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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
이명석 지음 / 홍디자인 / 1999년 2월
품절


재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보통 그 자리에서 머무른다. 그러나 만화가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예쁜 그림을 그리는 데 익숙해져 있는 작가들은 곧잘 자기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림 자체에 매혹되는 독자들이 많고, 그래서 적당한 이야기만 덧붙이면 잘 팔릴 만한 상품이 된다. 잡지의 화보란을 맡고, 화려한 컬러의 일러스트레이션 북을 만들고, 캐릭터 상품을 만든다. 그러면 정작 만화 자체는 재미없어도 만화가로서 살아갈 만큼은 된다. 마치 배우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처럼 그저 그 정도의 자리에서 적당히 지낼 만도 한 것이다-38쪽

나는 SF 작가들은 대단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고 싶은 조물주의 욕망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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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三國志 4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2월
품절


예형의 안하무인에 참고 참던 조조도 발끈했다.
"깩! 너만 청백하고 누구는 혼탁하냐?"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눈이 혼탁하고 글을 읽지 않으니 입이 탁해졌고 충언을 안들으니 귀가 탁하고 고금사를 모르니 몸이 탁하고 더 있다 더 있어! 제후를 용납하지 못하니 배가 탁하고 항상 역적질을 생각하니 마음이 탁하고 나같은 천하평사를 북치기로 채용하니 그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진 것이다!"-18쪽

욕된 자식이 강호로 표탕하여 돌아다닌 지 여러해만에 네 처신하는 공부가 좀 나아진줄 알았더니 도리아 처음만도 못하단 말이냐? 너는 일찍이 글을 읽어서 나라에 충성하는 일과 집에서 효도하는 일이 양전되지 못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네 어찌 한꺼번에 충신노릇도 하고 효자노릇도 하려 들었더냐? 조조는 기군망상하는 역적이요 유현덕은 인과 의로 사해에 이름 높은 사람일뿐 아니라 한실의 후손이다. 네가 그를 섬겼다 하니 주인을 잘 만난 셈인데 한 조각 거짓 편지를 읽고 속아서 밝은 곳을 버리고 어두운 곳으로 찾아왔으니 차으로 어리석은 놈니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너를 대해 보겠느냐? 너는 공연히 천지간에 나서 조상을 욕되게 하는 자이다.-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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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1
천계영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연재 될 때는 띄엄띄엄 한 권씩 봤던지라 막연히 특이했던 작품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거진 5년만에 마음잡고 밤새워 열 권을 다 읽어내고 나니 생각보다 참 괜찮은 작품이었구나. 하는 감상.

