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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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 뭘 했어요?
-여자에게 빠져 있었지.

1969년, 우리의 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헤어졌어
-행복했나요?
-멀리서 보면 대개는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거든.

쥐는 눈 앞에 늘어서 있는 여섯 개의 빈 맥주병을 바라보았다. 병 사이로 제이의 뒷모스이 보였다. 지금이 은퇴할 적당한 시기일지도 모른다고 쥐는 생각했다. 이 술집에서 처음으로 맥주를 마신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수천 병의 맥주, 수천 개의 감자튀김, 주크박스에 있는 수천 장의 레코드. 모든 것이 마치 작은 배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왔다가는 사라져갔다. 나는 이제 맥주를 마실 만큼 충분히 마신 게 아닐까? 물론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맥주는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마시는 맥주만은 다르다고 그는 생각한다. 스물다섯 살, 은퇴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나이다. 감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대학을 나와서 은행의 대부계에서라도 일하고 있을 나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이렇게 썼다.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미래에 대해서는 `아마도`이다, 라고. 그러나 우리가 걸어온 암흑을 되돌아볼 때, 거기에 있는 것 역시 불확실한 `아마도` 뿐인 것 같았다. 우리가 확실하게 지각할 수 있는 건 현재라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조차도 우리의 몸을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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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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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 일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사람에게는
못하는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일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을 만드는 거죠.
잘하는 일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에요.


열정.
그리고 센스.

중학교 때 선생님이 이런 얘길 한 적 있습니다.

"누구라도 책 한권쯤은 쓸 수 있다. 자기 인생을 쓰면 되니까. 별 것 아냐. 두 권째를 쓰는 사람이 프로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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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2 - 예언하는 새 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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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어찌되었던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올바른 자질 중의 하나죠

인생이라는 것은 그 와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정되어 있소. 인생이라는 행위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이오. 어쩌면 수십 초일지도 모르오. 그것이 지나가 버리면, 또 거기에 나타난 계시를 잡는 데 실패해 버리면,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소.

나와 구미코 사이에는 처음부터 뭔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만나자마자 짜릿하게 느껴지는 충동적이고 강렬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온화하고 부드러운 종류의 것이었다. 이를테면 두 개의 작은 불빛이 막막한 어두운 공간을 나란히 전진하는 중에 어느 쪽에서라도 할 것도 없이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에 있는 나는 `새로운 나`고 두 번 다시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다.

미워한다는 것은 길게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와 같은 것이에요.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드리워졌는지, 많은 사람들의 경우 본인도 잘 모르죠.

시간을 들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돼. 충분히 무언가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제일 세련된 형태의 복수란다.

오카다 씨도 아시는 바와 같이 여기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적인 세계입니다. 강해지지 않고서는 살아 남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어떤 작은 소리도 흘려 보내지 않도록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시겠어요? 좋은 뉴스는 대부분의 경우 작은 목소리로 말해집니다. 부디 그것을 기억해 주세요.

누군가 떠난 후, 그곳에 혼자 남아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히 힘든 일이오. 그것은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이 세상에 구해야 할 것을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적막함만큼 가혹한 것은 달리 없다오.

어쩌면 나는 패배할지도 모른다. 나는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있는 힘을 다했지만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잃어버린 후일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페허의 재를 허무하게 손에 쥐고 있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지도 모른다. 내 편에 내기를 걸 사람은 이 주위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상관없어` 하고 나는 작지만 단호한 소리로 거기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이것만은 분명해. 적어도 나에게는 기다려야 할 것이 있고, 찾아내야 할 것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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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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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노골적인 꿍꿍이는 간파할 수 있습니다만 약간 조심스럽게 유도하는 함정에는 손쉽게 빠지고 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이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일을 하면서 현실을 경험했지만, 그 세월을 장난으로 보내 버린 어린애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끝없이 도망칠 수 있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이리저리 도망쳐 온 당신에게는 어느 직장이니 직급이니 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뜨뜻미지근한 물에 있다가 밖으로 내던져지자 바로 감기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품격이란 어떠한 달콤함에도 어떠한 회초리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틀렸더라도 권위나 권력에 아양을 떨지 않는 의연함 그 자체입니다.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혼자일지라도 행동할 때에는 행동한다는 독립된 한 인간에게만 적합한 말입니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시기는 당신이 최후의 최후까지 진정한 당신으로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년퇴직하기 직전까지 당신은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먹고살 수 없다,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내몰려 독립된 인간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갖가지 조건을 남김없이 잘라서 팔아 왔습니다. 긍지, 자존심, 자유, 존경 등과 같은 인간으로서 갖고 있어야 할 보물을 몽땅 다른 사람과 조직에 싼값에 팔아 온 것입니다. ...당신이 갈피를 못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당신은 늘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어린아이의 정신 그대로 살아왔습니다. 자신을 단련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느닷없이 노후의 세계로 끌려 들어온 것입니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정도로 약한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떠넘기며 살아온 오랜 세월의 계산서를 깔끔히 정산만 하면 거기에서 본래의 진정한 당신이 분명 떠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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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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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간이란 누구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이 멍청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세상에 휘둘려 단물만 빨린 채로 인생 허비한다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라 딱히 반박할 부분이 없다. 문제는 이 맞는 말대로 산다는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짐승이 자라 부모를 떠나 홀로 사는 것엔 이유가 없다, 그것이 본능이고 섭리인데 왜 인간이 인간으로서 독립하는데 이유를 찾으려 하느냐, 그냥 홀로 서라고 말한다. 역시 맞는 말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여행을 하며 만난 남자들 중 참 매력있다 생각했던 이들이 떠올랐다. 독립적이고, 홀로 어디에 떨어뜨려놓아도 울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화내지 않고 다음 스텝을 찾아낼 사람들. 마루야마 겐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나 역시 그런 모습에 반하였다. 그들에겐 그런 독립심 이외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1. 가정환경이 불우하며 (보통 아버지가 부재) 2. 그런 환경이라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성장기를 보내었고 3. 또 그런 환경이라 제대로 된 대학교육을 못 받은 경우가 많다는 것. 거꾸로 말하자면 이런 '의지할래야 의지할 수 없는' 환경이 그런 독립적인, 마루야마 겐지의 말을 따르자면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분명 그들은 멋지고 아름답고 빛나는 인간이었다. 나 역시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밝고 친절하고 침착하며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고 담대한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 하지만 그런 한 편, 그들은 너무나 차가웠다. 독립심이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상처와, 그리고 그 독립심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이 독립심과 함께 얻게 되는 것이 열정의 반대편에 있는 다소간의 냉소와 차가움이라 생각한다.그들의 밝음과 친절함은,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후천적으로 득한 그런 종류의 것들이었고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감히 연민의 감정을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잠시 마음 아프다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발로 제대로 서지 못하고 평생 우물쭈물하며 세상의 거짓말에 놀아나는 사람들보다 낫다는 것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물론 세상은 힘들다. 세상은 더럽고, 세상은 불공평하고 부조리하다. 노예같은 직장인의 길을 피하고자 하면 더한 고난의 길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자위만 하며 평생을 살다 맥아리 없이 멍청한 눈으로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파도 괜찮다며 토닥거리는 책들보단 그냥 나가 죽어라는 식으로 쏘아대는 마루야마 겐지의 책이 훨씬 더 좋았다. 이 사람은 소설을 쓰는 것보다 사상가가 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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