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이름의, 맛없기로 유명한 통조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퉁명스런 작명법까지도 소련답다. 보통명사가 그대로 상품 이름이 되다니. 내가 자주 다니는 가게는 무슨무슨 정육점, 아무개 술집, 성을 딴 생선집, 시곗방이라면 무슨 당, 이런 식으로 각각 고유한 이름이 있다. 하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시절 소련에서는 가게마다 이름은 없고 간판에 그저 '고기''술''생선''시계'라고 보통명사만 멋없게 덩그러니 씌어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붉은광장'과 마주한 장엄하고 화려한 건물에 있는 백화점조차 이름이 GUM(국립백화점의 이니셜)이다. 상품 이름도 마찬가지. 괜스레 구매의욕을 부추기지 않도록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여행자의 아 침식사'라는 통조림 이름 역시 생산을 신성시하고, 상업 특히 판매 촉진 노력을 죄악시하는 금욕적인 사회주의적 미의식을 반영한다. -32쪽
축제일의 음식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알코올은 영양소가 되는 동시에 사회적인 의미도 있었다. 속담에 따르면 '마시고 춤추는 것은 남을 위해, 먹고 자는 것은 자신을 위해', '빵이 없으면 일을 못하고 보드카가 없으면 춤을 못 춘다.'"-45쪽
1756년부터 이어진 7년 전쟁에서 프러시아와 칼을 겨룬 스웨덴은 감자를 가지고 돌아온 것 외에는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한 탓에 이 전쟁을 '감자 전쟁'이라 부를 정도다.-69쪽
"가장 알기 쉬운 건 함께 밥을 먹어보는 거야. 우선 음식을 가리지는 않나 봐야 해. 과도한 편식은 그 사람의 성장과정을 말해주고, 성격이며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말씀." 열심히 들어주니 그녀는 신이 나서 계속했다. "게다가 밥 먹는 습관, 먹는 속도, 음식을 입에 넣기까지의 일련의 행동, 씹는 법들을 티 안나게 그러면서도 꼼꼼히 봐야 해. 결혼하면 매일같이 식사할 텐데, 이런 것들이 신경에 거슬리면 오래 못 가잖아." 그러고 보니,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통역으로 동행할 때 나도 모르게 관찰해온 것이 있다. 그 결과 먹는 법과 삶의 방식, 성격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인 대다수는 일본 음식을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상적으로 어패류를 거의 먹지 않는 내륙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생선회며 초밥이며 오징어 같은 것을 먹는 데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음식은 자기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니, 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온다. 그 사람의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균형감각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미지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 -191쪽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리카초프 정치국원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될 무렵 소련 공산당 정치국에서는 고르바초프의 오른팔이라 불리고, 개혁추친파에게는 보수파 두목이라고 비난받은 인물이다. 그는 회나 초밥은커녕 프랑스 요리에 종종 나오는 굴이나 말조개도 못 먹었고, 익힌 생선조차 꺼렸다. 물론 뒤킴도 노. 그렇다면 샤브샤브나 스키야키는 어떻겠냐며 주최 측이 권해봤지만 일본 요리는 못 먹는다고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무난한 프랑스 요리를 먹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면서도 좌우 세력의 균형 잡기에 노심초사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쳥도 초밥이며 회에는 거부반응을 보였다. 살짝 맛보는 일조차 없었다. 하지만 튀기거나 익힌 생선, 샤브샤브나 스키야키는 대단히 즐겼다. 개혁 면에서라면 극좌파를 넘어 아예 소련을 붕괴시키는 불도저 역할을 한 옐친은 어떠냐 하면, 나온 음식은 무엇이든 흥미를 보이며 맛있게 먹어치웠다. 회며 초밥이며 된장국이며 낫토에 참새구이는 물론, 재미로 점점 희한한 음식을 내오던 주최 측이 어이없어할 정도로 그는 어떤 음식이건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먹었다.-191쪽
이들 세 사람의 경우는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는 정도와 정치에 대한 혁신성의 정도가 우스울 정도로 정비례했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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