앞에서도 말했든이 한꺼번에 읽지 않고 중간 중간 시간을 둬가며 읽었기에 그 당시에는 줄거리가 좀 복잡하게 여겨졌었다. 많은 밴드가 나오고 주인공들은 모두 제각각의 에피소드 속에서 성장을 하고...근데 한꺼번에 보니 사실 별 줄거리가 없어서 놀랐다. 오디션이 그리는 시간은 딱 세달, 토너먼트 오디션이 시작하여 우승자가 가려질 때 까지이다. 재활용밴드가 결승에 나가기까지 거치는 오디션 수가 4차례던가 3차례던가..하여튼 그리 많은 오디션을 거치지 않는다. 그 흐름만 알면 줄거리는 끝. 참 심플하다. 그게 이 만화의 특징이다. 주인공의 천재적 재능이 자라는 과정을 그린 만화들을 보면 대체로 참 길.다. 대표적으로 배가본드, 유리가면 등등은  읽다보면 줄거리가 어땠는지 까먹을 만한 종류(?)의 만화가 아닌가.  그만큼 꼬고 비비고 얼키고 설킨 스토리들과 차별화되는게 오디션의 특징이다. 그 심플함, 그리고 어떤 종류의 얕음. 이 오디션을 성공시킨 비결이 아닌가 한다. 일반적인 한국만화에선 보기 드물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스토리속에 녹아들어 보는 동안에는 와,,와,,어떻게 이런걸 알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냉철히 보면 그닥 전문적이고 심도있는 지식은 아니다.(전문 장르만화와 비교해봤을때.) 그 얕은 지식과 심플한 스토리와 쭉쭉 뻗어나가는 시원시원한 펜 선 그리고 만화속에 흐르는 적당히 인간적인 '따땃한' 분위기 그리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천계영표 감수성이 더해져 만들어진게 바로 오디션. 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적당히 인간적인 '따땃한' 분위기란 그닥 감정묘사나 주인공들의 감정을 그리지 않고서도 무난하게 따뜻한 분위기를 그려내는 걸 말하는데 캐릭터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감정묘사가 적게 그려지고 너무 스토리 전개가 빠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화를 자세히 보면 천재 4명은 모두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있다. 장난치며 서로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사 하나하나 그리고 사소한 것에서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상황이 진행되는데, 오디션을 계기로 모이기 전까지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천재들이 그냥 어느날 모여서 오디션을 준비하는데..이미 그 때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고 있었다는 식이어서 나로서는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서로의 관계에 관한 부분보다는 개개인이 오디션을 거칠때마다 어떻게 내적으로 성장하느냐에 더 촛점을 맞추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누구 하나 들어갈 틈 없는 그들만의 견고한 관계가 형성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류미끼와 옛친구 이야기 에피소드는 상당히 괜찮았다. 만화에서 그린 '관계'중 가장 좋았다)

또 천계영의 뎃생솜씨. 그림 못그려서 대학 때 만화동아리에 가입거부를 당했다더니 정말 독을품고(?) 연습을 하신겔까, 선이 참 좋다. 최근작 DVD에서는 실험적으로 나가시느라 그런지 인체를 더 왜곡하고 거친선으로 그리던데 오디션의 선은 참 탄탄하다는 느낌이 든다. 보는 재미가 있다. 거기다가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의상을 보는 재미도..

표현과 관련하여 안 좋았던 부분도 있다. 주인공들의 오디션 장면에서 작가는 주로 주인공들 즉 천재들이 오디션 상대방과 대결하며 상대방의 어떤 점을 배워나가는지에 치중하다 보니 음악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 정도는 전달이 되는데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그 음악이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해야할까..주인공들이 아..아...이러면서 자기들은 삘 받아서 한단계 높은 단계로 뛰어오를때 오디션은 끝난다. 독자들로서는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주인공이 성장했구나..이런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고 나서 그런거 같다. 비교가 되니 말이다. 물론 둘을 단순 비교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노다메의 경우 이미 존재하는 클래식을 듣고 그 한 마디 마디 섬세하게 만화로 그려낼 수 있지만 오디션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음악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기에..작가의 고충은 이해한다만 좀 아쉬웠던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오디션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역시 '천계영표 감수성' 일 것이다. 언플러그드 보이로 치고 올라온 인기가 오디션때 극에 치닫고 있었던 듯 하다. 황보래용의 그 유명한 대사 "우주가 넓어서...그래서 슬픈가봐." 캬......이것 저것 얕았다고는 하나 다 평균이상은 했던 천계영...그렇지만 정말 독자들에게 한 방 제대로 날린 건 그녀의 감수성, 감수성 만큼은 깊고도 깊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밋밋해 보이지만 당시의 그 충격은 얼마나 컸던지. 그런 만화를 읽고 있다는게 행복했었지^,^

