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품절


이로써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이름의, 맛없기로 유명한 통조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퉁명스런 작명법까지도 소련답다. 보통명사가 그대로 상품 이름이 되다니. 내가 자주 다니는 가게는 무슨무슨 정육점, 아무개 술집, 성을 딴 생선집, 시곗방이라면 무슨 당, 이런 식으로 각각 고유한 이름이 있다. 하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시절 소련에서는 가게마다 이름은 없고 간판에 그저 '고기''술''생선''시계'라고 보통명사만 멋없게 덩그러니 씌어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붉은광장'과 마주한 장엄하고 화려한 건물에 있는 백화점조차 이름이 GUM(국립백화점의 이니셜)이다. 상품 이름도 마찬가지. 괜스레 구매의욕을 부추기지 않도록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여행자의 아 침식사'라는 통조림 이름 역시 생산을 신성시하고, 상업 특히 판매 촉진 노력을 죄악시하는 금욕적인 사회주의적 미의식을 반영한다. -32쪽

축제일의 음식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알코올은 영양소가 되는 동시에 사회적인 의미도 있었다. 속담에 따르면 '마시고 춤추는 것은 남을 위해, 먹고 자는 것은 자신을 위해', '빵이 없으면 일을 못하고 보드카가 없으면 춤을 못 춘다.'"-45쪽

1756년부터 이어진 7년 전쟁에서 프러시아와 칼을 겨룬 스웨덴은 감자를 가지고 돌아온 것 외에는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한 탓에 이 전쟁을 '감자 전쟁'이라 부를 정도다.-69쪽

"가장 알기 쉬운 건 함께 밥을 먹어보는 거야. 우선 음식을 가리지는 않나 봐야 해. 과도한 편식은 그 사람의 성장과정을 말해주고, 성격이며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말씀."
열심히 들어주니 그녀는 신이 나서 계속했다.
"게다가 밥 먹는 습관, 먹는 속도, 음식을 입에 넣기까지의 일련의 행동, 씹는 법들을 티 안나게 그러면서도 꼼꼼히 봐야 해. 결혼하면 매일같이 식사할 텐데, 이런 것들이 신경에 거슬리면 오래 못 가잖아."
그러고 보니,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통역으로 동행할 때 나도 모르게 관찰해온 것이 있다. 그 결과 먹는 법과 삶의 방식, 성격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인 대다수는 일본 음식을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상적으로 어패류를 거의 먹지 않는 내륙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생선회며 초밥이며 오징어 같은 것을 먹는 데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음식은 자기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니, 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온다. 그 사람의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균형감각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미지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 -191쪽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리카초프 정치국원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될 무렵 소련 공산당 정치국에서는 고르바초프의 오른팔이라 불리고, 개혁추친파에게는 보수파 두목이라고 비난받은 인물이다. 그는 회나 초밥은커녕 프랑스 요리에 종종 나오는 굴이나 말조개도 못 먹었고, 익힌 생선조차 꺼렸다. 물론 뒤킴도 노. 그렇다면 샤브샤브나 스키야키는 어떻겠냐며 주최 측이 권해봤지만 일본 요리는 못 먹는다고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무난한 프랑스 요리를 먹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면서도 좌우 세력의 균형 잡기에 노심초사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쳥도 초밥이며 회에는 거부반응을 보였다. 살짝 맛보는 일조차 없었다. 하지만 튀기거나 익힌 생선, 샤브샤브나 스키야키는 대단히 즐겼다.
개혁 면에서라면 극좌파를 넘어 아예 소련을 붕괴시키는 불도저 역할을 한 옐친은 어떠냐 하면, 나온 음식은 무엇이든 흥미를 보이며 맛있게 먹어치웠다. 회며 초밥이며 된장국이며 낫토에 참새구이는 물론, 재미로 점점 희한한 음식을 내오던 주최 측이 어이없어할 정도로 그는 어떤 음식이건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먹었다.-191쪽

이들 세 사람의 경우는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는 정도와 정치에 대한 혁신성의 정도가 우스울 정도로 정비례했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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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페 일기 -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 다카페 일기 1
모리 유지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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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고 싶었어요. 일상에 사랑이 스며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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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페 일기 -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 다카페 일기 1
모리 유지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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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외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집 안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면스 내일도 모레도 오늘처럼 순탄하고 평범한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한다. 모래밭을 걸어도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가 하나한 다르듯이, 순탄한 매일도 분명 조금씩 다를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밀물이 가득 들어와 바다 모양이 달라지듯이, 평범한 매일도 느릿느릿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터. 그 하나하나의 파도를 나는 앞으로도 계속 찍고 싶다. 텔레비전이 귀했던 시절에 부품만 사 와서 직접 조립하셨던 할아버지, 벗겨진 머리에 베레모를 쓰고, 초등학생인 내게 매주 손수 그린 그림 엽서를 보내주셨던 할아버지, 내가 세 시간이나 늦게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도 "할미도 지금 막 왔어"라고 말씀하셨지만, 실은 한참 동안 날 기다리셨던 할머니, 초등학교 수영 대회에 나가기 싫어서 내가 꾀병 부리는 걸 알아차리고, "물속에서 걸어도 좋아. 남자라면 도전을 해!"하고 밀어넣으셨던 어머니, 대학에 들어갈 때 공항에서 "유지, 사랑을 하고 오너라"하고 당부하셨던 아버지. "할아버지 자리는 여기가 좋아요?" "요리는 생선으로 할까요?" -0쪽

