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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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나베 세이코 할머니의 팬이 되면서 (예전부터도 은근한 팬이었지만 30대가 되어 진정 본격 팬이 되었다는 의미) 국내에 번역된 책이라도 다 구해서 읽어보자 싶어서 읽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다나베 세이코의 작품중 가장 별로였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세이코의 초기작이라 도대체 어떤 영문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이란 호기심을 잘 해결해주는 그런 글이었다. 그러니까, 다나베 세이코의 글은 엄숙함 진지함 격식 다 개나 줘 버려!라는 기개가 있으며, 한자를 수십 개 갖다붙여도 전하지 못할 인생의 진수 같은 걸 쉬운 히라가나로 줄줄 써버린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글들인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다나베 세이코라고는 믿을수도 없게 한자단어를 많이 쓴 딱딱한 문체이며 소설도 뭔가 좀 '있어보이는'풍의 음울하고 인위적인 느낌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아쿠타가와를 수상했구나 하는 것이 팍 느껴진다. 그러니, 다나베 세이코의 쾌할 발랄 신랄한 작품들이 좋아서 계속 읽어나가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굳이 이 책에 목 매달 필요는 없겠다. 정 볼 게 없을 때를 위해 잠시 뒤로 미뤄놔도 좋을 듯. 다나베 세이코 본인 역시 아쿠타가와 상 수상에 대해, 시간 지나고 나니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라고 불러주지도 않고 알게 모르게 소외되었다는 말을 하는데 뭐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이유 너무나 잘 알겠구요? 그런 고상한 무리들이 우리 다나베 세이코님을 부르지 않아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나베 세이코가 수월하게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디딤돌이 되어준 점에는 아쿠타가와 상에게 쌩큐지만 그 이상은 더 필요없다. 그런 엄숙함 따위 필요없어.어쩌면 이 책은 다나베 세이코 팬들에겐 일종의 리트머스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다나베 세이코를 더 사랑하게 된다면 진짜 팬이다. 별로인 글까지 품는 대단한 팬심이란 의미가 아니고, 이런 글로 시작을 하고 대단한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음에도, 문학계의 시선이나 조롱에 개의치 않고 새가 새장을 벗어나 날아가듯 옛것은 버리고 자신만의 글을 자유롭게 써나간 그녀의 모습에 감동받게 된다는 점에서. 별로인 책을 읽고도 이렇게 감동받은 건 처음인거 같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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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31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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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쿠가 보기에,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상처받았지. 조금은?" 아내는 그에게 물었다.
"나도 인간이니까 상처받을 일에는 상처받아." 기노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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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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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돈과 같은 거야.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마구 쓰고 싶어지는 법이지."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직장보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무감동한 얼굴, 까닭 없는 악의에 찬 표정들에서 피로를 느꼈다.

루리 세대의 여자들은 20대 초반만 해도 기모노를 입고 다녔다. 전쟁이 끝난 행복을 곱씹기 위해...

즐거운 모임일수록 길게 가져가면 안된다. 잔치는 끝이 나기 때문에 잔치인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점을 규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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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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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옛날 느낌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냄새가 밴 손수건을 서랍장 깊숙이 넣어두면 냄새가 안 나지만, 꺼내서 흔들거나 문지르거나 털거나 하면 냄새가 다시 나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게에서 서너 건물 더 가면 나오는 `따끈따끈 도시락`집에서 메뉴판을 보면서 메뉴를 고르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야마무라, 집에 그런 거 가져가서 먹을 거면 내가 밥 사줄게. 갈래?"
라고 말했더니 또 입술이 오자 모양으로 벌어지며
"정말요...?"
라고 말하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가 알고 지내는 올드미스들은 젊은 남자를 꼬일 때는 무조건 먹는 거야, 라고 말햇다. 젊은 스님을 애인으로 둔 애는 기쓰네 우동 여섯 그릇이면 됐다고 말했고, 자위대 대원을 애인으로 둔 애는 처음에 "햄버거 드실래요?"로 낚았다고 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계절 요리니까 나름 고상한 편이다.

어차피 나는 그 정도로 말발이 좋지도 않았고,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지식도 부족했다.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횟수가 많지도 않았다. 나는 남자가 먼저 "옳지, 옳지. 살결 참 곱다. 몸매도 유연하고...그럼 이렇게 한 번 해볼까" 라며 리드해주는게 좋지, 내가 먼저 "너 몸이 아주 탄탄하네. 그래, 그래. 잘한다. 옳지"라고 말하긴 싫다. 그럴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많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나에겐 아직 그 정도의 `기량이 없다`라고 보는 편이 맞을 거다. `기량`이란 단어는 고승의 담력이나 깨달음, 정권 장악을 목표로 한 정치가에게만 쓰는 것이 아니다. 침대 위에서 상대를 리드할 때에도 그에 못지 않은 기량이 필요하다.