캐릭터. 순면 100퍼센트 삼각빤스 입고 맨발로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조울증 천재 보컬 황보래용이 특히 눈에 띄는 캐릭터인데 (물론 류미끼역시 만만치 않다^,^) 당시 '오빠는 황보래용'이라는 유행가가 있었던 걸 떠올려보면 얼마나 천계영의 만화가 인기가 있었나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황보래용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지어진 가사 아닐텐가. 뭐 캐릭터 하나하나 다 개성이 철철 넘치니 따로 말할 것 없을테고 내가 다시 읽으며 가장 맘에 들었던 캐릭터는 명자였다. 의외였다 나로서도.. 처음에 읽을 때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었는데 다시 보니 명자의 분량이 가장 많아 보이고 그녀의 캐릭터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거대기업의 상속녀이면서도 차분하고 희생적인 그녀의 모습이 만화속에서는 유일하게 좀 현실적으로 '비극' 적인 인물이어서였을까. (아무래도 너무 많은 음이 머릿속에 떠올라 밤 잠 못이루는 천재보다는 쌀이 없어서 구두를 내다 팔아야 하는 상속녀에게 더 공감이.ㅋㅋㅋㅋㅋ) 캐릭터 말이 나온 김에 이 만화는 참 성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을 깨는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류미끼는 남자이지만 아름답고 여리여리한 외모로 여자라는 오해를 받고 다니고  명자는 여자이지만 여자캐릭터에게 흔히 나타나는 나약함과 우유부단함보다는 모두를 끌어안는 따스한 리더십과 모성애를 보여준다.  탐정인 박부옥은 탐정이라는 직업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를 쫓아다니는 형사 오우삼이 오히려 여성적으로 그려진다. 오우삼은 일을 할 때는 거친 모습을 보이지만 사랑하는 박부옥 앞에서는 순종적이고 나약한 존재가 될 뿐이다. 이런 캐릭터들과 안 어울리게 작품 중간중간에 넌 남자랑 어떻게...하는 류의 대화들이 자주 나오긴 하는데(어떻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냐는 ..)작가의 가치관이라기 보다는 작품 흐름 상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보여진다. 결론은 그 캐릭터들이 맘에 들었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

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에 가서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차근차근 정리가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범생이' 적이어서 좀 별로였다. 중간이상은 하는 마무리였지만 (애초에 스토리를 다 짜놔서 그런지) 파격적인 이미지의 작품인지라 너무 조신하고 해피엔딩을 그리려는거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린 독자들을 많이 의식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별 4개를 주자니 그러기엔 아까운 작품이라 별 5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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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7-01-2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언플러그드 보이에서 오디션까지 천계영의 최대 약점은 고래같은 감수성을 가둬두기엔 너무 얕은 스토리었죠. 재미있는 건 세부적인 인물묘사나 에피소드는 훌륭한데 전체적인 이야기가 그에 비해 너무 약하다는 거~

LAYLA 2007-02-01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리풀말미잘님은 어떤 만화가 좋아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禁止를 금지하라 - 지승호의 열 번째 인터뷰집
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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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끊임없이 배우고, 자기 스스로 개선되어가는 상황을 많이 깨달았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한 시기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고 합니다. 오늘 내가 어떤 책 하나를 보고, 어떤 말 하나를 들으면서 오늘 내가 달라진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거든요. 사람은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 같아요.

-51쪽

저는 검찰까지도 그렇다 치고, 법원의 경우에는 이영훈 대법원장님이 광화문 네거리에 나와서 과거의 일을 가지고 정말 백배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법을 배운 사람의 책임이죠. 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나중에 검찰에 가서 "검사님 고문당했습니다" 또는 법원에 가서 "고문당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조차 제대로 안 준 그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자의 이름이여, 판검사'라는 제목을 달았을 정도로 같은 법조인으로서 부끄러워 잠이 안 오더군요. 군사독재라는 게 결코 전두환, 노태우 이런 사람만 한 게 아니잖아요. 그 밑에 하수인들이 있었던 건데,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법원이나 검찰에 있고, 변호사를 계속 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민주화의 도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겠죠. -70쪽

세상에 안 된다고 생각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요. 부닥치면 뭔가 이루어낸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사회운동에서는 긍정적인 생각이 세상을 바꿔내는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75쪽

