘사는 또 얼마나 맛나고 찰진지, 걷는 길에서 만난 어른들의 경상도 사투리는 또 얼마나 친근하고 구수한지. 하루종일 걷다 겨우 얻은 초라한 잠자리에서 미끄러지듯 잠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순간은 얼마나 공감되는지.

원양어선 선장으로 소수민족의 공격을 받고 실종된 아빠, 돌아가신 것도 살아계신 것도 아닌 아빠를 생각하다 마음의 병이 난 동생(이 아이가 화자다), 동생을 지켜주려 눈물겹게 노력하는 듬직한 언니. 이 가족 이야기가 찰진 글맛 속에서도 눈물로 비집고 나온다.

걸어서 할머니 집.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다. 이번 항해가 끝나면 할머니 집까지 걸어서 가자고 아빠는 약속했지만, 그 항해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시름의 심연에 빠져 죽을 것 같은 동생을 보다못한 언니는 자매 도보여행을 제안하고 둘은 떠난다. 부산에서 합천까지의 그 먼 길을. 나는 경상도를 거의 안가봐서 자매가 지나간 길과 지명에 익숙하진 않지만, 작가는 정말 걸어보셨나보다 이길을... 그렇지 않고서 이리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후기에 보니 이 이야기는 작가가 실제 만나본 아이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인생의 느닷없는 발길질은 아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앉아서 가만히 당하지 않고 길 위로 나선 건 최선이었고 다행이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그저 걷기만 했는데 뭔가가 일어났다.
여름날의 그 길을 떠올리면 걸음걸음 애틋하고 길목마다 그리워 마음에 불이 켜진다."

이제 훌쩍 커졌을 그 아이들은 잘 살고 있겠지. 걷는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 끔찍한 한여름 땡볕길을 엿새나 걸은 그 자매는 이제 살아갈 힘을 자기들 안에서 끌어올렸겠지.
걷는 길에 차가운 물 한 병, 밥 한 그릇, 수박 한 덩이 주시며 장하다 짠하다 해주셨던 어른들 감사합니다. 저도 누군가가 제 앞에 그런 모습으로 오게 되면 이리 맞을게요.

할머니 삼대가 사시는 집에 하룻밤 묵어간 얘기가 젤 훈훈하고 재미났다. 곱고 착하게 늙어가는 귀여운 할머니들께 "시장을 반찬으로 묵어" 하는 밥한그릇을 얻어먹고 자매는 어디서도 안해봤던 막노래 막춤 리사이틀을 펼쳤는데 할머니들의 반응.ㅎㅎ
"아따, 애기들이 재주도 좋네. 덕분에 얼매나 재미졌는지 몰러."
배우지 못하시고 시골에서 손바닥만한 밭 일구며 사시는 이런 할머니들이 서울에서 배웠다며 돈번다고 골몰하며 사는 나보다 백배는 세상에 존일 하시며 사시는 거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유명해지겠다고 발싸심하지 말자. 부디.ㅠ

로드킬당한 고라니의 시신 앞에서 동생이 오열하는 장면은 이야기의 슬픔이 분출되는 부분이다. 가슴이 먹먹한 장면.
그리고 드디어 당도한 할머니 집을 바라보는 장면. 달라진 건 뻣뻣해진 다리와 꼬질꼬질한 얼굴밖에 없지만, 희망이 차오른다.

고학년을 맡으면 학급 아이들과 같이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 누군가에겐 위로를, 누군가에겐 힘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재미는 기본으로 장착.

세상에 이야기는 이렇게 끊임없이 나오는구나.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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