"돌아갈 때는 차로 태워다 드릴까요?" 무엇을 물어도 대답은 모두 "좋아, 좋아"였던 친척 할아버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하고 모두 열심히 살았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될 평범할 날들을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고, 가끔 토닥거리기도 하면서, 나 나름대로 열심히 보내고, 바다와 하늘이를 잘 키우고, 그날들을 찍고, 일기에 쓰고, 언젠가 친척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바다와 하늘이와 그 손자들이 뭔가를 물으면 "좋아, 좋아, 그거면 돼"하고 웃고 싶다. 그런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저 느긋하게 떠다니고 싶다.-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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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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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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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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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집 1 펭귄클래식 25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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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우리는 천박한 생각은 진실이라고 부르면서, 모든 풍요로운 이상은 환상이라고 부르는 거죠? 언젠가부터 그런 용어를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사교계를 비난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나요? 저 역시 실버턴의 나이였을 때 그런 명칭을 거의 받아들일 뻔했죠. 그리고 그런 명칭이 믿음의 색깔을 얼마나 바꾸어놓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160쪽

한동안 릴리는 얼이 빠진 채 벨벳 깔개 위에 놓인 하얀 사파이어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에비 반 오스버그와 퍼시 그라이스라고? 그 이름들이 어지럽게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에비 반 오스버그? 못생기고 멍청하기로 소문난 딸 넷 중에서도 가장 어리고, 멍청하고, 못생긴 그녀 말인가? 그런데 반 오스버그 부인은 어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기민함으로 그런 딸들을 차례차례 모든 사람이 가장 부러워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 어머니의 사랑 속에 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아가씨들은 얼마나 행운이란 말인가! 어머니란 호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숱한 기회를 만들어낼 줄 알고, 익숙함 때문에 관심이 시들해지지 않도록 하면서도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십분 활용할 줄 아는 법이다! 반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가씨라도 자신의 이익이 달려 있을 때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어느 순간에는 너무 지나치게 앞서가다가 또 다른 순간에는 너무 멀리 물러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딸들을 부유하고 합당한 신랑감의 품에 안전하게 안겨 주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결코 방심하지 않는 경계심과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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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용법 - 한 편집자의 독서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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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용한다고 할 때, 우리가 책이라는 사물 그것만을 추구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물론 책을 베개로 사용할 때는 예외이겠지만. 그런 점에서 책의 사용은 우리가 대상을 추구하면서도 그것 자체에 매몰되지 않는 드문 예인 것 같다. 책이 빽빽한 서재를 갖고 있는 것보다는 많은 책을 섭렵했다는 사실이 더 존중되어야 하고, 책쌓기보다는 책읽기가 더 유용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13쪽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책이 주는 균형감각이다. 한두 권의 책을 읽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책을 섭렵하고 얻은 지식은 지혜가 되어 삶을 보는 균형감각을 준다. 여기에서 말 그대로 건전한 비판의식이 삭튼다. 또한 고전이나 문학 작품은 조악한 이론이 보여주지 못하는 삶의 진경들을 펼쳐 보인다. 이것은 사이비 이론, 남이 불러준 이론, 한두 권의 책에 경도된 이론을 물리치는 독서를 가능케 해준다. -22쪽

현대인은 누구나 시간에 쫓긴다. 바쁜 일상을 관성적으로 살다보니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 산에 못오르고 또 책을 못 보게 되는데 그 손해는 시간을 만들지 못한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26쪽

하이퍼그라피아는 창의적인 욕구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일종의 창이다. 욕구는 대개 측두엽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는 변연계에 의해 조절된다. 일반저긍로 욕구와 재능은 매우 가까운 사이라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신경학적으로 보면 욕구는 재능보다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뭔가를 하려는 동기가 강하다면 그것을 잘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며, 마찬가지로 어던 사람이 뭔가를 잘한다면(특히 그것이 남들로부터 칭송받는 것이라면)욕구가 증대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앨리스 플래허티 <하이퍼그라피아>-44쪽