시민운동을 해보니까 공공적 지식인을 양성해내는 훈련 과정이더군요. 돈이 있습니까? 사람이 있습니까? 오직 명분만 가지고 사람을 모아내고, 돈을 모아내고 해서 사회 현실을 바꿔내는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정치권에 가면 잘할 수밖에 없죠. 대부분의 경우에 희생과 헌신에도 능하죠. 그래서 저는 앞으로 우리나라 시민운동가들이 지방 의회도 가고, 군수나 시장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박원순-78쪽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문학이 기여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고, 참된 문학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조정래-103쪽

제가 만날 학생들한테 얘기하는 게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거거든요. 연세대 교훈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거거든요, 그게 성경에 있는 말인데, 진리라는 게 잘못하면 도그마가 되고, 마녀재판이 되고 그러잖아요. 그게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어지면 엄청난 폭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해서 자유에 관한 글을 많이 썼죠.-121쪽

-..'표현의 자유 억압'과 변화의 거부 그리고 '성의식의 이중성'을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결국 지식인의 책문데, 대중들은 굉장히 자유화되었다고 볼 수 있죠. 인터넷을 통해 자기 의견을 거리낌 없이 개진하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변신을 한다는 거에요. 학생들도 보면 대학 때 다르고 대학원 때 다르거든요. 교수되면 또 달라지고, 제가 <나이 값> 이라는 글에서 "제발 나이 값 좀 하지마라"고 쓴 적이 있는데, 나이만 좀 들면 보수로 바뀌고, 권력 지향적이 되어버리죠. 그게 우리나라의 제일 큰 병폐에요. 서양의 경우 피카소나 헨리 밀러 같은 경우 칠팔십 대에도 야한 그림 그리고 야한 소설 썼거든요. 우리 작가들을 보면 쉰 살만 지나도 역사소설, 민족 소설 같은 대하소설만 쓴단 말이에요. 그래야만 인정을 받고. 젊었을 때는 연애소설을 쓰다가도 그렇게 변하죠. 이게 아주 심하거든요. 그게 일본하고 다른 점입니다. -127쪽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죠? 윤동주 시인을 저항시인이 아니라 휴머니스트이자 자신에게 솔직한 시인이었다고 평가하셨는데요
-그게 윤동주뿐 아니라 우리나라 해방 전 작가들에 대한 가장 잘못된 이해죠 그래서 제가 <이상화론>을 쓸 때도 <나의 침실로> 같은 것도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침실로 가서 섹스하자는 것이다 라고 했어요 내용을 보면 그렇거든요 침실이 뭐예요? 방인데. 근데도 그걸 해방공간이니 뭐니 하고 해석한다고요. 이상도 마찬가지에요. 이상의 <오감도>도 정자들의 질주라고 해석했는데요. 그것도 전부 식민지 시대의 불안을 표현했다, 이런 식으로 간단 말예요. 윤동주가 저항한 게 없거든요. 이한열 같은 거예요. 재수 없어서 죽은 거야, 불심검문에 걸려서. 그런데 그 사람 시에 저항이란 걸 한 구석도 찾아볼 수가 없지, 있다면 전부 자신에 대한 저항이죠.<십자가>라든가 <간>이라든가 <또다른 고향>이라든가 읽어보면 전부 내부의 자아분열, 이런 걸 그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제가 심리적으로 해석을 했죠.-135쪽

-삼국지 열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에서는 홍루몽을 더 쳐주고 수호전도 많이 보는데, 수호전은 산적 얘기잖아요. 따지고 보면 민중의 얘기일 수 있죠. 그런데 <삼국지>는 권력자들의 얘기거든요. 그입장에서 서술한 거고. <삼국지>에 이렇게 열광하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권력 지향적으로 돼서 그런 것 같아요-138쪽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얘기의 핵심이 야한 정신 같은데,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야한 정신이라는 게 어떤 것입니까?
-전체보다는 개인, 봉건윤리가 아니라 자유주의 윤리, 그리고 특히 야하다를 들 야 자를 써서 자연의 본성에 솔직한 사람, 이런 뜻으로 쓰죠.-139쪽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가지신 일은 있습니까?
-...제 소망은 더 용기를 내서 미발표 작품도 발표하고, 한편으로는 산문으로 계몽도 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만날 얘기하는 게 우리나라는 아직 셰몽주의 시대도 안됐다는 거거든요. 계몽주의 시대 때 한 게 종교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든가 비합리성에 대한 저항 이런 게 아니겠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합리적인 생각조차도 뿌리를 못 내리고 있거든요. 아직 전근대적이라는 야기지. 겉으로는 최신 프랑스 철학을 수입하면서도 속으로는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요. 산문으로서 일종의 계몽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 전에도 많이 했죠. <사라를 위한 변명> 같은 것도 그렇고 <운명>도 그런거고.-140쪽