"자네들, 미모랑 건강도 마찬가지야."
전무는 우리에게 말한다.
"없는 미모에, 없는 건강이겠지만..."
"없는미모라니요. 너무해요."
우리가 항의하면 전무는 당황해서
"아, 그게 아니라 미모도 한도가 있다고 할까. 이건 어쩔 수 없이 신에게 받은 것으로만 승부를 봐야 해. 그걸 차례차례 잘 변통해서 쓰는 수밖에 없어. 적은 자본으로 큰걸 얻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거든. 건강도 마찬가지. 1년 건강했다면 그 다음 1년도 버틸 수 있어. 그 건강함으로 어떻게든 1년 더 버틸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살아가는 거라고."

우메모토는 참 칭찬도 잘한다. 정말 감동했다는 듯 말한다. 나도 서른한 살이다. 나이를 겉으로만 먹은 게 아니라고. 남자가 진심으로 감동한 건지 그냥 하는 말인지 후각으로 구별해낼 수 있는 연륜 있는 여자란 말이야.

나는 우메모토가 바지런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어머, 쓸모있는 남자네`라며 이런 남자가 내 남편이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시자키 규타처럼 물건 만드는 취미가 있는 사람을 보니 `참 쓸모 있는 존재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즘에는 남자도 돈을 잘 번다는 것, 한 가지만으로는 세일즈 포인트가 될 수 없다. 보금자리를 꾸릴 능력 외에도 뭔가 한 두 가지 장점이 더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랑감으로서 메리트가 없을 것이다. 신부 수업이란 것이 있듯이, 신랑 수업이란 것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남자도 요리, 수공예, 뜨개질, 육아 등 각자 특기를 가진다면 더 빨리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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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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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일본 작가 베스트 3인은 나쓰메 소세키/무라카미 하루키/다나베 세이코라고 정리하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아름답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신비롭다. 다나베 세이코의 글은 멋지다. 


다나베 세이코가 일반적인 일본의 사소설 여류작가 쯤으로 치부될 수 없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여성의 30대를 테마로 묶은 이 단편집을 보니 그녀의 저력이 더욱더 명료하고 깨끗하게 드러난다. 다나베 세이코가 주인공으로 삼는 여자들은 딱히 진취적이거나 멋진 여자들은 아니다. 오히려 통속적인 기준을 좇는, 약간은 속물적이고 약간은 이기적이고 약간은 멍청한 여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런 여자 캐릭터들을 가지고 다나베 세이코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전혀 통속적이지 않으며(오히려 모던하다고 할 만 하다) 적당한 유머를 담고 있되 절대 코미디로 흐르지는 않고(코미디로 흘러간 작가로 오쿠다 히데오가 있다) 한 편의 단편이 마무리 지어지는 순간엔 정말 뭐랄까 모든 음식을 다 하고 마지막 참기름 한 방울 딱 떨어뜨려 넣는 그런 명료함이 있달까. 삶의 진실이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한 방울 들어가 있어서 독자들이 가볍게 공감하고 위안받을 수 있는 그런 면이 있다. 그리고 여성의 30대라는 그 진부한 토픽을 가지고서도 가지각색으로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별별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건 가히 감동적인 수준이다. 똑똑한 여자부터 멍청한 여자까지 모두 살아있는 듯 그릴 수 있는 건 작가의 에고가 너무 강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부드러운 에고를 가지고서도 분명히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 그것을 전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 세상이 30대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만들어 낸 별 시덥잖은 컨텐츠가 얼마나 많은가. 남자주인공을 미남으로 캐스팅하여 진부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얼버무리기라도 하면 다행일텐데 그렇지도 못한 망작이 난무하는 이 현실에 분노하며, 1970년대에 이런 작품을 써낸 다나베 세이코 할머니에게 깊은 감사를 드릴 뿐이다. 사랑합니다 다나베 세이코 여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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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6-05-0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읽어볼래요. 모르고 있던 작가인데! (LAYLA님 소개가 더 멋진 걸 수도 있지만 그건 책을 읽고 확인하겠어요.)

LAYLA 2016-05-02 22:11   좋아요 0 | URL
네꼬님 제가 밑줄긋기 해 놨으니 먼저 보셔요. 네꼬님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