...먼저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이행을 꼽을 수 있다. 음독의 성행은 두루마리 형태의 초기 책들을 읽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소리 내어 읽으면 그 뜻도 분명해지는데 이 점과 아울러 책의 수량이 적었던 점도 이 시대에 음독이 성행한 이유다. 서기 2세기 이후 책자 형태로 책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중세 유럽 수도원의 필경사들의 노력으로 묵독이 성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음독이 타인의 독서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책이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독서가 개인적인 도락의 형태를 띠게 된 것에도 일부 원인이 있었다. 다음으로 독서는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혁명 이후 한두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던 형태에서 여러 권의 책을 다독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인터넷 검색과 같은 검색형 독서로 책읽기의 역사가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70쪽

예술 작품이란 서한이나 사교활동, 혹은 그 사람의 습관이나 속내 이야기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사회적 자아와 또 다른 자아에 의해 창조되기 때문에 자연인으로서의 인간과 그의 예술 작품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프루스트-131쪽

18세기 한갓 지역어에 불과했던 독일어가 세계적인 언어로 된 데에는 괴테라는 걸출한 문인의 기여가 있었다. 그의 빛나는 문학 작품들은 분열된 국가를 문화적으로 통합했다. 당시 독일 사회는 전 시대에는 로마와 프랑스 문화에, 당대에는 그리스와 영국 문화에 탐닉해 독일적이라고 할 만한 문화가 빈약하였다. 괴테는 문학을 통해 독일 문화와 독일을 세계 속에 우뚝 성장시켰다. ...영국만 해도 셰익스피어와 워즈워스라는 두 걸출한 극작가와 시인이 나오기 전에는 그저 국지적인 문학과 문화에 불과했다. ...단적으로 말해 인류위 사고체계는 그에 의해서 세련성을 부여받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142쪽

흔히 나이가 들수록 지성이 감성을 압도해야 한다고들 말하는 데, 이 점에 관한 한 나는 생각이 다르다. 지성을 갈고 닦아야 하듯이 감성 또한 갈고 닦고 정성을 다해 애쓰지 않으면 좀처럼 개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학창 시절 읽었던, 그래서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한두 편의 시에 평생 의존하고 우리의 감성을 함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149쪽

우리는 고독한 이로 출발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실 선천적으로 고독하다. 만약 끈기 있게 노력하고 낙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간, 공간, 언어, 민족 정체성이라는 인공적인 경계선을 초월하는 문학이라는 신비로운 대체 세계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예술활동은 개인의 고독으로부터 홀연히 나타나서 다채로워지며, 끝없이 매혹적이고, 언제나 진화한다. -조이스 캐롤 오츠, "작가의 신념"-158쪽

많은 글쓰기가 그런 식이다. 맞춤법은 시가닝 가면 정확해지지만 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단어들을 배열하는 데는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 -175쪽

이제 앞서 제기한 물음으로 돌아가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우리 삶에 결여된 무엇이, 한마디로 욕망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빈틈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다, 그 빈틈을 욕망이라고 불러도 좋고 재미없는 일상이라고 해도 좋고 회의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여튼 더 나은 상태를 바라지만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울를 책읽기로 추동한다고 나는 믿는다.-177쪽

건조한 현실을 위한 책들을 의무적으로 봐야 했을 때 나는 그 책읽기가 끝나자마자 고전을 펴들어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즉 책으로 책을 해독하는 행위라고나 할까. -196쪽

책을 읽는 삶은 결코 속도에 있어 뒤처지는 삶도 아니고 또한 느림 역시 결코 뒤처지는 삶의 방식도 아니다. -203쪽

책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마치 스포츠 뉴스나 강도.살인사건처럼 한동안 너도나도 읽어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가 이내 잊히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책은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그럴 때마다 비로소 책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 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 난생처음 글씨를 써보고 읽기를 배우면서 첫발을 들여놓게 되는 이 세계는 워낙 정교하고 극도로 복잡해서, 그 모든 법칙과 규칙에 통달하여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말과 글과 책이 없이는 역사도 없고 인간이라는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혹 누군가 소규모의 공간에, 이를테면 집 한채나 방 한칸에 인간 정신의 역사를 집약하여 소유하고자 한다면, 이는 오로지 책을 수집하는 형태로만 가능할 것이다. -204쪽

인생은 짦고, 저세상에 갔을 때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왔느냐고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미련하고 안타까운 일 아니겠는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다. 사람의 한 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더 풍성한 힘을 얻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몰두할 줄 알아야 한다.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나가면서 기쁨이나 위로 혹은 마음의 평안이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줄줄 꿰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 생각 없이 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을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205쪽

그렇다. 나는 자위한다. 책에서 위안을 구하는 자는 행복하다. 세상에 얼마나 불행한 일이 많은지를 생각하면 더더욱.-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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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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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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