-작년에 문화 쪽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이순신 열풍이었는데요
-제가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철거하자고 글 많이 썼는데요. 동상도 서울대 교수가 만든 건데 완전히 깡패처럼 만들었잖아요. 어깨 올라가고 눈 부릅뜨고...이순신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단 말이죠. 그런 식으로 아주 말하자면 무 숭상이지. 힘. 물론 이순신은 영웅이지만 그런 영웅숭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죠. 제가 <천재와 영웅>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천재는 박대하고 영웅은 숭배한다"는 내용이에요. 영웅은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대개 괴팍하고 고독해요. 그런데 천재들은 언제나 시대를 이끌어가거든요. 장 자크 루소 같은 사람도 당대에는 판금당하고 잡혀가고 그랬거든요 <에밀>때문에. 그런데 그게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천재를 중시하는, 괴짜를 인정하고 개성을 인정하는 이런 풍토는 없고 어떤 수단으로든 영웅만 되면 그사람은 대단하다고 평가하잖아요. 박정희가 대표적인 예죠. 영웅숭배 굉장히 심합니다.
마광수-152쪽

삼성이라는 기업조직과 이건희 일가라는 인적집단을 구분해서 봐야 하는데, 동일시하려는 의도가 있죠. 이건희 회장 측에서는 끊임없이 이건희=삼성, 삼성=국익, 국익=국민의 행복 이라는 등식을 심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각 등식 사이에는 엄청난 과장과 논리 단절이 있죠. 국익과 국민의 행복이 꼭 일치하지는 않거든요. 현대 정치학 개념에서 국익은 가장 복잡한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왕의 이익이 국익인 나라도 있고 소수 독재자의 이익이 국익인 나라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국익의 개념이 변천되어온 역사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계속 마법과 주문을 거는 거죠. 이건희=국익, 국익=나의 행복 그래서 우리가 황우석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집단에 의해 또 다른 집단에 대한 살육이 있었던 거 아닙니까? 언로이라는 건 무원칙하거나 특정인의 이익에 의해 매겨진 등식이 부등하다고 하는 것을 밝혀주는 거거든요.그렇잖아요. 그 등식이 부등하다고 하는 것을 일깨워주고 끊임없이 일반 시민사회의 이해와 일치하는 등식을 매겨주는 것이 언론이 할 일이거든요. 우리는 '짐이 곧 국가'라고 하는 등식에 저항해서 수 많은 사람들의 피로등식에 부등호를 매겨운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역사를 수행하는 것이 언론인데, 지금은 신성불가침의 등식이 된 거죠. 그들과 나는 같지 않고, 그들의 이익과 내 이익이 같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영원히 자본 시대, 이건희 왕조의 일방적인 신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261쪽

초동목부들, 손수레 끌고 시장바닥에서 구두 파는 사람들은 겁이 나서 그렇게 못할 거예요. 과연 사회정의라는 게 뭔지, 누구 좋아라고 우리가 이러고 사는 건지..하물며 그 대한민국 당대 파워엘리트들한테 그렇게 돈질을 일상적으로 업무 삼아 하는데 그 사람들 눈에 일반 국민들은 얼마나 하잘 것 없이 보일까. 돈으로 거래할 것 없는 그 헐벗은 사람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263쪽

연대에서 경영학을 했고, 대학원 때까지 런던 비즈니스 스쿨이라는 데서 경영학 공부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기대를 못버리고 잡았던 것이 뭐냐 하면 Ethical Resource Management라는 건데요.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 경영에서 윤리적인 것도 하나의 자원이기 때문에 그것을 잘 관리하면 기업 생산성이 높아질 수도 있고, 시장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군의 학문적인 움직임이 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시장 속의 양태는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면 자본의 반공익적이고 사악함을 상쇄하기 위한 아편적인 도구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기부행위라든가 소외계층에 대한 시혜적 차원이죠. 그들의 99가지 치부를 덮기 위한 한가지 방편, 마법수 같은 거죠. -264쪽

기자는 랜턴 같은 존재예요. 말이 난무하는 어둠 속에서 사회를 울리는 메시지들의 실체를 조명해서 의미 없고 소수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얘기는 배제시키고, 음모적인 시각도 배제시켜서 그야말로 청명한 가을 밤 귀뚜라미 울음소리 같은 거, 시냇물소리 같은 거, 그야말로 진짜 우리 공동체 존재와 맞아떨어지는 것들만 흘러가고 넘치도록 만드는 거죠. 그런데 그 랜턴들이 배터리가 없으면 배터리를 교체하거나 버려야죠.-267쪽

아까 저의 분노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통상 윤리라는 것과 도덕성이라는 것은 성인군자의 옷자락 끝에 묻어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정당한 분노, 수오지심, 이런 게 의 아닌가요? 대한 민국 농민들이 둘이나 죽었는데 아무도 화 안내잖아요.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던 1987년에는 이한열이라는 학생이 최루탄을 맞아 죽은 걸 가지고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났어요. 그래서 우리 시민사회가 형성된 거죠. 그런데 지금 시민은 어디가 있어요. 농민들 홍콩에서 그 차가운 얼음바다에 뛰어든 것을 보고 다이빙 잘 한다며 비웃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화나고 슬프거든요. 저는 시장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믿어요. 삼성공화국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니까요.-281쪽

우리가 사회적 개혁이다 뭐다 하는 것은 다 개인의 성취를 위해서 그러자고 하는 것인데, 성취할 개인적인 목적과 지양을 스스로 갖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과 사회가 주어진 가치만을 달성하려고 하고, 이를테면 내가 고시를 패스하겠다거나 자격증 시험을 보겠다거나 하는 사회적인 목표나 시장이 부여하는 것을 소비해나가는 데서만 존재를 확인받는 시장 속의 소비자들만 넘쳐나기 때문에 개인주의도 없을 뿐더러 탐욕스럽게 욕구하는 소비자들만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개인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유주의도 있을 수가 없죠. 이른바 사이비 자유민주주의가 횡행하고 있지만, 자유가 진정하고 실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만 그치고 있는 거죠. 거론되는 내용들을 보면 스스로 그 사회 구성원들을 소외시키는 결정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자이툰 파병같은 것도 왜 파병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기자식과 형제를 빼앗기고 있는거죠. 이른바 그 잘난 절차적 민주주의 의 도구를 통해서 집단적 살육을 부추기고 잇는 것이고, 미성숙된거죠. 그래서 전 사회적으로 황우석 같은 거짓과 가짜가 판치는 겁니다.
이상호-286쪽

사실 경제적 궁핍보다 더 나쁜 건 그 궁핍에 대한 경멸이죠. 이건 돈을 좇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부심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잖아요.
지승호-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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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레드 - 삶의 숨은 진실을 찾는 15편의 심리동화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영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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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정말 순했다. 늘 방긋거리며, 미소를 짓소. 새근새근 잠을 잤다. 그런 아이를 좋아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나는 좀 성깔있고 호전적인 여자 아이를 바랐다. 악을 쓰며 우는 아이를 원했다. 그러면서 아이와 더욱 친밀해지고 싶었다. 바로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작고 흐리멍덩한 것을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그토록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데 내 어찌 미소를 되돌려주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 작은 등조차 동맥이 보일 정도로 피부가 얇은데 내 어찌 아이를 보호해주고 싶지 않았으랴?-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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